미생물과 면역 3강. 면역의 두 체계
당신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병원체에 맞는 무기를 이미 만들 수 있습니다. 면역계는 미래의 적을 미리 대비하는 시스템이죠.
풀고 시작
두 개의 방어선: 빠른 범용군과 느린 정밀군
면역계는 성격이 다른 두 체계의 분업입니다. 선천면역(innate immunity)은 태어날 때부터 갖춘 1차 방어선입니다. 피부와 점막이 물리적 장벽을 치고, 이를 뚫은 침입자는 대식세포와 호중구 같은 식세포가 잡아먹으며, 감염 부위는 붓고 뜨거워지는 염증 반응이 일어나죠. 이 체계는 수 분에서 수 시간 안에 작동할 만큼 빠르지만, 병원체 종류를 세밀히 구분하지 않습니다. 세균의 세포벽 성분처럼 미생물에 공통된 분자 패턴을 인식해 "미생물이 들어왔다" 수준으로 반응하는 범용군입니다.
적응면역(adaptive immunity)은 정반대입니다. 처음 만난 병원체에 맞춤 대응을 갖추는 데 며칠이 걸리지만, 특정 병원체의 특정 분자(항원)를 정밀하게 겨냥하고, 싸움이 끝난 뒤 그 적을 기억합니다. 빠르지만 둔한 군대와 느리지만 정밀한 군대의 조합이 면역의 기본 설계인 셈이죠. 두 체계는 따로 놀지 않습니다. 선천면역의 세포가 잡아먹은 병원체 조각을 항원으로 제시해야 적응면역이 발동하므로, 1차 방어선은 곧 2차 방어선의 정찰병이기도 합니다.
B세포와 T세포: 미리 만들어 두고 골라 쓴다
적응면역의 주역은 림프구입니다. B세포는 항체(antibody)를 만듭니다. 항체는 항원에 자물쇠와 열쇠처럼 결합하는 단백질로, 병원체를 무력화하고 식세포가 잡아먹기 쉽게 표지하죠. T세포는 두 갈래로 일합니다. 살해 T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기 세포를 찾아 제거하고, 도움 T세포는 B세포와 다른 면역세포의 활성을 지휘합니다.
여기서 핵심 수수께끼가 나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항원에 맞는 수용체를 어떻게 갖고 있을까요. 답은 클론 선택(clonal selection)입니다. 몸은 유전자 조각을 무작위로 재조합해 서로 다른 수용체를 가진 림프구를 수억 종류 미리 만들어 둡니다. 항원이 들어오면 우연히 들어맞는 소수의 클론만 선택되어 폭발적으로 증식하죠. 설계가 아니라 변이와 선택입니다. 진화 과목에서 본 다윈의 논리가 내 몸 안에서 며칠 단위로 돌아가는 셈입니다.
면역 기억, 그리고 백신이라는 발명
싸움이 끝나면 증식했던 클론 일부가 기억세포로 남습니다. 재침입 시 이들이 즉시 가동되어 증상이 나기도 전에 적을 제압하죠. 이 성질을 인위적으로 이용한 것이 백신입니다. 1796년 제너(Edward Jenner)는 우두를 앓은 사람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관찰에서 출발해, 약한 우두 접종으로 치명적인 천연두를 예방했습니다. 파스퇴르는 이 원리를 일반화해 약화시킨 병원체로 백신을 만들었고, 1885년 광견병 백신으로 개에 물린 소년을 구했습니다. 이후 기술은 죽인 병원체(불활화), 병원체 조각(서브유닛)으로 발전했고, 코로나19에서는 항원의 설계도인 mRNA만 넣어 우리 세포가 항원을 직접 만들게 하는 mRNA 백신이 실용화되었습니다. 이 기반을 닦은 카리코와 와이스만은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죠. 원리는 제너 이래 동일합니다. 진짜 적이 오기 전에 면역 기억을 미리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자가면역: 정밀 무기의 오발
정밀한 무기일수록 오발이 치명적입니다. 적응면역의 전제는 자기와 비자기의 구분입니다. 몸은 자기 성분에 강하게 반응하는 림프구를 발달 과정에서 걸러내지만, 이 검열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검열을 빠져나간 클론이 자기 조직을 공격하면 자가면역질환이 되죠. 1형 당뇨병은 면역계가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 세포를 파괴한 결과이고, 류마티스 관절염은 관절을 겨냥한 공격입니다. 면역은 강할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정확해야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면역이 감당하지 못하는 세균 감염 앞에서 인류는 또 하나의 무기를 손에 넣습니다. 다음 강, 항생제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면역계는 태어난 뒤 만나는 항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게 형성됩니다. 유전자가 같은 일란성 쌍둥이도 면역 이력은 다르죠. 면역계는 신경계의 기억과 얼마나 닮았고 어디서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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