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2강. 생명의 화학적 기초
생명은 신비한 물질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흔한 원소 몇 가지가 놀라운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을 뿐입니다.
풀고 시작
왜 물인가
겨울 호수가 바닥까지 얼어붙는다면, 그 안의 물고기는 어떻게 될까요.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생명의 화학이 물속에서 일어나는 이유와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물 분자는 산소 쪽이 약한 음전하, 수소 쪽이 약한 양전하를 띠는 극성(polarity) 분자입니다. 이 극성 덕분에 물 분자끼리 수소결합(hydrogen bond)으로 느슨하게 붙잡죠. 여기서 생명에 유리한 성질이 줄줄이 나옵니다. 물은 이온과 극성 분자를 잘 녹이는 우수한 용매라서 화학 반응의 무대가 됩니다. 비열이 커서 온도가 급변하지 않으므로 체내 환경이 안정되죠. 그리고 얼음이 물보다 가벼워 위에 뜨기 때문에, 겨울 호수는 표면만 얼고 그 아래 생물은 살아남습니다. 물이 특별한 물질이라서가 아니라, 수소결합이라는 하나의 구조적 사실에서 이 모든 성질이 따라 나온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왜 탄소인가
탄소 원자는 최외각 전자가 4개라 공유결합을 4개까지 만듭니다. 그래서 사슬, 가지, 고리, 이중결합까지 온갖 골격을 짤 수 있고, 그 결합이 상온에서 충분히 안정하면서도 효소가 끊고 이을 수 있을 만큼 유연합니다. 그렇다면 같은 4가 원소인 규소(Si)로 만들어진 생명은 왜 없을까요. SF에 단골로 등장하는 질문이지만, 화학은 냉정한 답을 줍니다. 규소 결합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규소 산화물(모래)은 물에 녹지 않는 고체라서 대사의 순환 고리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탄소 화학의 문법 자체는 화학 서가의 유기화학 4강에서 작용기 중심으로 자세히 다루며, 이 강에서는 그 문법으로 쓰인 문장, 즉 생체분자를 봅니다.
4대 생체분자의 역할 분담
생명의 분자는 크게 네 종류로 나뉩니다. 지질을 제외한 셋은 작은 단위체(monomer)가 사슬로 이어진 중합체(polymer)죠.
| 분자 | 단위체 | 주 역할 | 대표 사례 |
|---|---|---|---|
| 탄수화물 | 단당류 | 에너지 공급, 구조 재료 | 포도당, 녹말, 셀룰로스 |
| 지질 | (중합체 아님) | 막 형성, 에너지 저장, 신호 | 인지질, 중성지방, 스테로이드 |
| 단백질 | 아미노산 20종 | 촉매, 구조, 운반, 방어 | 효소, 콜라겐, 헤모글로빈 |
| 핵산 | 뉴클레오타이드 | 유전 정보 저장과 전달 | DNA, RNA |
역할 분담이 뚜렷합니다. 핵산이 정보를 보관하면, 단백질이 그 정보대로 만들어져 실제 일을 하고, 탄수화물과 지질이 에너지와 구조를 댑니다. 특히 인지질이 재미있습니다. 물을 좋아하는 머리와 싫어하는 꼬리를 함께 가진 덕분에, 물속에 넣기만 하면 저절로 이중층을 이루어 세포막이 되거든요.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 즉 세포라는 단위 자체가 이 분자의 성질에서 나옵니다. 누가 설계하지 않아도 물리화학이 스스로 구획을 만든다는 사실은, 생명의 기원을 묻는 다음 강에서 다시 중요해집니다.
단백질: 접힘이 곧 기능이다
단백질은 아미노산 20종이 정해진 순서로 이어진 사슬입니다. 그런데 사슬은 펼쳐진 채 일하지 않습니다. 물속에서 소수성 아미노산은 안으로 숨고 친수성 아미노산은 밖으로 나오면서, 사슬이 저마다 고유한 3차원 구조로 접힙니다(folding). 효소의 활성 부위, 항체의 결합 부위, 헤모글로빈의 산소 주머니는 모두 이 접힌 모양이 만들죠. 서열이 구조를 정하고 구조가 기능을 정한다는 이 원리는 앤핀슨(Christian Anfinsen)의 실험으로 확립되어 1972년 노벨 화학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접힘이 어긋나면 병이 됩니다. 광우병의 프리온, 알츠하이머병의 아밀로이드 응집이 잘못 접힌 단백질의 사례죠. 서열로부터 구조를 예측하는 문제는 반세기 동안 난제였는데, 2020년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가 사실상의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다음 강에서는 이 분자들이 애초에 어떻게 생겨났는지, 생명의 기원 문제로 내려갑니다.
인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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