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와 건강 리터러시 1강. 의사가 손을 씻기까지
의학의 역사에서 치료가 병보다 덜 위험해진 시점은 놀랍도록 최근입니다. 그 전환의 상당 부분은 신약이 아니라 손 씻기와 상수도에서 왔습니다.
풀고 시작
2000년을 버틴 네 가지 액체
기원전 5세기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몸이 혈액, 점액, 황담즙, 흑담즙이라는 네 체액으로 이루어져 있고 질병은 그 균형이 무너진 상태라고 보았습니다. 2세기 로마의 갈레노스가 이 체액설(humorism)을 정교하게 다듬은 뒤로, 이 이론은 이슬람 세계와 중세 유럽을 거쳐 19세기 중반까지 의학의 표준으로 버텼습니다. 히포크라테스부터 헤아리면 2000년이 넘는 수명입니다. 균형을 되돌리는 것이 치료였으므로 처방은 사혈과 구토, 설사 유도였죠. 1799년 조지 워싱턴이 심한 인후 통증으로 앓아누웠을 때 의사들이 한 일도 하루 사이에 상당량의 피를 빼내는 것이었고, 그는 그날 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이론이 왜 그렇게 오래 버텼을까요. 설명력이 지나치게 넓었고, 틀렸음을 확인할 절차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병이 저절로 낫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나은 사람은 나왔고, 그때마다 치료가 들은 것으로 기록되었죠. 무엇이 효과가 있는지 가려내는 방법 자체가 발명되기 전이었습니다.
몸을 열고 숫자를 세다
균열은 해부실에서 시작됐습니다. 1543년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는 『인체의 구조』에서 갈레노스의 해부학이 주로 동물을 갈라 얻은 지식이며 사람의 몸과 여러 곳에서 어긋난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였습니다. 권위가 아니라 시신이 증언대에 선 것입니다. 1628년에는 하비(William Harvey)가 심장이 펌프이고 혈액은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고 논증했습니다. 그의 무기는 관찰만이 아니라 계산이었습니다. 배출량을 곱셈으로 따져 보니 그 양은 몸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넘었죠. 의학이 숫자로 논증하기 시작한 순간입니다.
통증이 사라지자 감염이 드러났다
마취가 없던 시절 외과의 미덕은 정확성이 아니라 속도였습니다. 환자를 붙들어 매어 두고 다리 하나를 몇 분 안에 잘라 내는 솜씨가 곧 실력으로 통했죠. 그래서 수술은 팔다리 절단과 결석 제거처럼 짧고 겉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에 사실상 묶여 있었습니다. 1846년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치과의사 모턴(William Morton)이 에테르 마취를 공개 시연합니다. 환자가 비명을 지르지 않는 수술이 처음으로 가능해졌죠.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수술 건수가 늘어나자 수술 자체보다 수술 후 감염으로 죽는 환자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통증이라는 장벽이 걷히고 나서야 감염이라는 두 번째 장벽이 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1847년 빈의 제멜바이스가 손 소독으로 산욕열 사망률을 낮추고도 배척당한 이야기는 세균과 바이러스 강에서 다뤘습니다. 20년 뒤 글래스고의 리스터(Joseph Lister)는 같은 일을 하고도 성공했습니다. 차이는 이론이었습니다. 그는 부패가 미생물 때문이라는 파스퇴르의 연구를 읽고 상처와 기구를 석탄산으로 소독했고,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세균설이 자리잡으면서 손 씻기는 결벽이 아니라 의학이 되었습니다.
수명이 늘어난 공로는 누구의 것인가
20세기에 선진국 기대수명은 극적으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을 누구에게 돌려야 하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입니다. 1970년대 매큐언(Thomas McKeown)은 영국 자료를 분석해, 결핵 같은 주요 사망 원인의 감소 대부분이 효과적인 치료제가 나오기 훨씬 전에 이미 진행되었으며 영양 개선이 주된 동력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매큐언 명제는 임상의학의 자부심에 찬물을 끼얹었죠.
다만 그의 결론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하수도와 주거 개선 같은 공중보건 인프라의 몫을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이 크고, 20세기 후반 백신과 항생제, 심혈관 질환 치료가 사망률을 낮춘 기여는 자료로 뚜렷하게 확인됩니다. 오늘날의 절충된 이해는 이렇습니다. 초기 수명 연장은 영양과 위생이 주도했고, 임상의학의 기여는 상대적으로 나중에 커졌습니다. 그 앞부분의 주역이 무엇이었는지는 다음 강에서 이어집니다. 이 서가는 교양으로 읽는 의학이며, 몸에 이상이 느껴질 때의 판단은 진료실에서 의료인과 함께 내리는 것이 맞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제멜바이스는 데이터가 있었지만 설득에 실패했고, 리스터는 같은 처방에 이론을 얹어 성공했습니다. 오늘날 근거가 충분한데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의학적 권고가 있다면, 부족한 것은 데이터일까요 설명일까요.
- 수명 연장의 공을 위생과 영양에 더 크게 돌린다면, 보건 예산은 병원과 지역사회 중 어느 쪽에 더 많이 배분되어야 할까요.
이전: 의학의 도구 4강 · 다음: 의학사와 건강 리터러시 2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