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 1강. 멘델: 수도원의 완두콩
유전의 법칙은 대학 연구실이 아니라 수도원 텃밭에서, 꽃 색을 세고 또 센 한 수도사의 장부에서 나왔습니다.
풀고 시작
혼합 유전설의 막다른 길
19세기 사람들은 유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당시 통념은 혼합 유전설(blending inheritance)이었습니다. 부모의 형질이 잉크처럼 섞여 자손은 중간값을 갖는다는 생각이죠. 그런데 이 가설에는 치명적 결함이 숨어 있습니다. 섞임이 반복되면 세대가 지날수록 변이가 묽어져 결국 모두가 평균에 수렴해야 하거든요. 공학자 젱킨(Fleeming Jenkin)은 바로 이 논리로 다윈의 자연선택을 공격했습니다. 선택이 작용할 변이 자체가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다윈조차 이 반론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유전이 "섞임"이라면 진화론은 발밑이 무너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해답은 이미 출판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아무도 읽지 않았을 뿐이죠.
실험 설계의 힘
멘델(Gregor Mendel, 1822~1884)은 오스트리아 제국 브르노의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사였습니다. 빈 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배운 이력이 그의 실험을 이전의 모든 육종 관찰과 갈라놓았죠. 1856년부터 약 8년간 완두 수만 그루를 기른 그의 설계는 세 가지가 달랐습니다. 첫째, 중간형이 없는 대립 형질만 골랐습니다. 둥근 콩과 주름진 콩, 보라 꽃과 흰 꽃처럼 이것 아니면 저것인 7가지 형질이죠. 둘째, 순종 계통을 먼저 확립한 뒤 교배했습니다. 셋째, 자손을 세어서 비율로 말했습니다. 잡종 2대에서 우성과 열성이 약 3:1로 나온다는 진술은 당시 생물학에 없던 통계적 언어였습니다.
여기서 두 법칙이 나옵니다. 분리의 법칙은 한 형질을 결정하는 인자가 쌍으로 존재하며 생식세포를 만들 때 분리되어 하나씩만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독립의 법칙은 서로 다른 형질의 인자 쌍이 서로 독립적으로 분배된다는 것이고요(뒤에 밝혀지듯 같은 염색체에 있으면 예외가 생기는데, 이 예외가 오히려 유전자 지도의 열쇠가 됩니다). 인자는 섞이지 않고 입자처럼 보존됩니다. 혼합 유전설의 난점이 한 번에 풀리는 순간입니다.
35년의 침묵과 1900년
멘델은 1865년 브르노 자연과학회에서 결과를 발표하고 1866년 논문으로 냈지만 반응은 없었습니다. 당대의 저명 식물학자 네겔리(Carl Nägeli)와 서신을 주고받았으나 그는 요점을 이해하지 못했고, 멘델은 수도원장이 된 뒤 행정에 묻혀 연구를 접었습니다.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지죠. 그리고 정말로 그 시대가 왔습니다. 1900년, 더프리스(Hugo de Vries), 코렌스(Carl Correns), 체르마크(Erich von Tschermak) 세 사람이 각자 비슷한 결과에 도달한 뒤 문헌에서 멘델의 논문을 발견한 것입니다. 35년 묵은 논문이 하루아침에 새 과학의 헌장이 되었습니다.
유전자라는 개념의 탄생
정작 멘델 자신은 "인자"라고만 불렀습니다. 베이트슨(William Bateson)이 1905년 이 학문에 유전학(genetics)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요한센(Wilhelm Johannsen)이 1909년 그 인자에 유전자(gene)라는 이름을 주었죠.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유전자는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라 교배 비율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추론된 단위였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실제로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이후 반세기 유전학을 끌고 갑니다.
첫 번째 답은 곧 나왔습니다. 1900년대 초 서턴(Walter Sutton)과 보베리(Theodor Boveri)는 세포분열에서 관찰되는 염색체의 행동, 즉 쌍으로 존재하다가 생식세포 형성 때 나뉘는 움직임이 멘델 인자의 행동과 정확히 평행함을 지적했습니다. 유전자는 염색체 위에 있다는 염색체설입니다. 이어 모건(Thomas Hunt Morgan)의 초파리 실험실이 특정 유전자를 특정 염색체의 특정 위치에 대응시키며 이를 실증했죠. 추론된 단위가 물리적 주소를 얻은 것입니다. 유전자의 화학적 정체가 DNA라는 것은 다음 강에서 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멘델의 논문은 35년간 인용되지 못했습니다. 시대를 앞선 발견이 묻히지 않게 하려면 과학 공동체에 어떤 제도가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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