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흑역사 5화. 화성인이 팠다던 운하 지도
번역 실수 하나가 화성 문명론을 낳았고, 그 소동이 화성 탐사의 씨앗이 됐습니다.
풀고 시작
오역에서 태어난 문명
1877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스키아파렐리(Giovanni Schiaparelli)는 화성 표면에서 가느다란 줄무늬들을 관측하고 canali라고 기록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물길, 수로라는 뜻의 중립적인 단어였죠. 그런데 영어로 옮겨지며 canal, 즉 인공 운하가 됐습니다. 자연히 질문이 따라붙었습니다. 운하라면, 판 존재가 있다는 뜻 아닌가. 미국의 부유한 외교관 출신 로웰(Percival Lowell)은 이 아이디어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1894년 사재를 털어 애리조나에 천문대를 세우고, 화성을 그린 정교한 운하 지도를 발표하며 책까지 썼습니다. 말라 가는 행성에서 극지방의 물을 끌어오려는 늙은 문명의 절박한 토목 공사라는, 완성도 높은 이야기였죠.
좋은 망원경이 지운 선들
문제는 다른 천문학자들의 눈에는 그 선이 잘 안 보였다는 겁니다. 1909년 안토니아디(Eugene Antoniadi)가 당대 최고 수준의 대형 망원경으로 화성을 봤을 때, 직선의 운하는 없었습니다. 흩어진 얼룩과 반점들뿐이었죠. 사람의 눈과 뇌는 흐릿하게 보이는 불규칙한 점들을 선으로 이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운하는 화성이 아니라 관측자의 머릿속에 있었던 겁니다. 1965년 매리너 4호가 근접 촬영한 화성은 운하도 문명도 없는 크레이터투성이 사막이었고, 논쟁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소동이 남긴 씨앗
그런데 이 흑역사의 유산이 만만치 않습니다. 로웰의 화성 문명론은 웰스(H. G. Wells)의 소설 우주 전쟁을 비롯한 SF의 화성인 상상력에 불을 붙였고, 그 상상력을 먹고 자란 세대가 훗날 행성 탐사를 이끌었습니다. 로웰이 세운 천문대는 1930년 명왕성 발견의 무대가 됐죠. 틀린 지도가 사람들을 화성으로 이끈 셈입니다. 진짜 화성이 어떤 행성인지는 태양계 강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