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 5화. 완벽하게 합리적인 당나귀는 굶어 죽는다
먹이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똑같이 좋은 먹이가 두 개나 있어서 죽습니다.
풀고 시작
건초 두 더미 사이에서
배고픈 당나귀 한 마리가 서 있습니다. 왼쪽과 오른쪽에 크기도 냄새도 거리도 완전히 똑같은 건초 더미가 하나씩 놓여 있죠. 이 당나귀가 "더 나은 이유가 있을 때만 행동한다"는 원칙을 완벽하게 지키는 합리적 존재라면, 왼쪽을 고를 이유도 오른쪽을 고를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당나귀는 두 더미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굶어 죽습니다. 완벽한 합리성이 생존을 방해하는 기묘한 그림이죠.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너무 합리적이어서 죽는 것입니다.
여기 재미있는 반전이 하나 있습니다. 이 사고실험은 14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 뷔리당(Jean Buridan)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정작 뷔리당 본인의 현존 저작에는 이 당나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비슷한 발상은 훨씬 오래되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배고픔과 목마름이 똑같은 사람이 음식과 물 사이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를 이미 언급했습니다. 의지는 더 큰 선을 향해 기운다고 본 뷔리당의 이론을 조롱하려던 후대 사람들이 당나귀 버전을 만들어 그의 이름에 붙였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억울하게 당나귀 주인이 된 셈이죠.
동전을 던질 줄 아는 것도 합리성이다
이 역설은 결정 이론에 진짜 질문을 남깁니다. 선택지가 동등할 때 아무거나 고르는 능력, 말하자면 마음속 동전 던지기는 비합리가 아니라 오히려 합리성의 일부가 아닐까요. 최선을 고를 수 없다면 동등한 것 중 아무거나 고르는 것이 굶어 죽는 것보다 명백히 낫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컴퓨터 과학에서도 알고리즘이 동률 앞에서 멈추지 않도록 동률을 깨는 규칙(tie-breaking)을 따로 설계합니다.
자유의지 논쟁과도 이어집니다. 모든 행동에 결정적 이유가 선행해야 한다면 동등한 선택지 앞에서 인간도 당나귀 신세입니다. 반대로 이유 없이도 고를 수 있다면, 그 "이유 없는 선택"이야말로 의지의 자유가 드러나는 지점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저런 상황에서 굶어 죽는 존재라면 사람이 아니라 당나귀로 보아야 한다고 냉소했고, 라이프니츠는 애초에 완전히 동등한 두 선택지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응수했습니다. 당나귀 한 마리를 두고 거장들의 답이 갈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