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유래 5화. 이름이 동사가 되어버린 남자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자기 이름이 전 세계 신문에서 동사로 쓰이고 있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요.
풀고 시작
마을 전체가 등을 돌리다
1880년 아일랜드 메이요 주. 퇴역 군인 찰스 보이콧 대위는 부재지주였던 언 백작의 소유지를 대신 관리하는 토지 관리인이었습니다. 흉작으로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던 소작농들의 청을 거절하고 퇴거를 집행하려 하자, 아일랜드 토지연맹이 새로운 무기를 꺼내 듭니다. 그해 정치인 파넬은 연설에서, 공동체의 이익을 배반한 자를 폭력으로 다루지 말고 "마치 나병 환자를 대하듯" 철저히 피하라고 호소했죠. 소작농들은 이 전술을 보이콧에게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일꾼들은 밭에서 떠났고, 하인들은 집을 나갔고, 상점은 물건을 팔지 않았고, 우편배달부마저 배달을 거부했습니다. 보이콧은 멀쩡히 마을에 살면서도 유령 취급을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총 한 발 쏘지 않고 한 사람을 완전히 무력화한, 당시로서는 낯선 형태의 저항이었습니다.
한 시즌 만에 사전으로
가을 수확철이 되자 상황은 우스꽝스러워집니다. 아무도 일해 주지 않아 밭의 감자가 썩게 생기자, 다른 지역에서 온 자원자 수십 명이 군 병력 약 천 명의 호위를 받으며 감자를 캤습니다. 감자밭 하나에 소총과 대포까지 동원된 광경이었죠. 경비 비용이 수확물 가치를 몇 배나 웃돈, 배보다 배꼽이 큰 수확이었죠. 이 기묘한 광경을 영국과 미국 신문들이 앞다투어 보도했고, 새 전술에는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배척(ostracism) 같은 어려운 말 대신 지역 신부 존 오말리가 기자에게 당사자의 이름을 그대로 쓰자고 제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죠. 실제로 그해가 가기 전에 boycott은 집단 배척을 뜻하는 말로 지면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보이콧 본인은 그해 말 아일랜드를 떠났지만 단어는 남았고, 프랑스어와 독일어와 러시아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로 거의 그대로 수출됐습니다. 우리가 쓰는 불매운동이라는 말의 원형이 이렇게 만들어졌죠. 한 사람의 이름이 한 시즌 만에 보통명사가 된, 언어사에서도 드물게 빠른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