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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 4화. 모래 몇 알부터 더미인가

모래 한 알을 빼는 사소한 행동을 반복했을 뿐인데, 더미가 세상에서 사라집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더미의 역설이 겨냥하는 언어의 성질은 무엇일까요?
문제의 핵심은 모래알을 셀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몇 알부터 더미인지 경계가 없다는 모호성(vagueness)입니다. 한 알 차이로 더미가 더미 아닌 것이 되는 지점을 아무도 지목할 수 없다는 것이 역설을 만듭니다.

한 알씩 빼다 보면

고대 그리스의 논리학자 에우불리데스(Eubulides)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논증입니다. 그는 거짓말쟁이 역설도 만든, 역설 제조기 같은 인물이었죠. 논증은 이렇습니다. 모래 100만 알은 분명히 더미입니다. 그리고 더미에서 한 알을 빼도 여전히 더미라는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한 알 차이로 더미가 갑자기 더미 아닌 것이 될 리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 두 전제를 받아들이고 한 알씩 빼는 추론을 100만 번 반복하면, 결국 모래 한 알도 더미이고, 심지어 0알도 더미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리스어로 더미를 소로스(soros)라고 해서 소리테스 역설(sorites paradox)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뼈대의 유명한 변형이 대머리 역설입니다. 머리카락이 10만 가닥인 사람은 대머리가 아니고, 한 가닥 빠진다고 대머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추론을 반복하면 머리카락이 0가닥이어도 대머리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죠. 전제 하나하나는 거부하기 어려운데 결론은 명백히 틀렸습니다. 대체 어디서 잘못된 걸까요.

경계선은 있는가, 없는가

현대 논리학의 대응은 크게 갈립니다. 인식주의는 사실 정확한 경계선이 존재하는데 우리가 그 위치를 알 수 없을 뿐이라고 봅니다. 어딘가에 "이 한 알을 빼면 더미가 아니게 되는" 지점이 실재한다는 대담한 주장이죠. 다치논리와 퍼지 이론 쪽은 참과 거짓 사이에 정도를 허용해서, 더미임이 1에서 0으로 서서히 옅어진다고 봅니다. 초평가주의는 경계선을 어디에 긋든 성립하는 문장만 확정적 참으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역설을 무장해제하려 합니다.

어느 진영도 완승을 거두지 못한 채 논쟁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한가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몇 주차의 태아부터 사람인가", "소득 얼마부터 부자 증세 대상인가", "몇 세부터 성인인가"처럼, 법과 윤리가 모호한 개념 위에 선을 그어야 할 때마다 소리테스는 되살아납니다. 2천 년 전의 모래 더미가 오늘의 법정에 서 있는 셈입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소리테스 역설의 논증 구조를 가장 정확히 요약한 것은 무엇일까요?
소리테스는 전제도 그럴듯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의 추론도 멀쩡해 보이는데, 반복하면 틀린 결론이 나오는 구조입니다. 자기지시의 순환은 거짓말쟁이 역설, 무한합 이야기는 제논의 역설에 해당합니다.
문제 2. 더미 문제에 대한 인식주의의 입장은 무엇일까요?
인식주의는 더미와 더미 아님 사이에 날카로운 경계가 실재하며 다만 그 위치가 인식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정도를 허용하는 쪽은 다치논리와 퍼지 이론의 노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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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지 · 궁금하면 모던지 GitHub · 202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