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절과 방어 3강. 나와 남을 가르는 시스템
면역계의 진짜 과제는 적을 세게 때리는 것이 아니라, 누가 적인지 틀리지 않는 것입니다.
풀고 시작
감식반의 관점
면역계를 성벽으로 그리면 오해가 시작됩니다. 몸의 진짜 과제는 침입자를 막는 물리적 방어가 아니라 나와 남을 구별하는 판정입니다. 장 속에는 수십조 마리의 세균이 살고 있고 면역계는 그들을 대체로 눈감아 줍니다. 반면 딱 하나의 세포가 자기 유전체를 잘못 고쳐 쓰기 시작하면 그것은 제거 대상이 됩니다. 방어는 감식의 결과일 뿐입니다.
판정은 두 팀이 나눠 맡습니다. 선천면역은 몇 분 만에 달려드는 범용군이고, 적응면역은 며칠에 걸쳐 정밀 조준한 뒤 그 얼굴을 기억해 두는 특수군입니다. 세포 수준의 작동 원리는 생물학 서가의 미생물과 면역 3강에 정리되어 있으니, 여기서는 이 구분이 진료실에서 무엇을 바꾸는지를 봅니다. 예를 들어 선천면역 쪽이 약한 사람은 세균 감염이 잦고, 적응면역 쪽 특히 T세포가 약해지면 평소에는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던 곰팡이와 바이러스가 병을 만듭니다. 어느 부품이 빠졌는지에 따라 앓는 병의 목록이 달라지는 것이죠.
기억이 곧 백신의 근거입니다
적응면역이 남긴 기억세포는 의학이 손에 넣은 가장 값싼 무기의 원리가 되었습니다. 진짜 병원체 대신 안전한 형태의 항원을 미리 보여 주고 기억만 챙기는 것, 그것이 백신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짚어야 합니다.
첫째, 백신의 이득은 개인을 넘어섭니다. 접종자가 늘면 병원체가 옮겨 다닐 다음 숙주를 찾지 못해 전파 사슬이 끊깁니다. 이 집단면역 문턱은 전파력에서 나오는데, 기초감염재생산수가 12에서 18에 이르는 홍역은 인구의 92에서 94퍼센트가 면역을 가져야 유행이 멎습니다. 그래서 접종률이 몇 퍼센트만 내려가도 홍역은 어김없이 돌아옵니다.
둘째, 효과를 읽을 때는 상대위험과 절대위험을 갈라야 합니다. 어떤 백신이 중증 위험을 90퍼센트 낮춘다고 할 때, 그것은 접종하지 않은 같은 집단과 비교한 상대적 감소폭입니다. 원래 중증 위험이 1만 명당 100명인 고령층에서 90퍼센트는 중증 90건을 막아 주지만, 1만 명당 2명인 젊은 층에서 같은 90퍼센트가 막는 것은 1.8건입니다. 같은 숫자가 전혀 다른 크기의 이득인 셈이죠. 위험이 두 배라거나 절반이라는 말을 만나면 항상 무엇 대비인지, 원래 값이 얼마인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한편 백신과 자폐의 연관을 주장한 1998년 웨이크필드의 논문은 자료 조작이 드러나 2010년 철회되었고, 이후 수십만 명 규모의 코호트 연구들이 연관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과 백신 종류별 원리는 의학의 도구 3강에서 따로 다룹니다.
염증: 방어이면서 손상
로마의 켈수스는 2000년 전에 염증의 네 징후를 적었습니다. 붉어지고, 뜨거워지고, 붓고, 아픕니다. 이것은 병이 아니라 방어 작전의 흔적입니다. 혈관을 넓혀 혈류를 늘리고 틈을 벌려 면역세포와 단백질을 조직으로 들여보내는 과정에서 붓고 아픈 것이죠. 열이 나는 것도 마찬가지로 대응의 일부입니다.
문제는 이 작전이 조절을 잃을 때 생깁니다. 감염에 대한 반응이 통제를 벗어나 온몸의 혈관과 장기를 상하게 하는 상태가 패혈증인데, 여기서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세균 자체보다 몸의 반응입니다. 반대편 극단에는 만성 염증이 있습니다. 눈에 띄는 증상 없이 낮은 수준의 염증이 오래 이어지면 동맥경화나 여러 만성질환의 진행과 얽힌다는 근거가 쌓여 있습니다. 다만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는 질환마다 다르며, 아직 논쟁 중인 영역도 넓습니다.
오발과 과잉
정밀한 무기일수록 오발이 아픕니다. 자기 조직을 겨냥하게 된 림프구가 자가면역질환을 만드는 기전은 앞서 링크한 생물학 서가에 있으니, 여기서는 진료실 쪽 문제만 봅니다. 표적이 한 기관에 머물지 않는 탓에 관절과 피부와 콩팥의 증상이 서로 다른 병처럼 흩어져 오고, 그래서 진단명이 붙기까지 몇 해가 걸리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상당수가 여성에게 더 흔하다는 사실도 아직 완전히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알레르기는 성격이 다릅니다. 병원체가 아니라 꽃가루나 음식 단백질처럼 무해한 항원에 IgE 항체가 붙어 과잉 반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두드러기 정도로 끝나기도 하지만 기도가 좁아지고 혈압이 떨어지는 아나필락시스는 응급 상황입니다. 왜 최근 수십 년간 알레르기가 늘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 미생물 노출이 줄어든 탓이라는 위생 가설과 그 수정판인 오랜 친구 가설이 제기되어 있으나, 아직 결론이 난 문제는 아닙니다. 반면 확립된 것도 있습니다. 땅콩 알레르기 고위험 영아를 대상으로 한 2015년 LEAP 시험은 땅콩을 일찍 접하게 한 쪽에서 알레르기 발생이 크게 낮았음을 보였고, 이는 무조건 피하게 하던 기존 통념을 뒤집었습니다. 물론 개별 아이에게 무엇을 언제 먹일지는 반드시 진료를 통해 정해야 합니다.
면역력이라는 상품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면역을 높인다는 말은 방향 자체가 틀렸습니다. 목표는 강화가 아니라 정확한 판정과 적절한 종료이기 때문입니다. 근거가 탄탄한 개입은 오히려 심심합니다. 예방접종, 금연,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신체 활동입니다. 반면 면역 증강을 내세우는 대다수 보조제는 사람 대상 임상에서 감염을 줄인다는 증거가 빈약합니다. 흔히 언급되는 비타민 C만 해도, 일반인이 평소 챙겨 먹는다고 감기에 덜 걸리지는 않으며 앓는 기간이 조금 줄어드는 정도가 체계적 문헌고찰의 결론입니다. 어떤 성분이 면역세포 수치를 움직인다는 실험실 결과와 그 사람이 실제로 덜 아프다는 결과 사이에는 아주 긴 거리가 있습니다. 다음 강에서는 이 모든 조절 장치가 공유하는 하나의 원리, 항상성을 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면역은 나와 남을 가르는 판정 체계입니다. 그런데 장내 세균처럼 남이면서 나를 돕는 존재도 많습니다. 몸이 그리는 나의 경계선은 어디까지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