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지 / 의학과 인체 / 인체의 설계 4강. 음식이 내 몸이 되기까지

인체의 설계 4강. 음식이 내 몸이 되기까지

입에서 항문까지 이어진 관의 안쪽은, 엄밀히 말하면 아직 몸 바깥입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방금 삼킨 음식은 위에 도착한 순간 몸 안으로 들어온 것일까요?
소화관은 도넛의 구멍처럼 몸을 관통하는 통로여서 그 안쪽은 위상학적으로 외부입니다. 상피 벽을 통과해 혈액이나 림프로 넘어가는 흡수가 일어나야 진짜로 몸 안이 되며, 그래서 소화관 상피는 강력한 경계 겸 관문 역할을 합니다.

아홉 미터짜리 공정 라인

소화관은 하나의 관이지만 구간마다 맡은 공정이 다릅니다. 입은 자르고 갈아서 표면적을 늘리는 전처리 공장이고, 침 속의 아밀레이스가 녹말을 조금 건드립니다. 식도는 근육의 파도, 곧 연동운동으로 음식을 밀어 내립니다. 중력이 아니라 근육이 하는 일이라 물구나무를 선 채로도 삼킬 수 있죠. 위에 대한 오해도 흔합니다. 위는 소화의 주역이 아니라 저장고 겸 전처리실입니다. 산성도가 pH 2 안팎까지 내려가는 강한 산으로 대부분의 세균을 죽이고 단백질 구조를 풀어 놓은 다음, 걸쭉해진 죽을 조금씩 소장으로 내보냅니다. 자기 벽은 두꺼운 점액층과 빠르게 교체되는 상피로 버텨 내죠. 진짜 소화와 흡수는 그다음 6미터가 넘는 소장에서 벌어집니다. 대장은 남은 것에서 물과 전해질을 회수하고, 인간의 효소가 손대지 못한 식이섬유를 세균에게 넘깁니다. 위를 상당 부분 절제하고도 살 수 있지만 소장을 크게 잃으면 영양 유지가 어려워지는 이유가 이 분업에 있습니다.

가위와 비누와 중화제

소장으로 넘어온 죽에 세 가지가 쏟아집니다. 첫째는 효소입니다. 췌장액에 든 아밀레이스, 리페이스, 단백질 분해효소가 각각 탄수화물과 지방과 단백질을 잘게 자릅니다. 여기에 무서운 설계가 숨어 있습니다. 단백질 분해효소는 비활성 상태로 분비되어 소장에 도착한 뒤에야 켜집니다. 그러지 않으면 췌장이 자기 자신을 소화해 버리니까요. 이 안전장치가 무너져 효소가 췌장 안에서 활성화되는 상태가 급성 췌장염입니다. 둘째는 중탄산입니다. 위산에 절어 도착한 죽을 중화해 주지 않으면 효소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셋째는 담즙인데, 여기서 자주 헷갈립니다. 담즙은 효소가 아닙니다. 간이 만들고 담낭이 농축해 두었다가 내보내는 담즙은 세제처럼 큰 지방 덩어리를 잘게 흩어 효소가 달라붙을 면적을 늘려 줍니다. 자르는 것은 리페이스이고, 담즙은 자를 수 있게 판을 깔아 주는 역할이죠.

접고 접고 또 접어서

흡수가 소장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한 단어로 요약됩니다. 면적입니다. 소장 안쪽 벽은 우선 주름져 있고, 그 주름 위에 융모라는 손가락 모양 돌기가 빽빽하며, 융모를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의 표면에 다시 미세융모가 솔처럼 돋아 있습니다. 접기를 세 번 겹친 구조입니다. 여기서 유명한 정정 하나를 짚고 가겠습니다. 오래된 교과서들은 이 표면적을 테니스 코트 크기, 곧 200제곱미터 이상으로 적었지만 2014년 헬란데르와 팬드릭스의 재측정에 따르면 실제로는 30제곱미터 안팎, 원룸 바닥 정도입니다. 인상적인 숫자일수록 다시 세어 봐야 한다는 교훈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그래도 결론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밋밋한 관이었다면 얻었을 면적의 수백 배를 확보한 것이니까요. 융모 안에는 모세혈관과 림프관이 들어 있어 당과 아미노산은 혈액으로, 지방은 림프로 나뉘어 실려 갑니다. 이 표면이 겪는 마모도 만만치 않습니다. 소화효소와 산성 잔재에 계속 씻기는 장 상피세포는 며칠 만에 통째로 교체되는데, 인체에서 가장 빠르게 갈아 끼우는 조직에 속합니다. 항암 치료가 분열이 빠른 세포를 함께 때릴 때 소화기 증상이 먼저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간이라는 공장이자 세관

소장의 모세혈관에서 나온 피는 곧장 심장으로 가지 않습니다. 문맥이라는 혈관으로 모여 간을 먼저 통과합니다. 흡수된 것을 무조건 온몸에 뿌리지 않고 검문부터 하는 구조죠. 간이 하는 일은 목록으로 세기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넘치는 포도당을 글리코젠으로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도로 풀고, 단백질 대사에서 나온 독성 암모니아를 요소로 바꾸어 신장으로 보내며, 혈액의 삼투압을 지탱하는 알부민과 대부분의 응고인자를 만듭니다. 담즙을 생산하고, 철과 여러 비타민을 저장하며, 알코올과 약물을 대사합니다. 먹는 약의 용량이 주사와 다른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흡수된 약이 전신에 퍼지기 전에 간에서 상당 부분 먼저 처리되기 때문이죠. 곤란한 점은 간에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조용해서, 소화기 증상이 오래 이어지거나 반복될 때 스스로 원인을 짚기보다 진료와 검사로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한편 대장에서 식이섬유를 넘겨받는 미생물 군집 이야기는 생물학 서가에서 자세히 다루니 그쪽으로 넘기겠습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위의 주된 역할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 것은 무엇일까요?
위는 강한 산으로 세균을 줄이고 단백질 구조를 풀어 놓은 뒤 죽 상태로 조금씩 내보내는 저장고 겸 전처리실입니다. 본격적인 분해와 흡수는 소장의 몫이고, 지방 유화는 담즙, 수분 회수는 대장의 일이죠.
문제 2. 담즙의 역할을 바르게 설명한 것은 무엇일까요?
담즙은 효소가 아니라 계면활성 작용을 하는 액체이고, 실제로 지방을 자르는 것은 췌장의 리페이스입니다. 위산 중화는 췌장액의 중탄산이 맡습니다.
문제 3. 소장 안쪽 벽이 주름과 융모, 미세융모로 겹겹이 접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흡수량은 접촉 면적에 크게 좌우되므로 세 겹의 접기 구조가 결정적입니다. 실제 면적은 테니스 코트가 아니라 30제곱미터 안팎으로 재측정되었지만, 밋밋한 관에 비하면 여전히 수백 배죠.
문제 4. 소장에서 흡수된 물질이 심장으로 가기 전에 간을 먼저 지나는 구조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문맥을 통한 이 경로 덕분에 간은 영양소를 저장하거나 변환하고 독성 물질과 약물을 미리 대사합니다. 먹는 약과 주사의 용량 설계가 달라지는 초회 통과 효과도 이 구조에서 나옵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소화관 안쪽이 위상학적으로 몸 바깥이라면, 우리가 무언가를 몸에 넣는다고 말할 때의 안과 밖은 어디를 기준으로 나뉘는 것일까요.
  • 소장 표면적은 오래도록 테니스 코트 크기로 인용되다가 30제곱미터로 정정되었습니다. 교과서에 자리 잡은 숫자를 다시 세어 보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이전: 인체의 설계 3강 · 다음: 인체의 설계 5강

모던지 · 궁금하면 모던지 GitHub · 202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