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의 탄생과 방법 1강. 마음을 실험실에 들이다
마음은 재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는 것이라고 오래 믿었습니다. 1879년에 누군가 그 믿음을 실험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풀고 시작
철학의 하숙생이 독립하던 날
심리학은 오랫동안 철학과의 방 한 칸을 빌려 쓰는 하숙생이었습니다. 마음은 크기도 무게도 없으니 잴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죠. 그 상식을 먼저 흔든 쪽은 뜻밖에도 생리학자들이었습니다. 베버는 손에 얹은 추가 얼마나 무거워져야 사람이 차이를 알아채는지 재고, 그 최소한의 차이가 원래 무게에 비례한다는 규칙성을 찾아냈습니다. 페히너는 1860년 『정신물리학 요소』에서 이 관계를 밀고 나가 자극의 물리량과 감각의 크기를 하나의 식으로 묶었고요. 그 식이 로그 함수라는 페히너의 결론은 뒤에 스티븐스가 거듭제곱 함수로 고쳐 잡았지만, 감각을 수식으로 다룰 수 있다는 발상 자체는 그대로 살아남았습니다. 헬름홀츠는 잴 수 없다고 여겨지던 신경 신호의 전달 속도를 개구리 신경에서 실제로 측정해 냈습니다. 마음이 물질 세계와 규칙적으로 맞물린다면, 그 맞물림은 측정할 수 있습니다. 분트가 1879년 라이프치히에 실험실을 연 것은 이 흐름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는 훈련받은 관찰자에게 규격화된 절차로 자기 경험을 보고하게 하는 내성법(introspection)을 썼고, 반응 시간을 밀리초 단위로 쟀습니다.
내성법이 무너진 자리
문제는 금방 드러났습니다. 분트의 제자 티치너는 이 방법을 미국으로 가져가 의식을 더는 쪼갤 수 없는 요소로 분해하겠다는 구조주의(structuralism)로 밀어붙였는데, 같은 자극을 주고 같은 절차로 물었는데도 실험실마다 보고가 엇갈렸습니다. 뷔르츠부르크의 연구자들은 아무런 심상 없이도 사고가 진행된다고 보고했고 라이프치히 쪽은 그럴 리 없다고 맞섰는데, 어느 쪽이 옳은지 가려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관찰자 한 사람만 볼 수 있는 자료는 제3자가 검증할 수 없습니다. 1913년 왓슨은 이 교착에 도끼를 들었습니다. 의식이라는 관찰 불가능한 것을 아예 연구 대상에서 빼고 자극과 반응만 다루자는 선언이었죠. 그가 1920년 어린 아기에게 흰 쥐와 굉음을 짝지어 공포 반응을 만들었다는 사례는 교과서 단골이지만, 참가자가 한 명뿐이고 절차 기록이 불완전하며 이후 제대로 복제된 적이 없고 오늘날의 윤리 심의는 통과하지 못합니다. 반면 스키너가 정리한 강화 계획의 효과는 종을 바꿔 가며 수없이 재현되었고 지금도 견고합니다.
기계라는 은유가 마음을 되돌려 놓다
행동주의는 검증 가능한 것만 다루자는 규율로 심리학을 단련시켰지만, 그 규율로는 다룰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1956년 밀러는 사람이 한 번에 붙잡을 수 있는 항목이 일곱 개 안팎이라는 유명한 논문을 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후하게 잡은 숫자여서, 되뇌기를 막고 청크를 엄격히 세면 네 개 근처라고 보는 연구가 많습니다. 그러나 용량에 좁은 상한이 있다는 결론 자체는 반복해서 확인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촘스키는 스키너의 언어 이론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아이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문장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강화의 누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결정타는 컴퓨터라는 새 은유였습니다. 입력과 출력 사이에 표상과 처리 단계를 놓아도 된다면, 보이지 않는 내부를 가정하면서도 예측은 공개적으로 검증할 수 있으니까요. 1967년 나이서가 『인지심리학』을 내면서 이 흐름에 이름이 붙습니다. 다만 어느 날 행동주의가 무너진 것은 아니고, 두 전통은 한동안 나란히 굴러갔습니다.
정신분석은 어디에 서 있나
대중적 영향력만 놓고 보면 프로이트가 이 모든 이름을 압도합니다. 그런데 과학적 지위를 두고는 오래 다툼이 있었습니다. 포퍼의 비판이 대표적입니다. 어떤 행동이 나와도 사후에 설명이 붙는 이론은 틀릴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 버린다는 것이죠. 오늘날의 평가는 갈라서 봅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정보 처리가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은 인지과학이 확립했지만, 그것은 억압된 욕동이 들끓는 프로이트식 무의식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꿈의 소망 충족이나 심리성적 발달 단계 같은 핵심 명제는 실험적 지지가 약합니다. 반면 초기 관계 경험이 중요하다는 착안과 말로 풀어내는 치료 형식은 후속 연구와 임상에 남았습니다. 여기서 남은 물음, 곧 물질인 뇌가 어떻게 경험이 되는가는 심리학이 실험실로 옮겨 간 뒤에도 여전히 철학의 자리에 있습니다(심리철학).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내성 보고가 검증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밀려났다면, 오늘날 널리 쓰이는 자기 보고 설문은 그 비판을 어떻게 피해 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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