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심리학 4강. 언어는 어떻게 머릿속에 있나
아무도 문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네 살짜리는 이미 문법을 씁니다. 이 사실이 심리학 최대의 논쟁을 열었습니다.
풀고 시작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는데 배웁니다
아이가 언어를 익히는 속도는 다시 봐도 이상합니다. 만 세 살 무렵이면 이미 어순을 지키고, 조사를 붙이고, 처음 듣는 동사를 활용해 씁니다. 그런데 부모가 문법 규칙을 설명해 준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아이가 문법을 틀렸을 때 어른은 대개 교정하지 않고 내용에만 반응합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오류의 종류입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아이가 "들어요"라고 잘 말하다가 어느 시기에 "듣어요"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일이 생깁니다. 규칙 어미를 불규칙 용언에까지 밀어붙인 것이죠. 영어권 아이가 went를 쓰다가 goed로 후퇴하는 현상도 같은 계열입니다. 들어 본 적 없는 형태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아이가 사례를 통째로 외운 것이 아니라 규칙을 뽑아냈다는 뜻입니다. 촘스키가 1959년 스키너의 언어 행동 이론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인지혁명의 방아쇠를 당긴 지점이 여기입니다.
생득론 대 사용 기반 이론
촘스키의 논증은 자극의 빈곤(poverty of the stimulus)이라 불립니다. 아이가 받는 입력은 불완전하고 오류투성이인데 도달하는 지식은 정교하니, 그 간극을 메우는 무언가가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 무언가가 보편문법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반대편에는 토마셀로로 대표되는 사용 기반(usage-based) 이론이 있습니다. 아이는 문법 규칙이 아니라 구체적인 표현 덩어리를 먼저 익히고, 비슷한 덩어리를 비교하며 점차 추상적인 틀로 일반화한다는 그림입니다. 여기서는 타인의 의도를 읽는 능력과 공동 주의가 언어 습득의 엔진 역할을 합니다.
| 쟁점 | 생득론 | 사용 기반 이론 |
|---|---|---|
| 출발점 | 언어 전용 구조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 일반 학습 능력과 사회 인지에서 출발합니다 |
| 입력의 역할 | 매개변수를 정하는 방아쇠입니다 | 통계적 패턴의 원천입니다 |
| 설명이 강한 영역 | 습득 속도와 구조적 보편성입니다 | 개인차와 언어별 차이입니다 |
어느 쪽도 완승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논의는 무엇이 언어 전용이고 무엇이 일반 인지인지를 세분해 묻는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결정적 시기는 절벽인가 비탈인가
레너버그는 언어 습득에 생물학적으로 유리한 시기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가설의 증거로 자주 인용되는 것이 심한 학대와 고립 속에 자라 사춘기 무렵 발견된 아동 사례입니다. 어휘는 늘었지만 문법은 끝내 정상 수준에 이르지 못했죠.
그런데 이 사례는 근거로 쓰기에 약합니다. 단 한 명이고, 극심한 학대와 영양 결핍이라는 다른 원인이 뒤엉켜 있어 언어 노출 시기만 떼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증거는 1980년대 니카라과에서 나왔습니다. 청각장애 아동들이 모인 학교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수화를 만들어 냈고, 어릴 때 그 공동체에 들어온 세대일수록 더 체계적인 문법을 구사했습니다. 제2언어 습득 연구에서도 시작 나이가 이를수록 최종 도달 수준이 높은 경향이 반복 확인됩니다. 다만 특정 나이에서 뚝 끊기는 절벽이라기보다 완만히 내려가는 비탈에 가깝다는 해석이 우세합니다.
언어가 사고를 바꿀까요
사피어와 워프의 이름이 붙은 가설은 대중적으로 이렇게 유통됩니다. 언어에 없는 개념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 강한 결정론은 지지받지 못합니다. 색 이름이 적은 언어의 화자도 색을 구분하고, 수 단어가 빈약한 언어의 화자도 수량을 다룹니다.
살아남은 것은 약한 형태입니다. 언어는 사고를 가두지 않지만 습관적인 주의의 방향을 기울입니다. 파랑을 두 단어로 나누는 언어의 화자가 그 경계를 넘는 색 판단에서 조금 빠르다는 결과, 좌우 대신 동서남북으로 공간을 말하는 공동체의 화자가 방위 감각 과제에서 다르게 반응한다는 결과가 그 예입니다. 효과는 실재하지만 크기는 대체로 작고 과제 의존적입니다. 언어는 사고의 감옥이 아니라 기본 설정값에 가깝습니다.
이중언어 이점, 흔들리는 사례
한동안 이중언어 사용자가 억제 능력 같은 실행 기능에서 앞선다는 결과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두 언어를 계속 저울질하는 일이 곧 훈련이라는 설명이 붙었죠. 그런데 이후 표본이 큰 연구와 사전등록 연구에서는 효과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학회 발표 자료를 추적한 분석에서는 긍정적 결과가 부정적 결과보다 출판까지 도달하는 비율이 높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지금 합리적인 태도는 이렇습니다. 이중언어가 실행 기능을 일반적으로 끌어올린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고, 조건에 따라 작은 효과가 있을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이중언어 자체의 언어적 이점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잘 확립된 것과 흔들리는 것을 나누는 이 습관은 다음 강에서 편향 연구를 볼 때 그대로 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