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심리와 치료 4강. 상담은 정말 효과가 있나
1952년에 한 심리학자가 심리치료의 효과가 저절로 낫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도발이 이 분야를 과학으로 만들었습니다.
풀고 시작
아이젠크의 도발
1952년, 한스 아이젠크는 심리치료의 효과를 검토한 논문에서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습니다. 치료를 받은 신경증 환자의 호전율이 치료를 받지 않고 시간이 지난 사람들의 호전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자연 관해율은 70%대였고, 결론은 명료했습니다. 심리치료가 뭔가를 더한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죠.
이 논문은 곧 방법론에서 난타당했습니다. 비교 집단으로 쓴 자료의 출처와 호전의 정의가 서로 달랐고, 치료군과 비치료군의 애초 중증도가 같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반박당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아이젠크의 도발은 이 분야에 무작위 통제 시험을 요구하는 압력을 만들었습니다. 효과가 있다는 임상가의 확신이 아니라 통제된 비교로 답해야 한다는 규범은 이때부터 자리를 잡습니다.
메타분석이라는 응답
25년 뒤인 1977년, 진 글래스와 메리 리 스미스가 심리치료 연구 375편을 한꺼번에 계산해 평균 효과 크기 약 0.68이라는 값을 내놓습니다. 치료받은 사람의 평균이 대조군의 상위 25% 근처에 놓인다는 뜻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 의학 전체가 쓰는 메타분석이라는 도구 자체가 이 논쟁 속에서 이름을 얻고 널리 퍼졌다는 점입니다. 아이젠크의 공격이 결과적으로 새 방법론을 낳은 셈이죠.
여기서도 정직하게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심리치료 연구는 효과가 나온 연구가 더 잘 출판되는 편향에 특히 취약합니다. 이후 여러 연구진이 미발표 연구까지 고려해 보정한 결과, 우울증 심리치료의 효과 크기는 초기에 보고된 값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효과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중간 정도의 효과를 큰 효과로 읽어 온 기간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도도새 평결과 그 반론
1936년 사울 로젠츠바이크는 학파마다 다른 설명을 내세우면서 결과는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도도새의 판정을 인용했습니다. 모두가 이겼으니 모두 상을 받아야 한다는 대사였죠. 이후 학파 간 비교 연구들이 실제로 작은 차이만 보고하면서 이 별명이 굳었습니다.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 특정 문제에는 특정 기법이 더 낫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특정 공포증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는 노출 기반 치료가, 강박증에는 노출 및 반응 방지가 상대적으로 뚜렷한 우위를 보입니다. 둘째, 학파 간 차이는 원래 작기 때문에 그 차이를 잡으려면 큰 표본이 필요한데, 많은 비교 연구가 그만한 규모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차이가 없다는 결과와 차이를 찾지 못했다는 결과는 다릅니다. 셋째, 연구자가 지지하는 학파가 이기는 경향, 즉 충성도 효과가 반복 관찰됐습니다.
무엇이 공통으로 작동하는가
학파의 차이가 작다면 무엇이 일하고 있을까요. 공통 요인 진영의 답은 이렇습니다. 이해받는 관계, 내 고통에 이름과 순서를 붙여 주는 설명 틀,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 그리고 매주 같은 자리에 나타나 무언가를 해 보는 구조입니다.
가장 많이 연구된 것이 치료 동맹입니다. 목표와 과제에 대한 합의, 그리고 정서적 유대를 뜻하는데, 동맹의 질과 치료 성과의 상관은 여러 메타분석에서 대략 0.28 언저리로 보고됩니다. 작지 않은 값이지만 여기서 멈춰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관입니다. 좋은 동맹이 호전을 만든 것인지, 초기에 증상이 좋아진 사람이 치료자를 좋게 평가하게 된 것인지를 상관만으로는 가를 수 없습니다. 시점을 분리해 분석한 연구들은 동맹이 이후 호전을 예측하는 부분이 있다고 보고하지만, 인과의 크기는 여전히 조심스럽게 다뤄집니다.
근거 기반 실천, 그리고 화면 너머의 치료
근거 기반 실천은 세 가지를 함께 놓습니다. 최선의 연구 근거, 임상가의 전문성, 그리고 환자의 특성과 가치입니다. 매뉴얼을 그대로 읽으라는 뜻이 아니라 셋 중 어느 하나도 빼지 말라는 뜻이죠. 그리고 심리치료도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빼놓으면 안 됩니다. 사고 직후 모두에게 감정을 상세히 말하게 하던 일회성 위기 디브리핑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예방하지 못했고 일부 연구에서는 오히려 나쁜 결과와 연관됐습니다. 선의로 설계된 개입이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도 통제된 연구가 필요했습니다.
디지털 치료는 접근성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답입니다. 인터넷 기반 인지행동치료는 경도에서 중등도의 우울과 불안에서 효과가 보고되는데, 조건이 붙습니다. 사람의 안내가 붙은 프로그램이 완전 자율 프로그램보다 낫고, 연구 환경 밖의 실제 사용에서는 중도 이탈률이 매우 높습니다. 챗봇 형태의 개입은 아직 근거가 얇고, 위기 상황의 판단과 책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겠습니다. 이 강의는 어떤 치료가 나에게 맞는지 알려 주는 자리가 아닙니다. 근거 목록은 선택의 재료일 뿐이고, 실제 선택은 자기 상태를 함께 살펴본 임상가와 상의해서 내립니다. 힘든 상태가 이어진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나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첫 문이 되고, 위기 상황에서는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로 연결됩니다.
여기까지가 심리학 서가입니다. 방법과 뇌에서 출발해 인지와 학습, 발달과 성격, 사회적 마음을 지나 마음이 무너지는 자리와 그것을 고치는 시도까지 왔습니다. 관통하는 태도는 하나였습니다. 마음에 대한 직관은 절반쯤 틀리고, 어떤 유명한 연구는 다시 해 보니 무너졌으며, 그럼에도 무엇이 참인지 계속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서가에서 가져갈 것이 하나라면 결론 목록이 아니라 그 확인하는 습관이면 좋겠습니다.
인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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