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심리학 1강. 다수가 틀렸다고 말할 때
눈앞의 선분보다 옆 사람의 목소리가 더 셀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증명했다는 실험들이 우리가 배운 그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데 있습니다.
풀고 시작
선분 세 개가 무너뜨린 확신
1951년 스와스모어 대학의 한 실험실에 대학생들이 시력 검사를 받는다는 안내를 듣고 모였습니다. 카드 두 장이 놓입니다. 한쪽에는 기준선 하나, 다른 쪽에는 길이가 뚜렷이 다른 선 셋. 혼자 풀면 오답률이 1퍼센트도 안 되는, 민망할 만큼 쉬운 과제였죠. 그런데 솔로몬 애쉬는 진짜 참가자를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히고 나머지 일곱 명을 미리 짜 둔 연기자로 채웠습니다. 이들이 태연한 얼굴로 명백히 틀린 선을 고르기 시작합니다.
결과는 심리학사에 남았습니다. 결정적 시행의 약 37퍼센트에서 참가자는 다수를 따라 틀린 답을 말했고, 참가자 넷 중 셋은 적어도 한 번 동조했습니다. 정작 흥미로운 것은 조건을 바꿨을 때입니다. 다수가 서너 명이면 동조는 이미 거의 최대치였고 인원을 더 늘려도 별 변화가 없었습니다. 대신 다수 가운데 한 명이 이탈해 다른 답을 말하는 순간 동조는 무너졌습니다. 그 이탈자가 정답을 말하든 엉뚱한 제3의 오답을 말하든 상관없었습니다. 사람을 붙잡은 것은 다수의 크기가 아니라 만장일치라는 형식이었죠. 답을 소리 내지 않고 종이에 적게 한 후속 조건에서 동조가 다시 줄어든 것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참가자 상당수는 선분이 달라 보인 것이 아니라 혼자 튀는 사람이 되기 싫었던 겁니다.
이 실험은 재현이 잘 되는 편에 속합니다. 다만 상수는 아닙니다. 본드와 스미스가 17개국 133개 연구를 모은 1996년 메타분석에서 동조는 어디서나 나타났지만 크기는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달랐습니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에서 더 컸고, 미국 안에서는 1950년대 이후 완만하게 줄어들었습니다.
450볼트까지 올라간 스위치
10년 뒤 예일에서 스탠리 밀그램이 훨씬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참가자는 학습과 처벌을 연구한다는 설명을 듣고 교사 역할을 맡습니다. 옆방의 학습자가 틀릴 때마다 15볼트씩 올려 가며 전기충격을 준다고 믿었고, 스위치의 끝에는 450볼트가 있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극소수만 끝까지 갈 것이라 예측했지만, 기본 조건 참가자 40명 중 26명, 즉 65퍼센트가 마지막 스위치까지 갔습니다.
여기까지가 교과서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밀그램이 예일에 남긴 원자료와 녹음이 열리면서 그림이 복잡해졌습니다. 지나 페리가 아카이브를 뒤져 2012년에 낸 보고에 따르면 실험자는 대본에 없는 압박을 반복해서 가했고, 참가자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전기충격이 진짜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충격이 진짜라고 믿었다고 보고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덜 복종했다는 재분석도 나왔습니다. 해슬럼과 라이커의 재해석은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실험자의 네 가지 재촉 가운데 "당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라는 순수한 명령이 나오면 참가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그만뒀고, "실험이 요구합니다"처럼 과학이라는 대의에 호소할 때 계속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것은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추종에 가깝습니다.
윤리 문제도 남습니다. 참가자들은 실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사후 설명은 한참 뒤에야 이뤄졌습니다. 오늘날 같은 설계로는 연구윤리위원회를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버거가 2009년에 수행한 재현은 150볼트에서 멈추는 축소판이었고, 그 지점까지의 복종률은 밀그램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6일 만에 문을 닫은 지하 감옥
1971년 여름, 필립 짐바르도는 스탠퍼드 심리학과 건물 지하를 감옥으로 꾸미고 청년 24명을 무작위로 간수와 죄수로 나눴습니다. 2주 예정이던 연구는 6일 만에 중단됩니다. 교과서에 실린 서사는 강렬했습니다. 평범한 대학생이 역할이라는 옷을 입자 며칠 만에 가학적인 간수와 무너진 죄수가 되었다는 것이죠.
이 서사는 지금 거의 해체되었습니다. 티보 르 텍시에가 스탠퍼드 아카이브를 조사해 2019년에 발표한 분석, 그리고 2018년에 공개된 참가자 인터뷰들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간수들은 스스로 잔혹해진 것이 아니라 강경하게 행동하라는 지도를 받았고 그 녹음이 남아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무너졌다고 알려진 참가자는 나가고 싶어 연기했다고 훗날 증언했습니다. 모집 광고에 감옥 생활 연구라고 적혀 있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카나한과 맥팔런드는 2007년에 그런 문구가 붙은 광고에 지원하는 사람이 공격성과 권위주의 점수가 더 높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통제집단도 없었고, 결과는 주류 심리학 학술지의 정식 실험 논문이 아니라 소규모 전문지의 서술적 보고로 남았습니다. 결정적으로 2002년 영국에서 방송과 함께 수행된 재현 연구에서는 간수 쪽이 먼저 무너지고 죄수들이 결속하는 정반대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남는 것
세 연구가 흔들렸다고 해서 사회심리학의 핵심 명제까지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행동은 성격보다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는 발견은 다른 수많은 증거로도 지지됩니다. 다만 작동 방식에 대한 설명이 바뀌었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역할이라는 옷이 저절로 몸에 배는 마법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속했다고 느끼는지 그리고 누가 그 행동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지입니다.
여기서 얻는 방법론 교훈도 큽니다. 표본이 작고 통제집단이 없으며 결과가 극적으로 아름다운 연구는 일단 의심하는 편이 맞습니다. 4강에서 다룰 로버스 케이브 실험도 정확히 같은 검증대에 오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윤리 심사를 통과할 수 없는 설계로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있다면, 우리는 그 질문을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답의 확실성을 낮춘 채로 계속 물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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