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심리학 4강. 편견은 어디서 오나
편견이 어떻게 생기는지는 꽤 알아냈습니다. 정작 어떻게 줄이는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풀고 시작
세 단어를 갈라놓는 것부터
편견 이야기가 자주 헛도는 이유는 서로 다른 세 가지를 한 단어로 뭉뚱그리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은 이것을 층위로 나눕니다.
| 층위 | 성격 | 예시 |
|---|---|---|
| 고정관념 | 집단에 대한 믿음이며 인지의 문제입니다 | 저 집단은 계산에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
| 편견 | 집단에 대한 감정이며 평가의 문제입니다 | 저 집단이 어쩐지 싫다고 느낍니다 |
| 차별 | 집단 구성원을 향한 행동의 문제입니다 | 저 집단 지원자를 서류에서 떨어뜨립니다 |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셋이 늘 붙어 다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고정관념을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믿는 것은 다르고, 싫은 감정을 품는 것과 실제로 불이익을 주는 것도 다릅니다. 2강에서 본 라피에르의 여행 연구처럼 말과 행동은 자주 어긋납니다. 반대로 아무런 적대감 없이도 관행과 제도가 차별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만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전제는 생각보다 약한 다리 위에 서 있습니다.
여름 캠프에서 벌어진 전쟁과 휴전
1954년 오클라호마의 로버스 케이브 주립공원. 무자퍼 셰리프는 서로 모르는 11세 소년 22명을 두 무리로 나눠 따로 캠프를 시작했습니다. 각자 방울뱀과 독수리라는 이름을 짓고 결속이 생긴 뒤 두 팀을 붙였습니다. 야구와 줄다리기로 점수를 다투게 하자 며칠 만에 깃발이 불타고 숙소가 습격당했습니다. 셰리프의 진짜 관심은 화해였습니다. 함께 영화를 보게 하는 정도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효과가 난 것은 양쪽이 힘을 합쳐야만 풀리는 문제를 던졌을 때였습니다. 캠프의 급수관이 막히고 식량 트럭이 진창에 빠집니다. 두 팀이 같은 밧줄을 당겨 트럭을 꺼낸 뒤 적대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이것이 상위 목표(superordinate goal)입니다.
이 극적인 이야기에도 각주가 필요합니다. 참가자는 22명이고 통제집단은 없으며, 무엇보다 셰리프는 그 전해에 같은 설계를 뉴욕주 미들 그로브에서 시도했다가 실패했습니다. 소년들이 좀처럼 싸우지 않았던 것이죠. 지나 페리가 아카이브에서 확인한 바로는 연구진이 갈등을 부추기는 개입을 했고, 실패한 첫 연구는 논문으로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상위 목표라는 착상 자체는 이후 조각 맞추기 교실 같은 협동학습 연구에서 독립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로버스 케이브 자체는 결정적 증거가 아니라 잘 만들어진 이야기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만나면 정말 나아질까
고든 올포트는 1954년에 접촉이 편견을 줄이려면 네 조건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두 집단이 그 상황에서 대등한 지위를 가질 것, 공동의 목표가 있을 것, 경쟁이 아니라 협력으로 만날 것, 그리고 제도나 권위가 그 만남을 지지할 것입니다. 조건 없이 그냥 섞어 놓기만 하면 오히려 경쟁과 위협이 부각될 수 있습니다.
증거는 어느 정도일까요. 페티그루와 트롭이 500편이 넘는 연구와 700개가 넘는 표본을 모은 2006년 메타분석에서 접촉과 편견의 평균 상관은 대략 마이너스 0.21이었습니다. 방향은 일관되지만 크기는 크지 않고, 올포트의 조건이 갖춰지면 조금 더 커졌습니다. 여기에 반드시 붙여야 할 단서가 있습니다. 이 연구들의 다수는 횡단 상관입니다. 편견이 적은 사람이 접촉을 더 많이 선택했을 가능성을 상관만으로는 배제할 수 없습니다. 2019년에 나온 재평가는 무작위 배정을 갖춘 잘 통제된 연구가 실은 소수이고, 그마저도 대학생 대상 단기 개입에 몰려 있으며 성인과 실제 소수집단을 대상으로 한 장기 증거는 얇다고 지적했습니다.
숨은 편향을 잰다는 시험
1998년에 나온 암묵적 연합 검사(Implicit Association Test)는 심리학 도구 가운데 드물게 대중적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원리는 단순합니다. 화면에 뜨는 얼굴과 단어를 분류하게 하면서 특정 조합일 때 반응이 얼마나 빨라지는지를 잽니다. 머릿속에서 강하게 연결된 짝일수록 빨라진다는 가정이죠. 수천만 명이 온라인에서 이 검사를 받았고 많은 사람이 자기 점수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논쟁은 두 지점입니다. 첫째는 개인의 차별 행동을 얼마나 맞히느냐입니다. 2013년 메타분석은 예측력이 매우 작다고 보고했고, 2019년의 또 다른 메타분석은 암묵 측정치를 실험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 변화가 행동 변화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둘째는 재검사 신뢰도입니다. 같은 사람이 다시 받으면 점수가 꽤 달라져서 개인 진단에 쓰기에는 낮은 편이고, 개발자들도 개인 점수를 진단처럼 해석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그렇다고 쓸모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역이나 조직 단위로 평균 낸 값이 그곳의 실제 격차 지표와 상관을 보인다는 연구들이 있어, 개인의 마음보다 환경에 쌓인 편향의 온도계로 읽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듣나
편견 감소 개입의 성적표는 겸손합니다. 2009년의 한 리뷰는 널리 시행되는 프로그램일수록 엄격한 현장 평가를 거치지 않았다는 불균형을 지적했습니다. 다양성 교육을 모은 메타분석은 지식은 비교적 잘 늘지만 태도 변화는 작고 행동 변화의 증거는 더 약하며 시간이 지나면 줄어든다고 보고합니다. 일회성 워크숍이 조직 문화를 바꾼다는 기대는 근거가 얇습니다.
그나마 유망한 방향은 개인의 신념을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는 쪽입니다. 2009년 르완다에서 화해를 다룬 라디오 드라마를 1년간 들려준 현장실험에서, 청취자들의 개인적 신념은 별로 바뀌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무엇이 정상인가에 대한 인식과 실제 행동은 바뀌었습니다. 규범이 움직이면 행동이 따라온다는 것이죠. 3강의 집단 극화와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편견은 개인의 머릿속 오류이기 이전에 집단이 함께 유지하는 관계이고, 그래서 개입도 집단 수준에서 설계될 때 승산이 커집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개인의 태도를 바꾸는 개입의 효과가 작다면, 편견 문제의 주된 해결 자원을 교육에서 제도 설계로 옮기는 것이 옳을까요. 그때 잃는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