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심리학 3강. 우리가 되면 달라집니다
동전 던지기로 갈린 두 팀에게도 사람은 곧바로 편을 듭니다. 그것도 내 몫을 줄여 가면서까지요.
풀고 시작
클레와 칸딘스키로 편을 가른 실험
1970년대 초 헨리 타지펠은 편견이 생기는 최소 조건을 찾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하찮은 근거만 있어도 사람이 편을 가르는지 보려 한 것이죠. 영국 남학생들에게 파울 클레와 바실리 칸딘스키의 추상화를 보여 주고 어느 쪽이 좋으냐고 물은 뒤 당신은 클레 선호 집단이라고 알려 줬습니다. 같은 집단원을 만난 적도 없고 서로 이익이 걸린 것도 없었으며, 실은 배정이 무작위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돈을 나눌 때 자기 집단에 더 줬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양쪽 다 이득이 커지는 배분보다 내 집단과 상대 집단의 격차를 벌리는 배분을 고르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사회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이 나옵니다. 사람은 자존감의 일부를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끌어오기 때문에, 내 집단이 남보다 나아 보이는 것 자체가 보상이 됩니다. 최소집단 효과는 여러 나라에서 되풀이 확인된 편에 속합니다. 다만 한 가지 오해는 정리하고 가야 합니다. 메릴린 브루어가 지적했듯 여기서 주로 관찰되는 것은 내 편을 챙기는 편애이지 상대를 미워하는 적대가 아닙니다. 둘은 자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이 구분은 4강에서 편견을 다룰 때 결정적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나쁜 결정을 내릴 때
1961년 피그만 침공은 미국 현대사에서 손꼽히는 실패였습니다. 케네디 행정부에는 최고의 학벌과 경력이 모여 있었는데도 계획의 허점을 아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어빙 재니스는 회의 기록을 분석해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응집력 높은 집단이 외부와 차단되고, 리더가 먼저 선호를 밝히고, 반대 의견을 검토할 절차가 없고, 시간 압박이 심할 때, 만장일치처럼 보이는 착각이 만들어지고 구성원은 스스로 입을 닫는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는 설득력 있지만 증거의 성격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재니스의 근거는 주로 역사적 사례 분석이었고, 실험실에서 조건을 하나씩 조작해 본 후속 연구들은 그 예측을 일관되게 지지하지 못했습니다. 응집력이 높다고 늘 나쁜 결정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반복 확인된 것은 리더가 먼저 결론을 내비치는 지시적 리더십의 해로움 정도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집단사고는 검증된 인과 모형이라기보다 회의 설계용 점검표로 쓸모 있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반대 역할을 미리 지정하고 의견을 익명으로 받는 절차가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따로 있습니다.
책임이 흩어질 때
19세기 말 프랑스의 농공학자 막시밀리앙 링겔만이 줄다리기 밧줄에 장력계를 달았습니다. 혼자 당길 때의 힘을 100이라 하면 여덟 명이 함께 당길 때 한 사람의 몫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협응이 어긋난 탓도 있겠지만, 1979년 라타네 연구진이 눈가리개와 헤드폰으로 협응 문제를 없앤 뒤 박수와 고함을 시켜 봐도 개인의 출력은 여전히 줄었습니다. 이것이 사회적 태만(social loafing)입니다. 78개 연구를 모은 1993년 메타분석에서 효과는 중간 크기였고, 결정적으로 개인의 기여를 식별할 수 있게 만들면 태만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조별 과제가 억울한 이유와 해법이 같은 문장 안에 있는 셈이죠.
같은 논리가 응급 상황에도 적용됩니다. 1968년 달리와 라타네는 옆방에서 누군가 발작을 일으키는 상황을 꾸미고, 나 혼자 듣고 있다고 믿는 조건과 여러 명이 함께 듣고 있다고 믿는 조건을 비교했습니다. 목격자가 많다고 믿을수록 도우러 나가는 비율이 낮았고 나가기까지 걸린 시간도 길었습니다. 책임이 인원수만큼 나뉘고, 남들이 가만있는 것을 보고 별일 아닌가 보다라고 해석하는 다원적 무지가 겹칩니다.
그런데 이 연구를 촉발한 사건 보도 자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1964년 뉴욕에서 키티 제노비스가 살해되었을 때 신문은 38명이 지켜보기만 했다고 썼지만, 2007년에 발표된 재조사는 그 숫자와 서술에 근거가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최소 두 사람이 경찰에 신고했고 한 이웃은 그녀 곁을 지켰습니다. 효과 자체는 메타분석에서 확인되지만 조건이 붙습니다. 상황이 명백히 위험할수록 방관자 효과는 약해지고 때로는 뒤집힙니다. 2020년에 세 나라의 공공장소 폐쇄회로 영상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실제 다툼의 열 건 중 아홉 건에서 누군가 개입했습니다.
대화가 끝나면 더 멀리 가 있습니다
집단 토론은 극단을 평균으로 깎아 줄 것 같지만 대개 반대입니다. 1961년에 처음 보고된 위험 이행 현상은 이후 더 일반적인 법칙으로 정리됐습니다. 토론은 집단이 원래 기울어 있던 방향으로 구성원을 더 밀어붙입니다. 이것이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입니다. 원인은 두 갈래가 겹칩니다. 같은 편의 논거를 계속 들으면서 새로운 근거가 쌓이고, 집단의 평균 위치를 알게 되면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가야 제대로 된 구성원처럼 보인다는 비교가 작동합니다. 이 현상은 재현이 잘 되는 축에 속하며, 비슷한 사람끼리 묶이는 추천 알고리즘 환경에서 의견이 왜 그렇게 빨리 갈라지는지를 설명하는 기본 뼈대이기도 합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회의에서 반대 역할을 미리 정해 두는 장치가 늘어나면 결정의 질이 좋아질까요, 아니면 반대가 형식이 되어 진짜 이견은 더 깊이 숨어 버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