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과 개인차 3강. 지능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지능 검사는 뒤처진 아이를 돕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20년 만에 사람을 걸러 내는 무기가 되었죠.
풀고 시작
모든 시험이 서로 상관된다는 이상한 발견
1904년 스피어먼은 학생들의 성적표에서 이상한 규칙을 발견합니다. 라틴어를 잘하는 아이가 수학도, 음감 검사도 평균 이상인 경향이 있었습니다.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과제들의 상관이 모두 양수였던 것이죠. 이 현상을 양의 다양체라고 부르고, 그 공통 성분에 붙인 이름이 g 요인입니다.
그 뒤 100년 동안 지능 연구가 도달한 그림은 하나도 여럿도 아닌 위계입니다. 캐럴이 460개가 넘는 자료를 재분석해 정리한 삼층 모형이 대표적입니다. 맨 아래에 어휘력이나 처리 속도 같은 좁은 능력들이 있고, 중간층에 유동지능과 결정지능 같은 넓은 능력이 있으며, 꼭대기에 g가 있습니다. 유동지능은 낯선 문제를 푸는 힘이고 결정지능은 축적된 지식인데, 유동지능은 성인기 이후 서서히 내려가는 반면 결정지능은 오래 유지됩니다.
좋은 도구가 무기가 되기까지
비네의 검사는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성격이 바뀝니다. 터먼이 스탠퍼드에서 개정판을 내놓았고, 1차 대전 중 여키스 주도로 육군 검사가 170만 명 규모로 시행됐습니다. 문제는 이 결과가 해석된 방식이었습니다. 영어를 갓 배운 이민자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병사의 낮은 점수가 환경의 효과가 아니라 타고난 능력의 증거로 읽혔습니다.
이 오독은 정책의 언어가 됩니다. 1924년 미국의 이민 제한 입법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 자료가 근거로 인용됐고, 여러 주에서 강제 불임 수술법이 통과됐습니다. 1927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벅 대 벨 사건에서 그 법을 합헌으로 판단했습니다. 다만 검사 결과가 의회 표결에 실제로 얼마나 힘을 발휘했는지는 역사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남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생학 운동이 검사 점수를 자기 주장의 과학적 외피로 가져다 썼다는 사실입니다. 검사가 나쁜 것이 아니라 검사 점수를 사람의 가치 등급으로 바꿔 읽은 해석이 나빴습니다. 이 역사는 지금도 심리검사 윤리의 출발점으로 가르쳐집니다.
한 세기 동안 점수가 올라갔습니다
1980년대에 플린은 여러 나라의 지능 검사 규준 자료를 모으다 기묘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20세기 내내 평균 점수가 10년마다 약 3점씩 올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플린 효과입니다. 규준을 갱신하지 않으면 옛날 기준에서는 평균이던 사람이 오늘 기준에서는 평균 이하로 나오게 됩니다.
세 세대 만에 유전자가 바뀌었을 리는 없습니다. 영양과 보건의 개선, 교육 기간의 연장, 추상적 분류를 요구하는 일상 환경의 변화가 주된 후보로 거론됩니다. 흥미롭게도 최근 몇몇 북유럽 국가에서는 상승이 멈추거나 뒤집혔다는 보고가 나왔고, 노르웨이 징집 자료에서는 같은 가정 안의 형제들 사이에서도 하락이 관찰됐습니다. 어느 쪽이든 지능 점수가 환경에 크게 반응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해졌습니다.
유전율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숫자가 아닙니다
지능 논쟁에서 가장 많이 오해되는 개념이 유전율입니다. 유전율은 특정 집단의, 특정 환경에서, 점수의 개인차 중 유전적 차이로 설명되는 분산의 비율입니다. 한 개인의 지능 중 몇 퍼센트가 유전이라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그런 문장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습니다.
두 가지 따름 정리가 중요합니다. 첫째, 유전율은 환경에 따라 변합니다. 모두가 충분한 교육을 받는 사회에서는 남은 차이가 유전 쪽에 몰려 유전율이 올라가고, 환경 격차가 큰 집단에서는 내려갑니다. 미국의 저소득 가정 표본에서 유전율이 크게 낮아졌다는 연구가 있었고 재현 결과는 나라마다 엇갈립니다. 둘째, 집단 내 유전율이 아무리 높아도 집단 간 평균 차이의 원인은 그것으로 알 수 없습니다. 르원틴의 비유가 유명합니다. 같은 씨앗 봉지를 비옥한 밭과 척박한 밭에 나눠 뿌리면, 각 밭 안에서 키 차이는 전부 유전 때문이지만 두 밭의 평균 차이는 전부 흙 때문입니다.
다중지능이 인기만큼 지지받지 못하는 이유
1983년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은 교육계를 사로잡았습니다. 언어, 논리수학, 공간, 음악, 신체운동, 대인, 자기이해 같은 지능이 서로 독립적이라는 주장이었죠. 하나의 잣대로 아이를 줄 세우지 말자는 윤리적 호소가 강력했습니다.
문제는 실증입니다. 가드너가 제시한 능력들을 실제로 측정해 보면 서로 양의 상관을 보이고 상당 부분이 g로 수렴합니다. 독립성이라는 핵심 주장이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 것이죠. 표준 검사로 재는 것을 이론 자체가 거부하다 보니 반증 가능한 예측을 내놓기도 어렵습니다. 같은 계열의 대중적 통념인 학습 유형 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각형에게 그림으로 가르치면 더 잘 배운다는 가설은 제대로 설계된 검증에서 지지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g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능 검사는 학업과 직무 수행을 어느 정도 예측하지만, 오래 인용되던 보정 상관값은 최근 재분석에서 상당히 낮게 다시 추정됐습니다. 예측력이 있다는 것과 운명을 정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다음 강에서는 이런 검사의 품질을 무엇으로 따지는지, 좋은 검사와 나쁜 검사의 경계를 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지능 검사가 예측력을 가진다는 사실과 그 점수로 사람을 선별해도 된다는 주장 사이에는 어떤 추가 전제가 필요할까요? 그 전제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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