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심리와 치료 1강.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정신장애 목록에서 어떤 항목은 새로운 병리 증거가 아니라 학회의 결정으로 지워졌습니다. 경계선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 긋습니다.
풀고 시작
드문 것과 아픈 것은 다릅니다
올림픽 400미터 결승에 서는 사람은 인류의 0.001%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이상하다고 부르지 않죠. 통계적 드묾을 이상의 기준으로 삼는 순간 이런 반례에 바로 걸립니다. 그래서 두 번째 기준이 붙습니다. 본인이 괴로운가, 즉 주관적 고통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반쪽입니다. 조증 삽화에 있는 사람은 자기 인생 최고의 상태라고 느끼기도 하니까요. 세 번째 기준인 기능 손상이 그래서 무겁게 쓰입니다. 출근을, 관계를, 자기 돌봄을 유지하지 못하는가를 봅니다.
여기에 네 번째 후보인 사회적 규범 일탈이 끼어들면 이야기가 위험해집니다. 동성애는 1970년대 초까지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 목록에 정신장애로 올라 있었고, 1973년에 목록에서 빠졌습니다. 새로운 병리 증거가 나와서가 아니라, 무엇을 병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바뀌어서였습니다. 규범만으로 정상을 정의하면 다수의 불편이 곧 진단이 됩니다. 그래서 임상은 여러 기준을 겹쳐 쓰고, 겹쳐 써도 경계는 선이 아니라 흐릿한 띠로 남습니다.
DSM이 지금 모습이 된 사연
1970년대 초, 같은 환자를 두고 미국 의사와 영국 의사가 다른 진단을 내리는 일이 잇따라 보고됐습니다. 진단이 의사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 진단은 정보를 거의 담지 못합니다. 1980년의 DSM-III는 이 위기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로버트 스피처가 이끈 이 개정판은 원인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걷어내고, 관찰 가능한 증상 목록과 지속 기간이라는 조작적 기준으로 진단을 다시 썼습니다. 진단자 간 일치도는 실제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질문이 남습니다. 신뢰도가 높다고 타당도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답을 낸다고 해서 그 답이 실재하는 무언가를 가리킨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2013년 DSM-5를 둘러싼 논쟁이 정확히 그 지점이었습니다. 사별 직후의 우울을 진단에서 제외해 주던 조항이 사라지자 애도까지 병으로 만드느냐는 비판이 나왔고, 당시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원장이던 토머스 인셀은 DSM의 약점이 타당도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며 증상 목록 대신 뇌와 행동의 차원을 직접 연구하자는 RDoC를 제안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ICD-11도 국제 통계 기준으로 함께 쓰입니다.
진단이라는 양날의 칼
진단명은 압축 파일입니다. 임상가 사이의 소통을 빠르게 하고, 어떤 치료가 그 상태에 근거를 갖는지 찾게 해 주며, 보험과 복지 서비스의 문을 엽니다. 몇 년째 이유를 모른 채 무너지던 사람이 이름을 듣고 오히려 안도했다는 이야기는 임상에서 드물지 않습니다.
반대편에는 낙인이 있습니다. 꼬리표는 사람에 대한 기대를 바꾸고, 바뀐 기대는 그 사람의 행동을 바꿉니다. 그래서 요즘 임상 문헌은 사람과 병을 붙여 부르는 표현 대신 병을 가진 사람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또 하나의 쟁점은 범주형 분류 자체입니다. 우울이나 불안은 있고 없고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인데, 어느 지점에 선을 그어 진단명을 붙이는 방식이 현실을 잘 담는가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증상을 연속선 위의 점수로 기술하는 차원 모형이 대안으로 제안돼 왔는데, 이 방식은 경계선의 자의성을 줄이는 대신 보험 청구나 법적 판단처럼 예 아니오를 요구하는 자리에서 곧바로 쓰기 어렵다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로젠한 실험, 그리고 그 실험에 생긴 균열
1973년 사이언스에 실린 데이비드 로젠한의 논문은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한 방이었습니다. 멀쩡한 지원자들이 환청이 들린다고만 호소하고 정신병원에 갔더니 모두 입원했고, 입원 후에는 정상적으로 행동했는데도 상당 기간 퇴원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죠. 진단이 사람이 아니라 맥락을 읽는다는 결론은 반세기 동안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2019년 저널리스트 수재나 캐헐런이 원자료를 추적하면서 균열이 드러났습니다. 로젠한 본인의 입원 기록이 논문의 서술과 어긋났고, 실제로 확인 가능한 가짜 환자는 극소수였으며, 긍정적인 경험을 보고한 참가자가 최종 자료에서 빠진 정황도 나왔습니다. 논문이 철회된 것은 아니고 이 연구가 던진 문제의식도 여전히 살아 있지만, 강한 근거로 인용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이것이 심리학이 지난 10여 년 겪어 온 재현성 위기의 축소판입니다. 유명한 연구일수록 결론만 외우지 말고 자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물어야 합니다.
이 강의가 하지 않는 일
여기서 다루는 기준과 분류는 지도이지 진단이 아닙니다. 실제 진단은 훈련받은 임상가가 면담과 경과, 신체적 원인 배제를 거쳐 내립니다. 증상 목록을 읽으며 자신이나 주변 사람에게 이름을 붙이는 일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힘든 상태가 이어진다면 목록이 아니라 사람을 찾아가시면 됩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진단명이 낙인을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치료와 지원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면, 어느 쪽 비용이 더 큰지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할까요? 그 판단의 주체는 임상가일까요, 당사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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