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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기초 4강. 죄와 벌의 원칙

형법의 진짜 수신인은 범죄자가 아니라 국가입니다. 여기까지만 처벌하라고 못 박아 둔 문서죠.

풀고 시작

문제 1. 어떤 행위를 한 뒤에 그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새로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될까요?
헌법과 형법은 행위할 때 범죄가 아니었던 일로 나중에 처벌받지 않도록 정해 두었습니다. 무엇이 금지되는지 미리 알 수 있어야 사람이 자기 행동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죠. 국회의 의결이나 피해자의 의사로 뚫을 수 있는 원칙이 아닙니다.

국가의 손을 묶어 두는 문서

형법을 처음 배우는 사람은 이 법이 범죄자를 잡기 위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반대에 가깝습니다. 국가는 형법이 없어도 사람을 가둘 힘이 있습니다. 형법이 하는 일은 그 힘이 발동할 수 있는 조건을 미리 못 박아 두는 것이죠.

그 핵심이 죄형법정주의, 곧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형벌도 없다는 원칙입니다. 근대 형법학에서 이 명제를 라틴어 표어로 다듬은 사람은 포이어바흐였습니다. 여기서 네 갈래가 갈라져 나옵니다. 처벌 근거는 관습이 아니라 성문 법률이어야 하고, 행위 뒤에 만들어진 법을 소급 적용할 수 없으며, 무엇이 금지되는지 보통 사람이 알아볼 만큼 명확해야 하고, 비슷하다는 이유로 조문을 늘려 잡는 유추해석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네 개가 함께 있어야 시민이 자기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알고 했는가, 모르고 했는가

범죄가 성립하는지는 보통 세 단계로 따집니다. 법에 적힌 범죄의 틀에 들어맞는가, 그런데도 정당화되는 사정이 있는가, 그리고 이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가입니다.

첫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고의입니다. 형법은 원칙적으로 알고 한 행위만 처벌하고, 실수로 한 행위는 법에 따로 규정이 있을 때만 처벌합니다. 그래서 과실치사나 실화처럼 이름이 따로 붙은 조항들이 존재하는 것이죠. 흥미로운 지점은 그 사이에 있는 미필적 고의입니다. 결과를 확실히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래도 괜찮다고 받아들인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곳으로 무언가를 던지면서 맞아도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면, 원하지 않았다는 항변만으로는 고의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정당방위와 긴급피난

같은 폭행이라도 정당화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당방위는 자기나 남의 법익에 대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부당한 침해를 막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입니다. 세 단어가 관문입니다. 침해가 이미 끝났다면 그때부터는 방위가 아니라 보복이고, 침해 자체가 정당했다면 방위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반격이 지나치면 상당성을 잃습니다. 정도를 넘은 과잉방위는 처벌을 줄이거나 면제할 수 있을 뿐 완전한 면죄부가 아닙니다.

긴급피난은 결이 다릅니다. 이쪽은 위난을 피하려고 애먼 사람의 법익을 건드리는 경우죠. 달려오는 차를 피하다 남의 가게 유리문을 부순 상황을 떠올리면 됩니다. 정당방위가 옳음이 그름을 상대하는 구도라면 긴급피난은 옳음이 옳음을 상대하는 구도입니다. 그래서 요건이 더 빡빡합니다. 달리 피할 방법이 없었어야 하고, 지키려는 이익이 희생시킨 이익보다 커야 합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형사재판의 출발점은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누구나 무죄로 추정된다는 원칙입니다. 이것은 마음가짐이 아니라 규칙의 배분입니다. 증명 책임은 전적으로 검사에게 있고, 피고인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의무가 없습니다. 재판은 인상이 아니라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로만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위법하게 얻은 증거는 아무리 진실을 담고 있어도 배제됩니다. 자백만으로 유죄를 선고할 수 없고 이를 뒷받침할 다른 증거가 필요하다는 규칙도 같은 계열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요.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블랙스톤의 문장이 답입니다. 두 종류의 오류가 있는데, 둘 중 하나를 줄이면 다른 하나가 늘어납니다. 형사절차는 무고한 사람을 벌하는 쪽의 비용을 훨씬 무겁게 계산하기로 미리 정해 둔 체계입니다.

벌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형벌의 근거를 두고 두 진영이 오래 다퉜습니다. 응보형론은 벌이 미래의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봅니다. 잘못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라야 하며, 사람을 사회의 도구로 쓰지 않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는 태도라는 것이죠. 칸트가 대표적입니다. 목적형론은 반대로 묻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다면 벌은 앞을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베카리아와 벤담은 형벌의 정당성을 범죄 예방에서 찾았고, 잔혹함보다 확실함과 신속함이 억제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의 통설은 어느 한쪽이 아니라, 책임의 크기가 형벌의 상한을 정하고 그 안에서 예방과 교화를 고려하는 절충에 가깝습니다.

이 대립이 가장 날카롭게 부딪히는 곳이 사형제입니다. 존치를 지지하는 쪽은 극단적 범죄에는 그에 상응하는 응답이 필요하며 그것이 사회가 생명의 무게를 인정하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피해자와 유족이 감당한 것에 비추어 무기형은 충분하지 않다는 감각, 그리고 강한 억제 효과가 있으리라는 판단도 여기에 실립니다. 폐지를 지지하는 쪽은 오판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을 가장 앞에 세웁니다. 사법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오류가 있고, 다른 형벌은 풀어 줄 수 있지만 집행된 사형은 되돌릴 수 없죠. 이에 대해 존치 쪽은 오판의 위험이 수사와 재판 절차를 엄격하게 만들어 줄일 문제이지 형벌 자체를 없앨 이유는 아니라고 되받습니다. 억제 효과에 대한 통계 연구도 결론이 갈려 어느 쪽으로도 확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한국은 법에 사형이 남아 있으나 오랫동안 집행하지 않아 국제적으로는 사실상 폐지국으로 분류되며, 헌법재판소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한 적이 있지만 그때도 재판관들의 의견이 크게 갈렸습니다. 이 강의는 어느 쪽 결론도 내리지 않습니다. 여기까지가 제도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 상식이며 법률 자문이 아니고, 구체적 사건은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죄형법정주의에서 파생되는 원칙으로 보기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요?
유추해석 금지는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조문을 늘려 잡는 것을 막는 원칙이지, 유리한 해석까지 막는 것이 아닙니다. 나머지 셋은 소급효 금지, 명확성 원칙, 법률주의로 모두 죄형법정주의의 갈래입니다.
문제 2. 미필적 고의를 가장 정확히 서술한 것은 무엇일까요?
미필적 고의는 결과를 확실히 의욕하지는 않았지만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고 용인한 심리 상태입니다.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채 주의를 게을리한 것은 과실이며, 형법은 과실을 별도 규정이 있을 때만 처벌합니다.
문제 3. 긴급피난이 정당방위보다 요건이 엄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당방위가 옳음과 그름의 구도라면 긴급피난은 옳음과 옳음의 구도입니다. 애먼 사람이 피해를 입으므로 달리 피할 방법이 없었어야 하고 지키려는 이익이 희생된 이익보다 커야 한다는 조건이 추가됩니다.
문제 4. 사형제 논쟁의 현재 상태를 가장 정확히 서술한 것은 무엇일까요?
억제 효과에 관한 실증 연구는 결과가 갈려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평가가 우세합니다. 존치론은 응보와 피해자의 관점을, 폐지론은 오판의 비가역성을 앞세우며 대립이 이어지고 있고, 한국은 법에 사형을 두되 오랫동안 집행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무고한 사람을 벌하는 오류와 진범을 놓치는 오류 중 어느 쪽을 더 무겁게 볼지는 결국 사회의 선택입니다. 그 저울의 눈금을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정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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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지 · 궁금하면 모던지 GitHub · 202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