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작동 2강. 정당은 왜 필요한가
정당을 싫어하는 유권자는 많은데, 정당 없이 굴러가는 민주주의는 사실상 없습니다. 이 모순이 정당학의 출발점입니다.
풀고 시작
정당은 무엇을 대신해 주는가
정당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대체로 박합니다. 그런데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 중 정당 없이 운영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정당이 유권자를 대신해 세 가지 일을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이익 결집입니다. 사회에는 서로 어긋나는 요구가 수천 개씩 떠다니는데, 정당은 그중 양립 가능한 것들을 묶어 하나의 정책 꾸러미로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요구도 생기지만, 묶지 않으면 의회는 개별 민원의 창구가 되고 맙니다. 둘째는 후보 충원입니다. 누가 공직에 나설 만한지 걸러 내고 훈련시키는 일을 정당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죠. 셋째가 가장 중요한 책임 정치입니다. 유권자는 300명의 의정 활동을 개별로 추적할 수 없지만, 정당이라는 이름표가 있으면 성적표를 한 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정당 일체감이 정보 비용이 큰 유권자에게 일종의 지름길로 작동한다는 관찰은 1960년대 미국 선거 연구 이후 정치학의 표준 설명이 되었습니다.
정당 체제는 몇 개가 아니라 어떤 모양인가
정당 체제를 셀 때 흔히 정당 수를 셉니다. 그런데 의석 1석짜리 정당과 100석짜리 정당을 똑같이 하나로 세면 실상이 안 보이죠. 그래서 정치학은 의석이나 득표 비중으로 가중한 유효 정당 수라는 지표를 씁니다. 여기에 사르토리(Giovanni Sartori)는 수보다 중요한 변수를 더했습니다. 이념 거리입니다. 정당이 다섯이어도 서로 가까우면 연립과 타협이 가능한 온건한 다당제지만, 극단에 자리 잡은 정당이 양쪽에 있고 중앙이 비어 있으면 원심력이 작동해 체제 자체가 불안해집니다. 정당 체제의 건강은 정당의 개수가 아니라 정당들 사이의 거리와 경쟁 방향이 정합니다.
대중정당에서 카르텔 정당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의 노동자 정당들은 수십만 명의 당원을 조직하고 당비를 걷어 신문과 학교와 협동조합을 함께 운영했습니다. 이런 형태를 대중정당이라 부릅니다. 정당이 곧 생활 세계였죠.
그런데 텔레비전이 등장하고 계급 경계가 흐려지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독일 출신 정치학자 키르히하이머(Otto Kirchheimer)는 1960년대에 정당들이 특정 계급의 대변자이기를 포기하고 최대한 넓은 층에 호소하는 방향으로 변했다고 진단하며 이를 포괄 정당(catch-all party)이라 불렀습니다. 이념은 흐려지고 지도부의 재량은 커지며 당원의 비중은 줄어듭니다.
한 걸음 더 나간 진단이 1990년대에 나옵니다. 카츠(Richard Katz)와 메어(Peter Mair)는 정당이 이제 당원의 회비가 아니라 국고 보조와 공영 방송 접근 같은 국가 자원으로 살아가며, 서로 경쟁하는 척하면서 실은 기존 정당들이 자원을 나눠 갖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카르텔 정당 이론입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편차가 크고, 신생 정당이 실제로 기성 정당을 무너뜨린 사례도 적지 않아 카르텔이라는 은유가 과하다는 지적이죠.
양극화는 무엇이 갈라진 것인가
정당 양극화 연구는 지난 20여 년 정치학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학계는 갈립니다.
한쪽에서는 대중 자체가 이념적으로 멀어졌다고 봅니다. 다른 쪽에서는 평균적 유권자의 정책 선호는 크게 이동하지 않았고 다만 자기 이념에 맞는 정당으로 정렬해 들어갔을 뿐이며, 실제로 벌어진 것은 정치 엘리트라는 진단을 내놓습니다. 여기에 세 번째 관점이 더해졌습니다. 정책이 아니라 감정이 갈라졌다는 정서적 양극화 연구입니다. 상대 정당 지지자와 이웃이나 사돈이 되기 싫다는 응답이 늘어나는 현상은 정책 거리로는 설명되지 않죠.
원인 논쟁도 열려 있습니다. 미디어 환경의 파편화, 후보 선출 방식, 선거구 획정, 경제적 불평등, 인구 구성 변화가 후보로 거론되지만 어느 하나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무당층 증가도 겹쳐 읽어야 합니다.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늘고 있지만, 후속 질문으로 어느 쪽에 조금이라도 가깝냐고 물으면 상당수가 한쪽을 답하고 그들의 투표 행태는 지지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연구가 여러 나라에서 반복 확인되었습니다. 정당에 대한 애착이 사라진 것과 정당 기준의 판단이 사라진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갈라진 여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4강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정당이 국가 재원에 기대면 부유한 후원자에게 휘둘릴 위험은 줄지만 유권자와의 연결은 약해질 수 있습니다. 정당의 살림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 가장 덜 나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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