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작동 1강. 같은 표, 다른 결과
유권자가 마음을 바꾸지 않아도 당선자는 바뀔 수 있습니다. 표를 세는 규칙만 바꾸면 됩니다.
풀고 시작
표를 세는 규칙이 승자를 정합니다
선거를 민심이 그대로 흘러 들어오는 투명한 통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통로의 모양이 물의 흐름을 바꾼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선거 제도는 크게 두 계열입니다. 다수대표제는 선거구마다 표를 가장 많이 받은 한 사람만 뽑고, 나머지 표는 의석으로 전환되지 않은 채 사라집니다.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나누므로 20퍼센트를 얻은 정당이 대체로 20퍼센트의 의석을 갖습니다.
두 제도의 효과는 정반대로 갈립니다. 다수대표제는 큰 정당의 의석을 득표율보다 부풀리는 대신, 지역구 대표가 누구인지 분명하고 한 정당이 과반을 쥐어 책임 소재가 뚜렷한 정부가 만들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비례대표제는 작은 목소리까지 의회에 들여보내지만, 어느 정당도 과반이 없어 연립 협상이 길어지고 유권자가 표로 고르지 않은 조합이 정부가 되기도 하죠. 어느 쪽이 우월하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대표성과 통치의 안정성 가운데 무엇을 더 사겠느냐는 거래일 뿐입니다. 그래서 독일처럼 소선거구와 정당명부를 섞은 혼합형이 널리 쓰이고,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도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함께 쓰는 혼합형에 속합니다.
뒤베르제의 법칙, 그리고 그 예외
프랑스 정치학자 뒤베르제(Maurice Duverger)는 1950년대에 한 가지 규칙성을 정리했습니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을 단순다수로 뽑는 제도는 양당제로 수렴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두 겹입니다. 기계적 효과로 작은 정당은 전국에서 표를 얻어도 의석을 거의 못 얻고, 심리적 효과로 유권자가 사표를 피하려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에게 전략적으로 표를 옮깁니다. 지지 정당과 투표 정당이 어긋나는 순간이죠.
다만 이것을 법칙이라 부르기 망설이는 학자도 많습니다. 인도와 캐나다는 단순다수제인데도 정당이 여럿이고, 영국 역시 지역 기반 정당이 살아 있습니다. 지지가 전국에 옅게 퍼지면 소멸하지만 특정 지역에 뭉치면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법칙보다 강한 경향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과반을 만들어 내는 두 가지 방법
40퍼센트 지지로 당선된 사람을 다수의 대표라 부를 수 있을까요. 이 불편함을 푸는 장치가 둘 있습니다.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이 없으면 상위 두 명이 다시 겨룹니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가 대표적이죠. 1차에서는 마음 가는 후보를 찍고 2차에서 현실적 선택을 할 수 있어 사표 심리가 줄지만, 선거를 두 번 치르는 비용과 두 투표 사이의 급격한 연합 협상이 따라옵니다. 선호투표제는 유권자가 후보에게 순위를 매기고, 최하위 후보를 탈락시키며 그 표를 다음 순위로 넘기는 방식입니다. 호주 하원이 이 방식을 씁니다. 한 번의 투표로 결선 효과를 내지만 개표가 복잡하고, 어떤 후보에 대한 지지가 오히려 늘었는데 그 후보가 지는 이상 현상도 이론적으로 가능합니다.
선거구를 그리는 손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가 승인한 선거구 지도는 도롱뇽을 닮은 기괴한 모양이었습니다. 게리의 이름과 샐러맨더를 합친 게리맨더링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죠. 수법은 두 가지입니다. 상대 지지자를 한 선거구에 몰아넣어 나머지를 안전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여러 선거구로 잘게 쪼개 어디서도 이기지 못하게 만듭니다. 전체 득표는 그대로인데 의석 수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획정 권한을 정치권에서 떼어 독립 기구에 맡기고, 한국도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헌법재판소는 선거구 간 인구 편차의 상한을 좁히라는 결정을 내려 왔습니다.
완벽한 제도는 없다는 증명
18세기 프랑스의 콩도르세는 다수결이 순환할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다수가 A보다 B를, B보다 C를 선호하는데 동시에 C보다 A를 선호하는 상황이 실제로 생깁니다. 이 문제를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이 케네스 애로입니다. 그는 1951년에 선택지가 셋 이상일 때 개인의 순위를 모아 사회의 순위를 만드는 규칙은 몇 가지 최소한의 조건을 동시에 만족할 수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만장일치의 선호를 뒤집지 않을 것, 특정인의 뜻이 언제나 관철되지 않을 것, 무관한 제3의 선택지가 끼어들어도 두 후보의 우열이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조건들이죠. 이것이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입니다.
이 정리를 민주주의가 무의미하다는 선언으로 읽으면 오해입니다. 정확한 함의는 이렇습니다. 제도 선택은 정답을 찾는 계산이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지 고르는 가치 판단입니다. 그리고 어떤 규칙을 고르든 유권자와 정치인은 그 규칙에 맞춰 행동을 바꿉니다. 그 적응의 가장 큰 산물이 다음 강에서 다룰 정당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어떤 제도든 결함이 있다면, 제도를 고르는 절차 자체는 무엇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자기에게 유리한 제도를 아는 정치 세력이 제도를 고르는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이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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