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기초 2강. 헌법: 국가를 묶는 밧줄
헌법은 국민에게 명령하는 법이 아닙니다. 국가에게 여기까지만 하라고 명령하는 법이죠.
풀고 시작
왜 우리는 스스로를 묶어 두었을까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었지만, 그 노래를 들으면 배를 몰아 바위로 돌진하리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미리 자신을 돛대에 묶고 선원들에게 무슨 소리를 해도 풀지 말라고 명령했죠. 정치철학자들이 헌법을 설명할 때 즐겨 꺼내는 장면입니다. 헌법은 이성적일 때의 우리가 흥분한 상태의 우리를 묶어 두는 자기구속 장치라는 것이죠.
그래서 헌법의 문장은 대부분 국가를 향합니다. 국가는 이런 절차로만 세금을 걷을 수 있고, 이런 요건이 갖춰져야 사람을 가둘 수 있으며, 어떤 영역에는 아예 손댈 수 없다는 식입니다. 근대 입헌주의는 이 두 축, 곧 권력을 나누어 서로 견제하게 하는 통치 구조와 개인에게 국가를 상대로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기본권 목록 위에 서 있습니다. 헌법을 바꾸기 어렵게 만들어 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오늘의 다수가 화가 났다고 해서 내일의 소수를 지켜 줄 밧줄을 끊어 버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죠.
기본권도 무제한은 아닙니다
기본권은 흔히 몇 갈래로 나뉩니다. 국가의 간섭을 물리치는 자유권, 같게 대우받을 것을 요구하는 평등권, 정치에 참여하는 참정권, 침해당했을 때 구제를 구하는 청구권, 국가에게 일정한 급부를 요구하는 사회권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첫째 유형이라면 교육을 받을 권리는 마지막 유형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권리끼리 부딪힌다는 데 있습니다. 한 사람의 표현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명예와 충돌하고, 집회의 자유가 통행의 자유와 충돌하죠. 그래서 한국 헌법은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게 하면서, 그 경우에도 권리의 본질적 내용은 건드릴 수 없다고 못 박아 두었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심사 도구가 과잉금지 원칙입니다. 네 단계로 묻습니다. 제한의 목적이 정당한가, 그 수단이 목적 달성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 같은 효과를 내면서 덜 아픈 방법은 없는가, 그리고 얻는 공익이 잃는 사익보다 큰가입니다. 이 네 관문 중 하나라도 통과하지 못하면 그 법률은 위헌이 됩니다. 대포로 참새를 잡지 말라는 오래된 비유가 세 번째 단계를 가리킵니다.
위헌인지 누가 판단하나
한국은 1988년에 헌법재판소를 두면서 이 판단을 전담하는 기관을 갖게 됐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맡는 일은 다섯 가지, 곧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입니다.
시민이 가장 자주 마주치는 것은 앞의 둘입니다. 위헌법률심판은 재판 중인 사건에 적용될 법률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의심될 때 법원이 심판을 제청하는 통로입니다. 헌법소원은 공권력 때문에 기본권을 침해당한 사람이 직접 문을 두드리는 통로죠. 다만 다른 구제 절차를 먼저 밟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어느 쪽이든 법률을 위헌으로 선언하려면 재판관 아홉 명 중 여섯 명 이상이 찬성해야 합니다. 다수결의 결과물을 무효로 만드는 일이니 문턱을 높여 둔 것입니다.
아홉 사람이 다수를 이겨도 되는가
여기서 헌법학의 가장 오래된 논쟁이 시작됩니다. 선출되지 않은 소수의 법률가가 선출된 대표들이 만든 법을 무효로 선언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물음이죠. 미국 헌법학에서는 이것을 반다수결적 난점이라 부릅니다.
사법심사를 옹호하는 쪽은 이렇게 답합니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머릿수 싸움이 아니라 게임의 규칙 위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이고, 다수가 그 규칙 자체를 허물어 소수의 목소리를 봉쇄할 때 이를 되돌릴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 견해는 헌법재판소를 다수의 대체물이 아니라 민주적 절차의 막힌 관을 뚫는 정비공으로 봅니다. 애초에 헌법을 만든 것도 국민이므로, 헌법재판은 오늘의 다수가 어제의 국민이 정한 약속을 어겼는지 확인하는 일이라는 반박도 여기에 더해집니다.
반대쪽은 이렇게 되받습니다. 낙태나 표현의 한계처럼 사회가 깊이 갈라진 문제에서 정답은 법 기술로 도출되지 않고 결국 가치 판단이 개입합니다. 그렇다면 그 판단은 시민 다수와 그들이 뽑은 대표가 내리고 선거로 책임을 묻는 편이 낫다는 것이죠. 이 입장은 판사들도 결국 의견이 갈려 표결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같은 다수결이라면 왜 아홉 명의 다수결이 수천만 명의 다수결을 이겨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논쟁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특정 결정이 옳았는지 따지는 것은 이 강의가 할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제도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 상식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니고, 구체적 사건의 판단은 자료를 갖춘 전문가의 몫입니다. 우리가 챙길 것은 구도입니다. 다수의 힘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리든, 그 답의 대가를 알고 내리는 편이 낫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헌법재판소가 다수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볼 때, 그 권한이 남용되는지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견제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