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 1강. 국제사회에는 경찰이 없습니다
강도를 만나면 112에 신고합니다. 그런데 한 나라가 침공당하면, 어디에 신고해야 할까요.
풀고 시작
신고할 곳이 없다는 조건
국내에서 우리는 폭력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계약이 깨지면 법원이 있고 주먹이 날아오면 경찰이 옵니다. 홉스는 1651년 『리바이어던』에서 이런 장치가 없는 상태를 자연상태라 부르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썼습니다. 개인들은 자기 힘의 일부를 넘겨 주권자를 세우는 방식으로 그 상태를 빠져나왔죠.
그런데 국가들 사이에는 아직 그 주권자가 없습니다. 유엔이 있지만 유엔은 회원국이 만든 기구이지 회원국 위의 정부가 아니고, 국제사법재판소는 당사국이 관할권을 받아들여야 재판을 열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자기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며, 이를 자조(self-help) 체계라고 부릅니다. 여기까지는 아래 세 이론이 모두 공유하는 출발점입니다. 갈리는 것은 그 다음이죠.
현실주의: 힘만이 힘을 견제합니다
투키디데스는 2천 년도 더 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을 사실상 한 문장으로 압축했습니다. 아테네의 성장, 그리고 그것이 스파르타에 불러일으킨 두려움이었다는 것이죠. 이 문장이 현실주의의 씨앗입니다. 한스 모겐소는 1948년 『국가 간의 정치』에서 권력 추구를 국제정치의 상수로 놓았고, 케네스 월츠는 1979년 『국제정치이론』에서 원인을 인간 본성이 아니라 무정부라는 구조 자체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어느 한 나라가 지나치게 커지면 나머지가 뭉쳐 균형을 맞추는 세력 균형이 반복된다고 봅니다.
가장 아픈 통찰은 안보 딜레마입니다. 1950년 존 허츠가 이름 붙인 이 상황에서, A국이 순수하게 방어를 위해 군비를 늘려도 B국은 그 속마음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B가 대응 군비를 늘리면 A는 자기 걱정이 옳았다고 믿게 되죠.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아도 긴장은 올라갑니다. 악인이 없어도 구조가 비극을 만든다는 것이 현실주의의 핵심입니다. 다만 이 이론은 협력이 왜 오래 지속되는지, 냉전 이후 유럽에서 왜 균형 대신 통합이 진행됐는지를 설명하는 데 약하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냉전이 큰 전쟁 없이 끝난 것도, 냉전 뒤 최강국을 겨냥한 균형이 예상만큼 뚜렷하지 않았던 것도 이 이론이 미리 말해 주지 못한 대목이죠.
자유주의: 규칙과 이익이 손을 묶습니다
칸트는 1795년 『영구평화론』에서 전쟁을 줄이는 조건 세 가지를 걸었습니다. 각국이 공화정일 것,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맹을 만들 것, 이방인을 적대하지 않는 환대의 규범을 세울 것이었죠. 200년 뒤 이 발상은 두 갈래로 되살아납니다.
하나는 제도입니다. 코헤인과 나이는 1977년 『권력과 상호의존』에서 국가들이 여러 통로로 얽히면 군사력의 쓸모가 줄고, 국제 제도가 정보를 공유시키고 배신의 비용을 높여 협력을 유지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복되는 거래에서는 한 번의 이득보다 평판이 비싸지니까요. 다른 하나는 민주평화론입니다. 마이클 도일이 1983년 논문에서 정리했듯, 민주국가끼리는 서로 전쟁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통계적 규칙성이 관찰됩니다.
반론도 강합니다. 민주국가도 비민주국가를 상대로는 자주 싸웠기 때문에 평화가 민주주의 자체의 효과인지 진영과 동맹의 효과인지 가리기 어렵고, 민주주의와 전쟁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사례 수가 달라집니다. 1914년 유럽은 교역으로 깊이 얽혀 있었지만 그 얽힘이 전쟁을 막지는 못했다는 사실도 무겁게 남아 있죠.
구성주의: 무정부는 국가들이 만든 것입니다
알렉산더 웬트는 1992년 논문에서 도발적인 제목을 달았습니다. 무정부는 국가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뜻이었죠. 같은 무기라도 친구의 손에 있느냐 적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위협의 크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영국의 핵무기와 적대국의 핵무기가 미국에 다르게 읽히는 이유는 탄두의 물리적 성질이 아니라 관계의 성격입니다.
구성주의는 이 관계와 정체성, 그리고 서로가 공유하는 이해가 역사 속에서 만들어지고 또 바뀐다고 봅니다. 무정부라는 조건이 자동으로 적대를 낳는 것이 아니라, 적대적 관행이 쌓여 적대적 무정부가 된다는 것이죠. 반대로 신뢰의 관행이 쌓이면 같은 무정부 아래에서도 다른 세계가 나옵니다. 약점은 예측력입니다. 어떤 관념이 이길지 미리 말해 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하죠.
같은 사건, 세 개의 자막
세 이론은 냉전 종식이라는 하나의 사건도 다르게 읽습니다.
| 이론 | 무정부를 보는 눈 | 냉전 종식을 읽는 방식 |
|---|---|---|
| 현실주의 | 바꿀 수 없는 조건 | 국력과 군비 부담의 격차가 만든 힘의 결과입니다 |
| 자유주의 | 제도로 완화 가능한 조건 | 교류와 협상 제도가 후퇴의 통로를 열어 준 결과입니다 |
| 구성주의 | 국가들이 만든 관념 | 안보를 보는 새 관념이 퍼져 적의 정의가 바뀐 결과입니다 |
어느 자막이 옳은지 판정할 실험실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론은 정답이 아니라 렌즈로 쓰는 편이 낫습니다. 하나만 끼고 보면 반드시 보이지 않는 구역이 생기니까요. 2강에서는 이 렌즈들을 전쟁이라는 하나의 현상에 겨눠 보겠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세 이론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무엇을 근거로 고르시겠습니까. 설명력일까요, 예측력일까요, 아니면 그 이론을 믿는 정책결정자가 많아질 때 세계가 실제로 그렇게 변해 버리는 자기실현의 위험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