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1강. 지도를 보고 전략을 짜던 사람들
지도는 세계를 그대로 옮긴 그림이 아니라, 누군가 무엇을 중심에 놓기로 결정한 결과입니다.
풀고 시작
런던의 한 강연이 만든 지도
1904년 1월, 영국 왕립지리학회에서 핼퍼드 매킨더(Halford Mackinder)가 「역사의 지리적 중심축」이라는 강연을 합니다. 그는 유럽을 한가운데 놓고 세계를 보던 익숙한 시선을 통째로 옮겨 놓았습니다. 진짜 중심은 유럽이 아니라 유라시아 내륙, 배가 닿을 수 없는 그 거대한 안쪽이라는 것이었죠. 이때 그가 쓴 말은 아직 중심축 지대(pivot area)였는데, 1919년 저서에 이르러 이 지역에 심장지대(Heartland)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3단 명제가 나오죠. 동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심장지대를 지배하고, 심장지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섬(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을 지배하며, 세계섬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필 그때였을까요. 철도 때문입니다. 수백 년 동안 대량 수송의 왕은 배였고, 그래서 해양 제국이 세계를 나눠 가졌습니다. 그런데 대륙을 가로지르는 철도가 놓이면 내륙 국가도 병력과 물자를 빠르게 옮길 수 있습니다. 그 철도를 굴린 증기기관의 원리는 물리학 열역학 2강에서 다루는데, 열기관 하나가 세계 전략의 문법을 바꾼 셈입니다.
그런데 매킨더의 약점도 곧 드러났습니다. 지형이 운명을 정한다는 지리 결정론은 항공기와 미사일 앞에서 흔들립니다. 하늘로 넘어가면 내륙과 해안의 구분이 흐려지니까요. 이념, 동맹, 경제력 같은 변수도 이론에서 지워져 있었습니다.
가장자리가 진짜라고 말한 사람
예일대의 니컬러스 스파이크먼(Nicholas Spykman, 1893~1943)은 바로 이 지점에서 초점을 옮깁니다. 결정적인 곳은 심장지대가 아니라 그 가장자리, 즉 유럽과 중동과 남아시아와 동아시아를 잇는 주변지대(Rimland)라는 것입니다. 인구와 산업과 항구가 모두 그 띠에 있고, 육상 세력과 해양 세력이 부딪히는 곳도 그 띠입니다. 이 구도는 냉전기 봉쇄 전략의 지도와 겹쳐 읽히곤 하지만, 정책이 그의 책에서 곧장 나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한편 미 해군의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Alfred Thayer Mahan)은 1890년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에서 다른 답을 내놨습니다. 국력은 함대와 상선대와 해외 기지가 함께 굴러갈 때 나온다는 것이죠.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는 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삼키고 있다고 썼습니다. 이 책은 영국뿐 아니라 독일과 일본과 미국의 해군 확장론자들에게 교본처럼 읽혔고, 그 결과는 세계사 제국주의 강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론이 무기가 되었을 때
지정학이라는 말 자체는 스웨덴의 정치학자 루돌프 셸렌(Rudolf Kjellén)이 19세기 끝 무렵에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계에서 입에 올리기 껄끄러운 말이 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독일 지리학자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은 국가를 성장하는 유기체에 비유하며 레벤스라움(Lebensraum, 생활권)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원래는 생물지리학의 은유였는데, 카를 하우스호퍼를 거치며 독일 지정학의 어휘로 자리 잡았고 끝내 나치의 동방 침략과 인종 정책을 정당화하는 언어로 전용됩니다. 하우스호퍼 개인이 히틀러에게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는 과장되었다는 반론이 강하지만, 학문의 언어가 팽창의 알리바이로 쓰였다는 사실 자체는 남습니다. 지리가 운명이라고 말하는 순간, 침략은 자연법칙처럼 들리게 됩니다.
지도는 중립이 아닙니다
제라드 오투아탈(Gearóid Ó Tuathail)을 비롯한 연구자들이 1990년대에 세운 비판지정학(critical geopolitics)은 질문을 통째로 바꿉니다. 세계에 객관적인 지정학적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이야기가 세계를 그렇게 보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지도 한가운데 놓을지, 어떤 투영법을 쓸지, 어느 지역을 극동이나 중동으로 부를지가 이미 선택입니다. 극동은 런던에서 봐야 동쪽 끝이고, 각도를 보존하는 메르카토르 투영은 그 대가로 고위도의 면적을 부풀립니다. 지도와 공간 2강에서 본 왜곡 이야기가 여기서 정치 문제로 되돌아오는 것이죠. 고전 이론을 폐기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세계의 사진이 아니라 누군가의 주장으로 읽자는 제안입니다. 이 시선이 오늘 어떻게 되살아나는지는 정치와 법 국제정치 4강에서 이어집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위성과 해저 케이블과 데이터센터의 시대에도 지형은 여전히 전략을 제약할까요. 아니면 새로운 종류의 지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