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공간 1강. 세계를 종이에 옮긴 사람들
지도의 첫 번째 문법은 축척이 아니라 중심입니다. 누가 한가운데 놓이는가가 언제나 먼저 정해졌습니다.
풀고 시작
진흙 한 조각에 담긴 세계
기원전 6세기 무렵 바빌로니아의 누군가가 점토판에 세계를 새겼습니다. 대영박물관에 있는 이 이마고 문디(Imago Mundi)는 손바닥만 한 크기인데도 세계 전부를 그렸다고 주장합니다. 한가운데 바빌론이 있고, 유프라테스강이 지나가고, 바깥은 쓴 물의 강이라 부르는 바다가 원으로 둘러쌉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정확도가 아니라 배치입니다. 자기가 사는 도시가 하필 원의 정중앙에 놓여 있죠.
수백 년 뒤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는 전혀 다른 것을 시도합니다. 2세기에 쓴 『지리학』에서 그는 8천 개가 넘는 지점에 경도와 위도 값을 붙여 목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림 대신 좌표 데이터베이스를 남긴 셈이죠. 다만 그는 지구 둘레를 실제보다 작게 잡았습니다. 이 오차는 천 년을 넘게 살아남아, 서쪽으로 가면 아시아가 금방 나온다고 믿은 콜럼버스의 계산에 힘을 실어 줍니다. 숫자 하나의 실수가 항해의 역사를 밀어 버린 것입니다.
방위가 아니라 믿음을 그린 지도
중세 유럽의 T-O 지도를 처음 보면 실망하기 쉽습니다. 원 안에 T자를 그려 넣고 세 덩어리로 나눈 것이 전부거든요. 위쪽 절반이 아시아, 아래 왼쪽이 유럽, 아래 오른쪽이 아프리카이고, T의 가로획은 돈강과 나일강, 세로획은 지중해입니다. 위쪽은 북쪽이 아니라 동쪽이고, 중세 후기의 큰 지도들은 원의 한가운데에 예루살렘을 놓았습니다.
이 지도로는 어디에도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갈 생각으로 만든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T-O 지도는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가 아니라 세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그린 도해였죠. 지도가 늘 길찾기 도구였다는 생각 자체가 근대의 편견입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시계를 잃어버리다
대항해시대의 뱃사람들은 정반대의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지도는 살아 돌아오기 위한 물건이었으니까요. 항구와 항구를 직선으로 잇고 나침반 방위선을 방사형으로 뿌린 포르톨라노 해도가 지중해에서 쓰였고, 위도는 태양이나 북극성의 고도를 재면 꽤 정확히 나왔습니다. 문제는 경도였습니다.
경도를 알려면 지금 있는 곳의 시각과 기준 항구의 시각을 동시에 알아야 합니다. 즉 흔들리는 배 위에서 몇 달 동안 정확히 가는 시계가 필요했죠. 1707년 영국 함대가 위치를 잘못 잡아 실리 제도의 암초에 부딪혀 천사백 명이 넘는 수병이 죽는 참사가 벌어지자, 의회는 1714년 경도법을 만들어 거액의 상금을 걸었습니다. 천문학자들이 달의 위치로 푸는 방법에 매달릴 때, 시계공 존 해리슨이 수십 년을 갈아 넣어 해양 크로노미터를 완성합니다. 세계 지도는 결국 천문학이 아니라 태엽 장치가 정밀하게 만들었습니다.
선을 긋는 자가 땅을 가진다
지도가 정확해질수록 지도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아직 가 보지도 않은 세계를 대서양 위의 선 하나로 나눠 가졌습니다. 1884년과 1885년에 걸친 베를린 회담에서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 지도를 펴 놓고 경계를 그었고, 오늘날 아프리카 국경에 유난히 직선이 많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도는 현실을 옮기는 그릇이 아니라 현실을 만드는 도구였던 것이죠.
삼각형으로 나라를 재다
근대 국가는 자기 영토의 크기를 스스로 알고 싶어 했습니다. 여기서 삼각측량이 등장합니다. 원리는 매력적일 만큼 단순합니다. 기준선 하나만 땅에서 정확히 실측하고, 그다음부터는 각도만 재서 삼각형을 이어 붙여 나가는 것이죠. 17세기 네덜란드의 스넬리우스가 체계화했고, 프랑스에서는 카시니 가문이 대를 이어 전국을 삼각형 그물로 덮었습니다. 그 결과 프랑스 국토가 종전 추정보다 작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왕이 측량가들에게 영토를 빼앗겼다고 농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19세기 인도 대삼각측량은 이 작업이 얼마나 거대했는지 보여 줍니다. 수십 년에 걸쳐 아대륙을 가로지른 이 측량 사업 과정에서 히말라야 봉우리들의 높이가 계산되었고, 세계 최고봉의 이름도 그 측량국장의 이름을 따 붙여졌습니다. 다음 강에서는 이렇게 정밀하게 잰 땅을 종이에 옮기는 순간 반드시 생기는 왜곡, 곧 투영법의 문제를 다룹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T-O 지도는 길찾기에 쓸모가 없지만 그 시대의 세계관은 정확히 담았습니다. 지도의 정확성을 오직 측량 오차로만 평가하는 기준은 충분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