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공간 2강. 모든 지도는 거짓말합니다
어떤 지도가 덜 왜곡되었느냐는 질문은 틀렸습니다. 무엇을 지키려고 무엇을 포기했느냐가 옳은 질문입니다.
풀고 시작
오렌지 껍질을 평평하게 눌러 보세요
오렌지 껍질을 벗겨 책상에 놓고 손바닥으로 눌러 보면 반드시 찢어지거나 겹칩니다. 이것은 손재주 문제가 아니라 수학의 판정입니다. 1827년 가우스는 곡면의 휘어진 정도가 그 면 위에서만 측정되는 고유한 성질임을 증명하고, 스스로 뛰어난 정리(Theorema Egregium)라 불렀습니다. 종이를 원통처럼 말 수는 있어도 구처럼 만들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결론은 단호합니다. 지구를 평면에 옮기는 모든 방법은 면적, 각도, 거리 가운데 무언가를 반드시 망가뜨립니다. 지도가 거짓말한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정리의 따름정리입니다. 그러니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죠. 어떤 거짓말을 감수할 것인가.
항해사를 구한 도법이 세계를 부풀립니다
1569년 메르카토르는 항해자를 위한 지도를 발표합니다. 그의 도법에는 놀라운 성질이 있었습니다. 나침반 방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나아가는 항로, 곧 항정선이 지도 위에서 직선으로 그려지는 것이죠. 목적지까지 자를 대고 선을 긋고 그 각도로 키를 잡으면 도착합니다. 원양 항해에 이보다 실용적인 도구는 없었습니다.
대가는 고위도의 팽창이었습니다. 위선을 모두 적도와 같은 길이로 늘였으니, 위도가 높아질수록 세로로도 같은 비율로 늘여야 각도가 보존되거든요. 그 결과 지도 위의 그린란드는 아프리카와 비슷한 덩치로 보입니다. 실제 면적은 그린란드가 약 216만 제곱킬로미터, 아프리카가 약 3천만 제곱킬로미터로 열네 배쯤 차이가 납니다. 항해 도구로 태어난 지도가 교실 벽에 걸리면서 세계의 크기 감각을 통째로 비틀어 놓은 것입니다.
페터스 논쟁이 남긴 것
1973년 독일의 아르노 페터스는 기자회견을 열고 메르카토르가 유럽 중심적 세계관을 퍼뜨렸다며 면적이 정확한 자신의 지도를 내놓았습니다. 개발협력 단체와 언론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였고, 지도학계는 격렬하게 반발했죠. 반박의 요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면적을 지키는 도법은 1855년 골의 제안을 비롯해 이미 여럿 있었고, 페터스의 지도는 면적을 지키는 대신 대륙을 세로로 길게 늘여 형태를 크게 훼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이 논쟁이 헛되지는 않았습니다. 지도 선택이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는 문제의식이 제도권에 자리 잡았고, 1989년에는 북미의 지리학·지도학 단체들이 일반 용도의 직사각형 세계지도 사용을 자제하자는 공동 결의를 내놓기에 이릅니다. 지도학은 이 사건 이후 어느 도법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떤 목적에 무엇을 쓸 것인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투영법은 지키려는 성질에 따라 이름이 붙습니다. 그리고 각도와 면적을 한 지도에서 동시에 지키는 도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종류 | 지키는 것 | 포기하는 것 | 쓰이는 곳 |
|---|---|---|---|
| 정각도법 | 국소적인 각도와 모양 | 면적 | 항해, 웹 지도 |
| 정적도법 | 면적의 비율 | 모양 | 분포·통계 지도 |
| 정거도법 | 특정 지점 기준의 거리 | 그 밖의 거리와 면적 | 지진 관측, 통신 |
왜곡을 눈으로 확인하는 고전적 도구도 있습니다. 지도 곳곳에 같은 크기의 원을 얹어 보는 티소 지시원입니다. 원이 타원으로 찌그러지면 각도가 망가진 것이고, 원의 넓이가 달라지면 면적이 망가진 것이죠.
그래서 어떤 지도를 골라야 할까요
원칙은 간단합니다. 질문이 도법을 결정합니다. 각 나라의 인구나 감염병 발생 건수를 비교할 생각이면 면적이 정확한 몰바이데나 에케르트 4 도법이 맞습니다. 항공기의 최단 경로를 보여 주려면 대권이 직선으로 나오는 그노몬 도법이 유용하고, 어느 한 지점에서의 거리와 방향이 중요하면 유엔 엠블럼처럼 극을 중심에 둔 정거방위도법이 적합합니다. 화면에서 자유롭게 확대하는 웹 지도가 여전히 메르카토르 계열을 쓰는 것도 각도가 보존되어야 확대해도 모양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도를 고르는 일은 결국 무엇을 보여 주고 싶은지 정하는 일입니다. 다음 강에서는 이 종이 위의 그림이 좌표와 속성을 가진 데이터로 바뀌면서 벌어진 변화를 다룹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교실 벽에 걸리는 세계지도의 도법을 누가 정해야 할까요. 정확성의 기준이 여럿일 때 그 선택은 교육의 문제일까요, 정치의 문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