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지 / 지리학 / 지정학 2강. 땅속에 있는 것이 국제 정치를 바꿉니다

지정학 2강. 땅속에 있는 것이 국제 정치를 바꿉니다

석유는 지구에 고르게 묻혀 있지 않고, 많이 쓰는 곳과 많이 나는 곳이 다릅니다. 국제 정치의 상당 부분은 그 사이의 거리에서 나옵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호르무즈 해협이 세계 에너지 안보에서 유난히 민감한 곳으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제는 매장이 아니라 통로입니다. 걸프 산유국의 원유는 그 좁은 목을 지나야 세계 시장으로 나갈 수 있고, 대체 항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 취약성의 핵심이죠. 국제법상 그곳만 통항료를 받는 제도는 없습니다.

좁은 목이 세계를 쥐고 있습니다

자원 지정학의 출발점은 단순한 사실 하나입니다. 자원은 편재합니다. 고르게 흩어져 있지 않고 몇 군데에 몰려 있죠. 그런데 그것을 태우는 산업과 도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원 이야기는 곧 수송로 이야기가 됩니다.

지도를 펴고 유조선의 항로를 따라가 보면 어김없이 좁아지는 목이 나옵니다. 이런 지점을 초크포인트(chokepoint)라고 부르고,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이곳들의 통과 물량을 따로 집계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좁은 곳의 폭이 40km에도 미치지 않는데, 세계 석유 소비량의 5분의 1 안팎에 해당하는 물량이 매일 이 목을 지납니다. 말라카 해협은 동아시아로 향하는 원유의 주요 통로이고, 그밖에 수에즈 운하와 바브엘만데브 해협, 파나마 운하가 같은 목록에 오릅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말라카 딜레마입니다. 수입 원유의 큰 몫이 남의 해군이 드나드는 좁은 해협 하나에 걸려 있다면, 그 나라는 평시에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각국은 우회 파이프라인과 해외 항만에 돈을 붓고, 반대편은 그 투자를 군사적 포석으로 읽습니다. 어느 쪽 해석이 맞는지와 무관하게, 지리가 만든 병목이 서로의 의심을 키우는 구조는 그대로 남습니다.

축복인가 저주인가

땅속에 자원이 많으면 좋은 일 아닐까요. 1990년대에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답은 의외였습니다. 리처드 오티가 이름 붙인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는 자원 수출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성장이 더뎠다는 관찰에서 출발합니다.

경로는 대략 셋으로 정리됩니다. 첫째는 네덜란드병입니다. 1959년 흐로닝언 가스전을 발견한 네덜란드가 가스를 팔아 통화가 절상되자 정작 제조업 수출이 힘을 잃었던 일에서 온 이름입니다. 둘째는 재정의 성격 변화입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세금을 걷는 대신 유전 수입으로 살아가면, 세금을 내는 쪽이 요구하는 대표성과 감사의 압력이 약해집니다. 셋째는 가격 변동성입니다. 원자재 값이 출렁일 때마다 예산이 함께 출렁이면 장기 계획이 서지 않습니다.

다만 저주라는 말은 과합니다. 노르웨이는 석유 수입을 국부펀드에 적립하고 해마다 쓸 수 있는 몫을 준칙으로 묶어 다른 길을 갔고, 보츠와나도 다이아몬드 수입을 제도로 관리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표준 해석은 조건부입니다. 자원 자체가 아니라 제도의 질이 결과를 가른다는 것이죠. 통계적 상관의 강건성 자체를 의심하는 후속 연구도 있어서, 이 논쟁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 성장과 제도의 관계는 경제학 국제경제 4강과 나란히 읽으면 좋습니다.

전환은 의존을 없애지 않고 옮깁니다

태양광과 배터리로 넘어가면 자원 정치가 끝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기차 한 대에는 리튬과 니켈과 코발트가 들어가고, 풍력 발전기의 영구자석에는 희토류가 들어갑니다. 희토류가 이름과 달리 지각에 드물지 않은데도 왜 다루기 까다로운지는 지구과학 암석과 광물 강에서 다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볼 것은 그다음입니다. 그 까다로운 공정을 감당하는 설비가 지금 어느 나라 땅 위에 서 있느냐는 것이죠.

핵심은 매장이 아니라 가공 단계의 집중입니다. 광석은 여러 대륙에 흩어져 있지만 그것을 제련하고 정련하는 설비는 소수 국가에 몰려 있고, 국제에너지기구는 이 집중도가 석유보다 높다고 지적합니다. 2010년 중일 갈등 당시 희토류 공급이 막혔던 일은 이 취약성을 각국에 각인시켰습니다. 중국 정부는 금수를 부인했고 통관 지연이었다는 해석도 있지만, 그 뒤 여러 나라가 핵심 광물 목록을 만들고 공급망 다변화에 착수했다는 결과는 분명합니다.

그래도 차이는 있습니다. 석유는 태우면 사라지므로 계속 사와야 하지만, 금속은 설비 안에 남아 재활용될 수 있습니다. 의존의 성격이 흐름에서 재고로 바뀌는 셈이죠.

관과 배는 다른 정치를 만듭니다

같은 가스라도 어떻게 옮기느냐에 따라 정치가 달라집니다. 파이프라인은 한 번 묻으면 경로를 바꿀 수 없습니다. 막대한 투자가 땅에 박히고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에게 묶입니다. 이런 자산 특정성 때문에 계약은 길어지고, 관을 잠그겠다는 말도 관을 사겠다는 말도 모두 지렛대가 됩니다.

LNG는 다릅니다. 액화 설비와 전용선과 재기화 터미널이 필요해 초기 비용이 크지만, 일단 배가 뜨면 목적지를 바꿀 수 있습니다. 유럽이 2022년 이후 러시아산 파이프라인 가스를 줄이면서 LNG 수입을 크게 늘릴 수 있었던 것도 이 유연성 덕분이었습니다. 대신 유연한 시장은 가격 충격을 전 세계로 빠르게 퍼뜨립니다. 어느 쪽이 더 안전한지에 정답은 없고, 무엇을 위험으로 보느냐에 따라 답이 갈립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말라카 딜레마라는 표현이 가리키는 문제는 무엇일까요?
핵심은 대체 경로가 마땅치 않은 병목에 수입 의존이 집중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우회 파이프라인과 해외 항만 투자가 뒤따르죠. 해적과 수심은 실제 현안이기는 해도 이 표현이 겨냥하는 전략적 취약성과는 다릅니다.
문제 2. 자원의 저주에 대한 오늘날의 조건부 해석으로 옳은 것은 무엇일까요?
노르웨이와 보츠와나는 같은 조건에서 다른 결과를 냈습니다. 재정 규칙과 투명성 같은 제도가 지대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갈림길이죠. 예외 없는 법칙이라는 진술은 이 반례들 앞에서 성립하지 않고, 자원 종류로 단순히 나뉘지도 않습니다.
문제 3. 에너지 전환 광물에서 특히 소수 국가에 몰려 있는 단계는 어디일까요?
매장지는 여러 대륙에 흩어져 있지만 정련 설비는 훨씬 집중되어 있고, 국제에너지기구는 그 집중도가 석유보다 높다고 지적합니다. 병목이 땅속이 아니라 공장에 있다는 뜻이죠. 판매와 폐기 단계는 지금 논의의 병목이 아닙니다.
문제 4. 파이프라인 가스와 LNG의 지정학적 차이로 옳은 것은 무엇일까요?
묻힌 관은 옮길 수 없어 양쪽 모두 상대를 떠나기 어렵고, 그래서 계약이 길고 지렛대가 생깁니다. 반대로 LNG는 액화와 재기화 설비가 필요한 대신 항로를 바꿀 수 있어 유럽의 공급처 전환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재생에너지는 대체로 국내에서 생산됩니다. 그렇다면 전환이 끝난 세계에서 국가 간 에너지 협상은 무엇을 두고 벌어질까요. 전력망과 저장 설비도 초크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요.

이전: 지정학 1강 · 다음: 지정학 3강

모던지 · 궁금하면 모던지 GitHub · 202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