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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공간 4강. 이름이 붙는 순간 땅은 달라집니다

땅은 이름을 갖기 전과 후가 다릅니다. 지명은 위치를 가리키는 꼬리표가 아니라 그 땅을 누가 설명해 왔는지의 기록입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오늘날 세계지도가 대체로 북쪽을 위에 두게 된 배경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일까요?
방향의 관행은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중세 유럽 지도는 동쪽을, 이슬람권의 여러 지도는 남쪽을 위에 두었죠. 북쪽 위는 프톨레마이오스 좌표 전통과 나침반 사용이 겹치며 자리 잡은 관습이고, 이를 정한 국제 협약은 없습니다.

이름을 바꾸면 무엇이 바뀔까요

1966년 콩고의 수도 레오폴드빌이 킨샤사가 되었습니다. 벨기에 국왕의 이름을 지우고 현지 마을 이름을 되살린 것이죠. 1982년 짐바브웨의 솔즈베리는 하라레가 되었고, 인도에서는 봄베이가 뭄바이로, 마드라스가 첸나이로 바뀌었습니다. 이 개칭들은 행정 편의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식민 통치가 지도에 남긴 흔적을 지우는 상징 행위였죠.

거슬러 올라가면 이름 붙이기 자체가 정복의 절차였습니다. 1664년 네덜란드령 뉴암스테르담이 영국 손에 넘어가자 이름은 곧바로 뉴욕이 되었습니다. 땅을 차지한 쪽이 지도에 실릴 이름을 정합니다. 그래서 지명 연구는 언어학이면서 동시에 권력의 역사입니다.

같은 바다, 다른 이름

문제는 한 공간을 서로 다르게 불러 온 집단이 둘 이상일 때 생깁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 바다를 두고 한쪽은 동해를, 다른 쪽은 일본해를 씁니다. 걸프 해역을 두고도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만이라는 두 이름이 각각 쓰이죠. 이런 사안에서 지리학이 할 일은 어느 이름이 옳은지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분쟁이 왜 해소되지 않는가의 구조를 보는 것입니다.

구조는 이렇습니다. 첫째, 지명은 역사적 사용 기록과 현재의 실효적 통용이라는 서로 다른 근거를 갖고, 두 근거가 다른 답을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둘째, 국제적으로 이름을 강제할 권한을 가진 기구는 사실상 없습니다. 유엔의 지명 전문가 기구는 관련 당사국이 합의하지 못하면 두 이름을 함께 적도록 권고할 뿐이고, 해양 명칭 목록을 관리해 온 국제수로기구는 2020년에 명칭 대신 고유 식별번호를 쓰는 디지털 표준으로 옮겨 가기로 했습니다. 이름 싸움을 판정하는 대신 시스템이 이름을 우회한 것이죠. 셋째, 지명 갈등이 실제로 봉합되는 경로는 학술적 판정이 아니라 정치적 타결입니다. 2019년 발효된 북마케도니아의 국명 합의가 그 사례입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도

이제 종이 밖으로 나가 봅시다. 눈을 감고 세계지도를 떠올려 보면 우리는 저마다 지도를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이 심상지도(mental map)는 놀랄 만큼 부정확합니다. 많은 사람이 남아메리카를 북아메리카 바로 아래에 붙여 그리지만, 실제로는 훨씬 동쪽으로 치우쳐 있어 남미 대륙 대부분이 북미보다 오른쪽에 있습니다.

도시 규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케빈 린치는 1960년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자기 도시를 그려 보게 하고, 그 그림이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니는 길, 넘기 힘든 경계, 모이는 지점, 성격이 뚜렷한 구역, 그리고 눈에 띄는 랜드마크입니다. 자주 다니는 곳은 크고 상세하게, 낯선 곳은 작고 뭉뚱그려 그려집니다. 심상지도는 축척이 아니라 경험의 밀도에 비례합니다.

중심과 주변은 그려지는 것입니다

지도의 방향도 사실은 관행입니다. 중세 유럽의 T-O 지도는 동쪽이 위였고, 12세기 알이드리시가 시칠리아 궁정에서 만든 세계지도는 남쪽이 위였습니다. 북쪽을 위에 두는 지금의 관행은 프톨레마이오스 전통과 나침반 항해가 결합해 굳은 습관에 가깝습니다. 1979년 호주의 스튜어트 맥아더가 남쪽을 위에 둔 세계지도를 내놓은 것도 이 습관을 흔들려는 시도였죠. 지도의 중심에 무엇을 놓느냐 역시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어느 나라의 교실 지도든 대개 자기 나라가 가운데에 있습니다.

공간과 장소는 다릅니다

인본주의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1977년 책에서 이 둘을 갈랐습니다. 공간(space)은 좌표로 기술되는 열린 넓이이고, 장소(place)는 거기에 경험과 의미가 쌓여 애착이 생긴 곳입니다. 낯선 도시에 도착한 첫날의 거리는 공간이지만, 몇 달 뒤 단골 가게가 생기면 같은 거리가 장소가 됩니다.

에드워드 렐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장소의 개성이 지워지는 현상을 짚었고, 마르크 오제는 공항과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머물기는 하되 누구의 장소도 되지 않는 곳을 비장소라 불렀습니다. 이 구분은 도시 개발과 재생 논의로 이어지며, 다음 과목인 자연지리는 그 장소들이 놓인 땅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다룹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20세기 후반 여러 신생국이 수도와 도시 이름을 바꾼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레오폴드빌이 킨샤사로, 솔즈베리가 하라레로 바뀐 것은 통치의 흔적을 지도에서 지우는 행위였습니다. 표기법이나 행정 개편은 부수적 사안이고, 지명을 강제한 국제기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제 2. 국제 사회에서 바다 이름 분쟁이 다루어지는 방식으로 가장 정확한 것은 무엇일까요?
유엔의 지명 전문가 기구는 합의가 없을 때 두 이름을 함께 적도록 권고하는 수준이고, 해양 명칭 목록을 관리하던 기구도 식별번호 중심 표준으로 옮겨 갔습니다. 실제 봉합은 학술 판정이 아니라 당사국 간 정치적 합의로 이루어집니다.
문제 3. 심상지도의 특징으로 가장 정확한 것은 무엇일까요?
심상지도는 거리와 면적이 아니라 경험의 밀도에 따라 재구성됩니다. 익숙한 구역은 부풀고 낯선 곳은 뭉개지죠. 대륙 규모에서도 남북 아메리카의 동서 관계를 잘못 기억하는 사례처럼 같은 왜곡이 나타납니다.
문제 4. 투안이 구분한 공간과 장소의 차이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은 무엇일까요?
구분의 기준은 크기나 인공물 여부가 아니라 의미의 축적입니다. 같은 거리가 낯선 날에는 공간이었다가 경험이 쌓이면 애착을 지닌 장소가 되죠. 여기서 장소상실과 비장소에 대한 논의가 이어집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지명 분쟁에서 두 이름을 함께 적는 병기는 공정한 해법일까요, 아니면 판단을 미루는 방식일 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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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지 · 궁금하면 모던지 GitHub · 202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