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공간 3강. 지도가 데이터가 될 때
위치는 여러 속성 중 하나가 아닙니다. 위치를 알면 나머지 속성이 줄줄이 딸려 나옵니다.
풀고 시작
손잡이 하나를 뽑은 의사
1854년 여름 런던 소호에서 콜레라가 터졌습니다. 열흘 만에 수백 명이 죽었죠. 당시 지배적인 설명은 나쁜 공기가 병을 옮긴다는 것이었지만, 존 스노는 물을 의심했습니다. 그는 사망자가 나온 집을 하나하나 찾아가 지도 위에 막대로 표시했습니다. 표시가 쌓이자 브로드 스트리트의 한 펌프 주위로 사망이 뭉쳐 있는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스노는 지역 위원회를 설득해 펌프 손잡이를 뽑게 했습니다.
여기서 정직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손잡이를 뽑았을 때 유행은 이미 정점을 지나 줄어들고 있었고, 스노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진짜 무기는 지도 한 장이 아니라 런던 남부에서 따로 진행한 급수 회사별 비교였습니다. 그곳은 같은 거리의 이웃한 집끼리도 물을 대는 회사가 달랐는데, 취수구를 템스강 상류로 옮긴 회사의 가구에서 사망률이 훨씬 낮았거든요. 공간 분석의 힘은 그림의 설득력이 아니라 비교 가능한 구조를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세계를 겹쳐 보는 법
스노가 손으로 한 일을 기계로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1960년대 캐나다 정부는 전국의 토지를 분류하는 거대한 사업을 벌이다 벽에 부딪힙니다. 종이 지도를 겹쳐 면적을 세는 데만 수십 년이 걸릴 판이었죠. 로저 톰린슨은 이 작업을 컴퓨터로 옮기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캐나다 지리정보시스템이 만들어집니다. 지리정보체계(GIS)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GIS의 핵심 발상은 레이어입니다. 하천, 도로, 토지 이용, 인구, 지가를 각각 별개의 투명한 층으로 두고 필요할 때 겹쳐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조경학자 이언 맥하그는 1969년 책에서 이 중첩 기법을 도로 노선 결정에 적용해 보였습니다. 데이터는 두 형태로 저장됩니다. 경계가 뚜렷한 것은 점과 선과 면으로 다루는 벡터로, 위성 영상처럼 값이 연속적으로 깔린 것은 격자 칸마다 값을 담는 래스터로 씁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좌표
지도가 데이터가 되려면 좌표가 싸고 흔해야 합니다. 그 일을 위성이 했습니다. 군사용으로 개발된 위성항법은 1983년 여객기 격추 참사 이후 민간 개방이 결정되었고, 2000년 미국이 의도적 정확도 저하를 해제하면서 민간 측위 오차가 100미터 안팎에서 10미터 안팎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그날 이후 내비게이션과 배달 앱과 위치 기반 서비스가 폭발합니다.
동시에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도 생겼습니다. 1972년 첫 랜드샛 위성이 올라간 뒤로 우리는 같은 장소를 수십 년간 반복 촬영한 기록을 갖게 되었죠. 원격탐사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까지 읽어 냅니다. 식생은 근적외선을 강하게 반사하기 때문에, 이 값을 조합하면 작황과 산림 훼손을 대륙 규모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대기와 기후의 물리 자체는 지구과학 서가에서 다루고, 지리학은 그 변화가 어느 땅의 누구에게 닿는지를 묻습니다.
가까운 것이 더 닮았습니다
공간 데이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이웃한 지역끼리 값이 비슷한 성질, 곧 공간 자기상관이 거의 항상 존재하거든요. 표본이 서로 독립이라고 가정하는 통계 기법을 그대로 들이대면 실제보다 훨씬 강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같은 자료라도 어떤 단위로 묶느냐에 따라 결과가 뒤집히는 가변적 공간 단위 문제입니다. 선거구를 기묘한 모양으로 잘라 결과를 조작하는 게리맨더링이 바로 이 성질을 악용한 사례죠.
위치는 곧 신원입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지운 위치 기록은 안전할까요. 2013년 연구진이 150만 명의 이동통신 기록을 분석한 결과, 시간과 장소가 짝지어진 지점 네 개만으로 열에 아홉 이상을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밤에 머무는 곳과 낮에 머무는 곳만 알아도 사람은 사실상 유일해집니다. 2018년에는 운동 기록 앱이 공개한 활동 열지도에서 해외 군사 기지의 윤곽과 순찰로가 드러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다음 강에서는 좌표가 아니라 이름이 공간에 무엇을 하는지 살펴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공간 데이터는 감염병 대응처럼 공익을 위해 쓰일수록 더 촘촘한 위치 수집을 요구합니다. 유용성과 감시 사이의 선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그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