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리 1강. 80억 명은 어디에 어떻게 사는가
인구 폭발은 사람들이 갑자기 아이를 많이 낳아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죽지 않게 되어서 일어난 일입니다.
풀고 시작
80억 명은 지구의 아주 좁은 곳에 몰려 있습니다
유엔은 2022년 11월 15일을 세계 인구 80억 명의 날로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이 80억 명이 지구 육지에 고르게 흩뿌려져 있다고 상상하면 완전히 틀립니다. 사람이 실제로 거주하는 영역을 에큐메네(ecumene)라 부르는데, 극지와 사막, 고산, 밀림을 빼고 나면 육지의 절반가량은 사실상 비어 있습니다. 유엔 추계로 세계 인구의 약 60퍼센트가 아시아에 있고, 흔히 90퍼센트 안팎이 북반구에 산다고 인용됩니다.
이집트가 이 쏠림의 교과서입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이라 인구의 거의 전부가 나일강 물줄기와 삼각주에 달라붙어 삽니다. 나라 전체로 계산한 인구밀도는 한산해 보이지만, 사람이 실제로 사는 띠만 놓고 재면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축에 듭니다. 여기서 지리학의 첫 교훈이 나옵니다. 평균은 공간을 숨깁니다. 어떤 땅이 살기 좋은가라는 자연 조건 자체는 지구과학 서가의 기후와 기후변화 강이 다루고, 지리학이 묻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조건이 비슷한 두 지역에서도 왜 한쪽에만 사람이 쌓이는가, 그 답은 물길과 항구, 그리고 먼저 온 사람이 만든 도시에 있습니다.
인구 폭발의 진짜 원인은 죽음이 줄어든 것입니다
미국의 인구학자 워런 톰프슨이 1929년에 제시한 인구 변천 모형(demographic transition model)은 이 과정을 네 단계로 정리합니다. 1단계는 출생률도 사망률도 높아 인구가 거의 늘지 않는 상태입니다. 2단계에서 위생과 의학이 사망률을 급격히 끌어내리는데, 출산 관행은 그대로라 인구가 폭발합니다. 3단계에 이르러 도시화와 교육, 영유아 생존율 상승이 출산율을 끌어내리고, 4단계에서는 둘 다 낮은 채 다시 안정됩니다. 최근에는 출생률이 사망률 아래로 내려가 인구가 줄어드는 5단계를 덧붙이기도 합니다.
이 모형의 가장 큰 한계는 출신입니다. 서유럽의 200년 경험을 일반화한 그림이라서, 사망률 저하 기술을 밖에서 통째로 들여온 개발도상국에는 잘 맞지 않습니다. 그쪽에서는 2단계가 훨씬 짧고 격렬하게 압축되어 지나갑니다.
피라미드 한 장에 30년 뒤가 들어 있습니다
인구 피라미드는 연령과 성별로 인구를 쌓아 올린 그림입니다. 밑변이 넓은 삼각형이면 유소년이 많은 확장형이고, 위아래 폭이 비슷한 종형은 안정형, 허리가 불룩하고 밑이 좁은 항아리형은 축소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인구 모멘텀입니다. 출산율이 대체 수준 아래로 떨어져도, 이미 태어난 가임 세대가 두꺼우면 인구는 한동안 계속 늘어납니다. 관성이 붙은 배는 엔진을 꺼도 한참을 더 나아가죠.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0.72명까지 내려갔다가 2024년 0.75명으로 소폭 반등했습니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24년 12월 주민등록 기준으로 20퍼센트를 넘어 초고령사회 기준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 변화는 전국에 똑같이 오지 않습니다. 저출생은 수도권에서 더 뚜렷하고, 고령화는 지방에서 더 빠릅니다. 청년이 일자리를 따라 떠나면 보내는 지역은 출산할 사람 자체가 사라지면서 늙고, 받는 지역은 사람이 몰려도 주거비와 경쟁이 겹치면서 출산을 미루는 흐름이 나타납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 정반대 모양의 피라미드가 동시에 만들어지는 셈입니다.
사람은 왜 떠나는가: 배출, 흡인, 그리고 그 사이의 장벽
이주 연구의 출발점은 1885년 라벤슈타인의 이주 법칙입니다. 그는 대부분의 이주가 단거리이고 단계적이며 도시를 향한다는 규칙성을 통계에서 뽑아냈습니다. 1966년 에버렛 리는 이를 배출 요인(push)과 흡인 요인(pull)의 구도로 다듬었습니다. 전쟁, 실업, 재해, 박해가 등을 떠밀고 일자리, 임금, 교육, 안전이 잡아당깁니다.
리의 모형에서 정작 흥미로운 부분은 세 번째 항목인 개입 장애입니다. 밀고 당기는 힘이 아무리 커도 거리와 비용, 비자와 국경이 그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가장 절박한 사람이 가장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갈 수 있는 사람이 갑니다. 실제로 유엔 추계로 국제 이주자는 2020년 약 2억 8천만 명, 세계 인구의 3퍼센트대에 그칩니다. 이주의 압도적 다수는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납니다. 배출과 흡인만으로 설명이 부족한 지점도 있습니다. 먼저 간 사람이 정보와 잠자리를 대주면서 같은 마을 사람들이 같은 도시로 줄줄이 따라가는 연쇄 이주는 개인의 손익 계산이 아니라 관계망이 만드는 흐름입니다.
인구 예측이 자주 빗나가는 이유
유엔 세계인구전망 2024년 개정판은 세계 인구가 2080년대 중반 약 103억 명에서 정점을 찍고 감소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숫자는 개정 때마다 흔들립니다. 예측의 뼈대인 코호트 요인법은 출산율, 사망률, 이주라는 세 가지 가정 위에 서 있는데, 세 번째가 특히 예측 불가능하고 첫 번째는 최근 여러 나라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떨어졌습니다. 1968년 폴 에를리히가 『인구 폭탄』에서 예고한 대규모 기아가 오지 않은 것도 좋은 교훈입니다. 녹색혁명이라는 기술 변화와 출산 행동의 변화를 모형이 담지 못했던 것이죠.
다만 인구 예측에는 다른 어떤 사회 예측에도 없는 강점이 있습니다. 30년 뒤의 65세 인구는 이미 전부 태어나 있습니다. 고령화의 규모는 거의 확정된 사실이고, 불확실한 것은 30년 뒤에 태어날 아이들의 수뿐입니다. 이 비대칭을 아는 것이 인구 통계를 읽는 요령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지방의 고령화가 청년 유출 때문이라면, 청년을 붙잡는 정책과 이미 남은 고령 인구를 돌보는 정책 중 어느 쪽이 먼저일까요. 두 정책이 서로 예산을 빼앗는 관계인지도 함께 따져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