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설비기술기준 2강. 접지와 보호도체
접지는 설비를 지키는 장치가 아니라, 고장 난 기기를 만진 사람이 살아서 손을 떼게 만드는 마지막 설계입니다.
풀고 시작
접지는 설비가 아니라 사람을 먼저 지킵니다
세탁기 외함을 만졌다가 찌릿한 느낌을 받아 본 적 있으신가요? 그 순간 기기 안에서는 절연이 무너져 충전부가 금속 외함에 닿아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외함 전체가 전압을 띠게 되고, 사람이 그것을 만지는 순간 몸이 대지로 가는 전류의 통로가 되어 버리죠. 접지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미리 깔아 두는 다른 길입니다. 사람 몸보다 훨씬 잘 흐르는 금속 경로를 붙여 두면 고장 전류가 그쪽으로 쏠리고, 보호장치가 이상을 감지해 회로를 끊습니다. 설비를 지키는 일은 그다음 순서입니다.
이 관점의 변화 때문에 예전 판단기준의 제1종부터 제3종까지의 접지 구분이 사라졌습니다. 옛 체계는 기기의 종류와 전압에 따라 접지를 종별로 나누고 종별마다 저항값을 요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값을 맞춰도 정작 고장이 났을 때 보호장치가 사람이 다치기 전에 끊기는지는 따로 답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2021년 1월 1일 시행된 한국전기설비규정(KEC)은 국제 기준을 받아들여 질문 자체를 바꿨습니다. 이 계통이 어떤 접지 방식인지, 그 방식에서 고장 회로가 정해진 시간 안에 차단되는지를 묻습니다. 요구되는 차단 시간과 도체 조건은 계통 방식과 전압에 따라 규정이 따로 정해 두므로, 값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시행 시점의 조문으로 확인하셔야 합니다.
TN과 TT와 IT는 각자 무언가를 포기하고 안전을 얻습니다
계통접지는 전원 중성점과 설비의 노출도전부를 어떻게 대지에 묶느냐에 따라 TN, TT, IT 세 가지로 나뉩니다. 셋 다 안전을 목표로 하지만, 얻는 것과 포기하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 방식 | 구조 | 얻는 것 | 포기하는 것 |
|---|---|---|---|
| TN | 전원 중성점을 접지하고 노출도전부를 보호도체(PE)로 그 접지에 연결합니다 | 고장 전류가 금속 경로로 크게 흘러 과전류 보호장치가 빠르게 동작합니다 | 계통 전체가 하나의 접지에 묶여 전위가 함께 흔들립니다 |
| TT | 전원 접지와 설비 접지가 전기적으로 독립입니다 | 전원 쪽 사고가 설비 쪽 전위를 끌고 오지 않습니다 | 고장 전류가 대지를 경유해 작아지므로 누전차단기에 크게 의존합니다 |
| IT | 충전부를 대지에서 절연하거나 임피던스를 통해 접속합니다 | 첫 지락에서도 전류가 거의 흐르지 않아 운전을 이어 갈 수 있습니다 | 절연감시로 첫 고장을 찾아 고쳐야 하고, 두 번째 지락은 곧바로 위험해집니다 |
수술이 진행 중인 병원 회로나 멈추면 손해가 큰 공정에서 IT를 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한 번의 지락으로 멈추지 않는 대신, 고장을 안고 달리는 중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도체 한 가닥을 아끼려다 생긴 PEN이라는 함정
TN은 다시 세 갈래로 갈립니다. TN-S는 중성선(N)과 보호도체(PE)를 계통 전체에서 따로 끌고 갑니다. TN-C는 둘을 하나의 도체로 겸용하는데, 이것을 PEN 도체라고 부릅니다. TN-C-S는 전원 쪽에서는 겸용으로 오다가 어느 지점부터 N과 PE로 갈라놓는 방식입니다.
도체 한 가닥을 아끼는 TN-C가 왜 위험할까요? PEN에는 평소에도 불평형 부하 전류가 흐릅니다. 보호도체는 원래 사고가 나기 전까지 전류가 없어야 하는데, 겸용 도체는 늘 전류가 흐르니 기기 외함의 전위가 완전히 0이 되지 못합니다. 더 큰 문제는 단선입니다. PEN이 중간에서 끊어지면 그 지점 이후의 노출도전부는 접지와의 연결을 잃고, 부하를 통해 들어온 전압이 외함에 그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PEN이 통과하는 지점에서는 누전차단기가 전류의 불균형을 제대로 읽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 번 N과 PE로 분리한 뒤에는 다시 합치지 않는다는 원칙이 따라붙습니다.
녹황 한 가지 색과 등전위본딩이 마지막을 지킵니다
배전반을 열면 초록과 노랑이 섞인 도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녹황 조합은 보호도체 전용이고 다른 용도로는 쓸 수 없습니다. 색은 장식이 아니라 안전 신호입니다. 정신없는 현장에서 작업자가 순간적으로 판단할 근거가 색밖에 없을 때가 많고, 보호도체를 다른 선으로 착각해 끊거나 다른 선을 보호도체로 착각해 연결하면 그 대가가 그대로 사람에게 옵니다. 같은 이유로 중성선은 파란색으로 못 박아 두었습니다.
마지막 방어선은 등전위본딩입니다. 감전은 전압이 높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양 끝에 전위차가 생겨야 일어납니다. 손이 닿은 기기 외함과 발이 딛은 바닥, 옆에 있는 수도관과 난방 배관의 전위가 서로 다르면 그 차이가 사람을 통해 흐릅니다. 그래서 동시에 만질 수 있는 금속들을 주접지단자에 함께 묶어 전위를 같게 만듭니다. 사고가 나면 전체가 함께 올라갔다가 함께 내려오기 때문에 사람 입장에서는 건널 전위차가 남지 않죠. 접지저항을 0으로 만들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나온 해법이 바로 등전위입니다.
인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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