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기학 2강. 전계와 전위
전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막힙니다. 답은 힘이 아니라 에너지 쪽에 있습니다.
풀고 시작
산의 높이와 경사
전계와 전위의 관계는 지형으로 생각하면 단번에 잡힙니다.
전위는 높이입니다. 그 자리에 단위 전하를 갖다 놓을 때 갖게 되는 위치에너지죠. 단위는 볼트(V)이고 1V는 1쿨롱당 1줄입니다.
전계는 경사입니다. 높이가 가장 급하게 떨어지는 방향을 가리키고, 그 기울기가 곧 세기입니다. 공을 놓으면 가장 가파른 쪽으로 굴러가듯, 양전하는 전위가 낮아지는 쪽으로 밀립니다.
이 비유가 여러 오해를 한 번에 정리합니다. 높이가 높다고 경사가 급한 것이 아닙니다. 고원 위는 높지만 평평하죠. 마찬가지로 전위가 높은 곳에서 전계가 0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전위가 0인 곳에서 전계가 아주 셀 수도 있습니다.
등전위면은 등고선입니다. 같은 높이를 이은 선이니 그 위를 따라 걸으면 힘든 일이 없습니다. 등전위면을 따라 전하를 옮기는 데 드는 일은 0입니다. 그리고 등고선과 최대 경사 방향이 언제나 직각이듯, 전계는 등전위면에 수직입니다.
전압은 경로에 무관합니다
산을 오를 때 어느 길로 가든 정상의 높이는 같습니다. 전기도 그렇습니다. 두 점 사이의 전위차는 어떤 경로로 가든 같습니다.
이 성질을 보존장(conservative field) 이라 하고, 정전계가 갖는 핵심 성질입니다. 여기서 곧바로 따라 나오는 결과가 있습니다. 닫힌 경로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면 한 일의 합이 0입니다. 출발점과 도착점의 높이가 같으니 당연하죠.
이것이 회로에서 쓰는 키르히호프 전압법칙의 정체입니다. 폐회로를 돌며 전압 강하를 모두 더하면 0이 된다는 그 법칙이 여기서 나옵니다. 회로이론에서 규칙처럼 외웠던 것이 실은 전기장의 성질이었던 거죠.
다만 조건이 붙습니다. 변하는 자기장이 있으면 이 성질이 깨집니다. 그때는 한 바퀴 돌아도 0이 아니고, 그 차이가 유도기전력입니다. 5강에서 다룰 내용입니다.
도체가 만드는 특별한 상황
도체 안에서는 전하가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이 사실 하나에서 여러 결론이 따라 나옵니다.
정전 상태의 도체 내부는 전계가 0입니다. 만약 0이 아니면 자유전자가 계속 움직일 텐데, 그러면 정전 상태가 아니죠. 전자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재배치가 일어나고, 그 결과가 내부 전계 0입니다.
내부 전계가 0이면 도체 전체가 같은 전위입니다. 기울기가 없으니 높이가 같죠. 그래서 도체 표면도 등전위면이고, 전계는 표면에 수직으로 만납니다.
전하는 표면에만 모입니다. 같은 부호끼리 밀어내니 가능한 한 멀리, 즉 표면으로 가죠. 그리고 표면에서도 곡률이 큰 곳(뾰족한 곳)에 몰립니다. 피뢰침이 뾰족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뾰족한 끝에서 전계가 세져 공기가 먼저 이온화되고, 거기로 전류가 유도됩니다.
정전 차폐도 같은 원리입니다. 도체로 둘러싸인 공간은 바깥 전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도체 껍질의 전하가 재배치되어 내부 전계를 정확히 상쇄하기 때문이죠. 이것을 패러데이 상자라 하고, 자동차 안이 벼락에 비교적 안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기쌍극자와 멀리서 보기
크기가 같고 부호가 반대인 두 전하가 짧은 거리를 두고 놓인 것을 전기쌍극자라 합니다. 물 분자처럼 자연에 흔한 배치죠.
쌍극자가 만드는 전위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전계는 세제곱에 반비례합니다. 점전하보다 훨씬 빨리 약해지죠. 양전하와 음전하의 영향이 멀리서 보면 거의 상쇄되기 때문입니다.
이 "멀리서 보면 상쇄된다"는 감각이 중요합니다. 세상의 물질은 대부분 전기적으로 중성이지만 내부에는 양전하와 음전하가 가득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전기력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거리가 조금만 멀어져도 상쇄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전기력이 중력보다 10⁴²배 세면서도 일상에서 중력만 보이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