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적 상상력 2강. 뒤르켐: 자살에도 사회가 있습니다
가장 사적이고 가장 절망적인 행위인 자살조차, 나라별 비율은 해마다 놀랍도록 안정적으로 반복됩니다.
풀고 시작
사회적 사실을 사물처럼 다루라
에밀 뒤르켐(1858~1917)은 사회학을 대학 안에 정착시킨 사람입니다. 그가 넘어야 했던 벽은 분명했습니다. 사회 현상은 결국 개인들의 생각과 행동의 합인데, 심리학 말고 사회학이 따로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죠.
1895년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들』에서 그가 내놓은 답이 사회적 사실입니다. 개인 바깥에 존재하면서 개인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행위와 사고와 감정의 양식이죠. 언어가 좋은 예입니다. 한국어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내가 문법을 어기면 저항이 돌아옵니다. 법, 화폐, 종교 의례, 결혼 관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내가 죽은 뒤에도 남습니다. 뒤르켐의 유명한 지침은 이 사실들을 사물처럼 다루라는 것이었습니다. 내 짐작으로 해석하지 말고, 밖에 놓인 대상처럼 관찰하고 측정하라는 뜻입니다.
자살론이 짜 놓은 논리
1897년 『자살론』은 이 방법의 실전 시범이었습니다. 뒤르켐은 유럽 각국의 자살 통계를 놓고 먼저 유력한 설명들을 하나씩 지웁니다. 정신 질환으로 설명하려 하면 당시 자료에서 여성의 정신병원 수용률이 더 높은데도 자살률은 남성이 높다는 사실에 걸리고, 인종이나 기후로 설명하려 해도 경계가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남은 것은 사회적 변수였습니다.
그가 주목한 축은 두 개입니다. 사람이 집단에 얼마나 묶여 있는가 하는 통합, 그리고 그의 욕구와 행동이 규범으로 얼마나 조율되는가 하는 규제입니다. 이 두 축이 모자라거나 넘칠 때 네 가지 자살 유형이 나옵니다.
| 유형 | 상태 | 전형적 사례 |
|---|---|---|
| 이기적 자살 | 통합이 너무 약함 | 사회적 유대가 옅어 홀로 남은 개인 |
| 이타적 자살 | 통합이 너무 강함 | 집단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이 의무가 된 경우 |
| 아노미적 자살 | 규제가 너무 약함 |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기준이 흔들린 상황 |
| 숙명적 자살 | 규제가 너무 강함 | 미래가 완전히 봉쇄된 억압 상태 |
네 번째 숙명적 자살은 뒤르켐 본인이 각주에서 짧게만 언급했습니다. 대칭을 맞추기 위한 논리적 자리에 가까웠죠.
아노미, 규범이 헐거워질 때
네 유형 중 후대에 가장 멀리 퍼진 개념이 아노미입니다. 무규범 또는 규범의 이완 상태를 뜻하죠. 뒤르켐의 통찰이 반직관적인 지점은 여기입니다. 그는 아노미가 불황기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호황기에도 온다고 봤습니다. 사람의 욕구는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상한이 없어서, 무엇이 적당한지 알려 주는 사회적 기준이 무너지면 만족에 도달할 방법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붕괴가 문제라는 진단이죠. 이 개념은 훗날 머튼의 일탈 이론으로 이어지며 일탈과 범죄 강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로
1893년 『사회분업론』은 더 큰 그림을 그립니다. 사람들을 묶어 주는 접착제가 역사적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소규모 전통 사회에서는 구성원이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하게 믿었습니다. 닮았기 때문에 묶이는 기계적 연대이고, 이때 법은 규범을 어긴 자를 벌하는 억압적 성격을 띱니다. 반면 분업이 진행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일을 하기 때문에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묶이는 유기적 연대이고, 법은 관계를 원상 복구하는 계약과 배상 중심으로 옮겨 갑니다. 여기서 뒤르켐은 낙관과 경고를 함께 남깁니다. 분업 자체는 새로운 유대를 만들지만, 변화 속도가 규범 형성 속도를 앞지르면 그 자리에 아노미가 들어선다는 것이죠.
통계가 드리운 그림자
뒤르켐을 정직하게 읽으려면 후대 비판도 함께 봐야 합니다. 첫째는 자료 자체의 문제입니다. 19세기 자살 통계는 지역과 종교에 따라 판정과 기록 관행이 달랐습니다. 자살을 무겁게 죄악시하는 공동체에서는 사고사로 기록될 여지가 컸으므로, 종교 집단 간 비율 차이의 일부는 실제 행동 차이가 아니라 집계 방식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1967년 잭 더글러스는 자살 통계 자체가 유족과 검시관의 해석을 거쳐 만들어진 산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둘째는 추론 층위의 문제입니다. 개신교 지역의 자살률이 높다는 집단 수준 관찰에서 개신교 신자 개인이 더 많이 자살한다는 결론을 끌어내면, 이것은 오늘날 생태학적 오류라 불리는 함정에 빠집니다. 지역 평균의 관계와 개인 수준의 관계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오류는 1950년 로빈슨의 논문에서 정식화되었고, 공교롭게도 『자살론』이 자주 인용되는 예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뒤르켐의 기획이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개별 수치는 흔들려도, 개인 심리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설명 층위가 있다는 그의 주장은 사회학의 기본 전제로 남았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오늘날 우리가 쓰는 통계 가운데, 측정 대상 자체가 사람들의 판정과 분류를 거쳐 만들어지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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