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변동 2강. 우리는 어떻게 같은 것을 믿게 되나
미디어는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할지 정해 주지는 못합니다. 다만 무엇에 대해 생각할지는 상당 부분 정합니다.
풀고 시작
주사기 신화와 화성인 소동
미디어 연구의 출발점에는 무서운 그림이 있었습니다. 메시지가 주사기 바늘처럼 대중의 머리에 곧장 주입된다는 이미지죠. 이 가정을 상징하는 일화가 1938년 오슨 웰스의 라디오 드라마 사건입니다. 화성인이 침공했다는 뉴스 형식의 방송을 듣고 미국 전역이 공황에 빠졌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 자체가 미디어 효과 연구의 좋은 교재입니다. 이후 연구자들이 당시 청취율 자료와 신문 보도를 다시 살펴본 결과, 실제 청취자는 생각보다 적었고 거리로 뛰쳐나간 사람의 규모를 뒷받침할 증거도 빈약했습니다. 대규모 공황 이야기는 상당 부분 신문이 신생 매체인 라디오를 견제하며 키운 서사에 가까웠죠. 미디어가 강력하다는 증거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건이, 실은 미디어가 만들어 낸 과장이었다는 역설입니다. 주사기 모형이라는 이름에도 비슷한 사정이 있습니다. 당대 연구자들이 그렇게 소박한 모형을 내세웠다기보다, 후대가 초기 연구를 한 덩어리로 정리하며 붙인 딱지에 가깝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사람은 미디어보다 사람의 말을 듣습니다
1940년 미국 대선 기간에 폴 라자스펠드 연구팀은 오하이오주 이리 카운티에서 같은 유권자들을 여러 차례 반복 면접했습니다. 선거운동이 표심을 어떻게 뒤집는지 보려 했는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음을 바꾼 사람은 드물었고, 대부분은 원래 성향을 굳히거나 관심을 잃었습니다. 대신 눈에 띈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정치 뉴스를 열심히 보고 남에게 해설해 주는 의견 지도자(opinion leader)가 있었고, 정보는 미디어에서 그들을 거쳐 나머지에게 흘렀습니다. 이것이 2단계 유통 가설입니다.
여기서 제한효과론이 자리 잡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믿는 것과 맞는 매체를 고르고, 맞지 않는 내용은 흘려듣거나 다르게 해석합니다. 미디어는 설득의 도구라기보다 강화의 도구라는 결론이었죠.
무엇을 생각할지 대신 무엇에 대해 생각할지
효과가 약하다는 결론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68년 미국 대선 기간에 맥스웰 매콤스와 도널드 쇼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의 부동층 유권자들에게 지금 이 나라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답의 순위는 같은 기간 지역 언론이 각 사안에 할애한 보도량의 순위와 매우 비슷했습니다. 언론이 어떤 입장을 취하라고 설득하지는 못해도, 무엇이 논의할 가치가 있는 문제인지는 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의제설정(agenda setting)입니다. 다만 처음 연구가 상관관계였다는 점은 짚어야 합니다. 언론이 중요하게 다뤄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인지,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겨서 언론이 다룬 것인지는 그 자료만으로 가려지지 않죠. 이후 실험 연구들이 방향성의 증거를 보탰습니다.
다수인 것처럼 보이면 목소리가 커집니다
독일의 엘리자베트 노엘레노이만은 여기에 사회심리적 장치를 하나 더했습니다. 사람은 고립을 두려워해서 자기 의견이 소수처럼 보이면 입을 다물고, 다수처럼 보이면 더 크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실제 분포와 무관하게 한쪽 목소리만 점점 커지고 다른 쪽은 조용해지는 침묵의 나선이 돕니다. 여기서 미디어는 여론 분포를 알려 주는 창 역할을 하므로, 창이 기울면 나선도 기웁니다. 설득력 있는 그림이지만 실증 성적은 고르지 않습니다. 여러 연구를 모아 검토한 결과 여론 인식과 발언 의향의 관계는 대체로 약하게 나타났고, 문화와 사안에 따라 편차가 컸습니다. 기제 자체가 틀렸다기보다 조건이 붙는 이론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에코체임버는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알고리즘 추천이 우리를 비슷한 의견만 있는 방에 가둔다는 이야기는 이제 상식처럼 통합니다. 그런데 실증 연구들은 이 그림을 그대로 확인해 주지 않았습니다. 대규모 소셜미디어 자료 분석에서는 알고리즘의 여과보다 이용자 스스로의 친구 선택과 클릭이 편향된 노출에 더 크게 기여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반대 진영의 의견에 일부러 노출시키는 실험에서는 태도가 온건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굳어졌습니다. 다만 이 역효과는 보수 성향 이용자에게서 뚜렷했고 진보 성향에서는 통계적으로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나라의 이용 자료를 보면 평균적인 사람의 미디어 식단은 생각보다 잡식성이고, 극단적으로 편식하는 쪽은 정치 뉴스를 아주 많이 소비하는 소수였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분극화는 실재하지만, 알고리즘이 원인이고 다양한 정보가 처방이라는 단순한 인과 도식은 현재까지의 증거로 지지되지 않습니다. 3강에서 볼 세계화 논쟁도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반대 의견에 더 노출된다고 사람이 온건해지지 않는다면, 분열을 줄이려는 시도는 무엇을 겨냥해야 할까요. 의견의 내용일까요, 아니면 상대를 어떤 사람으로 여기는지에 대한 감정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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