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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일상 2강. 세속화는 정말 일어났나

20세기 사회과학은 근대화가 종교를 밀어낼 것이라고 거의 만장일치로 예측했습니다. 그 예측이 맞은 지역과 보기 좋게 빗나간 지역이 함께 있습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뒤르켐이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내놓은 종교의 정의에 가장 가까운 것은?
뒤르켐은 신이라는 요소를 정의에서 빼버렸습니다. 신 없는 종교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가 붙잡은 것은 성과 속의 구분, 그리고 그 구분이 만들어내는 도덕 공동체입니다. 마지막 선택지는 마르크스 계열의 설명이라 뒤르켐과는 결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신이 아니라 사회를 숭배합니다

에밀 뒤르켐은 1912년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종교의 정의에서 신을 지워버립니다. 신 없이도 종교는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대신 붙잡은 것은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의 구분이었습니다. 어떤 사회든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대상을 따로 떼어두고, 그 둘레에 금기와 의례를 세웁니다.

뒤르켐이 관심을 둔 것은 그 의례가 모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가였습니다. 축제와 제의에서 사람들은 평소와 다른 흥분 상태에 들어가고, 그 순간 느껴지는 자기 바깥의 거대한 힘을 신이라 부릅니다. 그는 그 힘의 정체가 사회 자체라고 말합니다. 종교는 사회가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방식이라는 것이죠. 다만 그의 논증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는 호주 원주민 사회를 종교의 가장 단순한 형태로 삼았는데, 현지 조사를 직접 하지 않고 당시의 민족지 보고에 의존했습니다. 그 자료의 정확성과 단순한 사회가 곧 원초적 형태라는 전제는 이후 계속 비판받았습니다. 개념의 힘은 살아남았지만 근거로 쓴 사례는 흔들렸습니다.

천국의 불안이 장부를 만들었을까

베버는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종교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종교가 무엇을 바꾸는가입니다. 1904년과 1905년에 나온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논지는 이렇습니다. 칼뱅주의의 예정설은 신도에게 구원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견디기 힘든 불안을 안겼고, 사람들은 직업적 성공을 구원의 표지로 읽으며 금욕적으로 일하고 저축했습니다. 쾌락을 위해 쓰지 않고 다시 투자하는 습관, 곧 자본 축적의 문화적 조건이 종교적 불안에서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는 짚고 가야 합니다. 베버 자신은 종교가 자본주의를 낳았다고 못박지 않았습니다. 그는 책 말미에서 일면적인 유물론적 해석을 똑같이 일면적인 관념론적 해석으로 바꿔치우려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죠. 흔히 유통되는 강한 인과 주장은 베버보다 후대의 요약에 가깝습니다.

이 테제는 100년 넘게 검증대에 올라 있습니다. 경제사학자 사샤 베커와 루트거 뵈스만은 2009년에 19세기 프로이센의 군 단위 자료를 분석해 흥미로운 반론을 내놓았습니다. 개신교 지역의 경제적 우위는 상당 부분 문해력으로 설명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스스로 읽으라는 요구가 학교와 읽기 능력을 퍼뜨렸고, 그 인적 자본이 소득 차이를 만들었다는 해석이죠. 베버가 지목한 경로와 다른 경로입니다. 이 논쟁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종교와 경제 성장의 상관은 여러 자료에서 관찰되지만, 그 사이를 잇는 인과의 경로가 무엇인지는 아직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빗나간 예언의 지도

세속화 이론은 20세기 사회과학의 기본 전제에 가까웠습니다. 산업화와 도시화, 과학의 확산이 종교를 사적 영역으로 밀어낼 것이라는 예측이죠. 그리고 이 예측은 서유럽에서 꽤 잘 맞았습니다. 그레이스 데이비는 영국인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도 어떤 믿음은 유지하는 상태를 소속 없는 믿음이라 불렀습니다.

문제는 지도의 나머지 부분이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산업화된 사회 중 하나였지만 종교 참여율이 유럽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오순절 계열 교회가 20세기 후반에 빠르게 성장했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종교 인구는 줄기는커녕 늘었습니다. 세속화 이론의 대표 주창자였던 피터 버거는 1990년대에 자신의 예측이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세계는 여전히 격렬하게 종교적이라고 수정했습니다. 자기 이론을 스스로 철회하는 사회학자를 보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여기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종교시장 이론입니다. 로드니 스타크와 로저 핑크 등은 종교를 공급자와 수요자가 있는 시장으로 봅니다. 국교가 독점하는 사회에서는 성직자들이 노력할 유인이 없어 참여가 떨어지고, 여러 교단이 경쟁하는 사회에서는 참여가 올라간다는 설명이죠. 유럽과 미국의 대비를 깔끔하게 설명하는 듯 보였습니다. 다만 마크 체이브스와 필립 고르스키가 2001년에 정리한 것처럼, 종교 다원성과 참여율의 관계를 검증한 연구들은 일관된 결과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유력한 가설이지만 확립된 법칙은 아닙니다. 한편 로버트 벨라는 1967년에 특정 교단이 아니라 국가 자체를 감싸는 상징 체계를 시민종교라 불렀습니다. 취임 선서와 국립묘지 의례에는 뒤르켐이 말한 성스러움의 구조가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한국의 종교 지형을 숫자로 보면

한국은 이 논쟁에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합니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는 10년 주기로 종교 항목을 조사했는데, 2005년에는 종교가 있다고 답한 비율이 절반을 조금 넘었고 2015년에는 43.9퍼센트로 내려가 무종교가 다수가 되었습니다. 2015년 조사에서 개신교 인구는 967만 명, 불교는 762만 명, 천주교는 389만 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 숫자를 읽을 때 주의가 필요합니다. 2005년 조사는 전수 방식이었고 2015년 조사는 표본 방식이어서, 두 시점을 그대로 빼서 증감을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통계학계에서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독립적인 조사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흐름은 있습니다. 무종교 인구가 늘고 있고, 그 증가가 젊은 연령층에서 두드러진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나이가 들면 종교로 돌아오는 연령 효과인지, 아니면 그 세대가 평생 무종교로 남는 세대 효과인지는 앞으로의 조사가 답할 문제입니다. 어느 교단이 옳고 그르냐는 사회학이 답할 질문이 아니고, 사회학이 답하려는 것은 사람들이 성스러움을 어디에 두느냐가 어떻게 변하는가입니다. 다음 강에서는 그 규범을 어긴 사람들, 곧 일탈을 다룹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뒤르켐 종교 이론의 근거 자료에 대해 후대가 제기한 비판은 무엇인가요?
뒤르켐은 현지 조사 없이 2차 자료에 기댔고, 그 자료의 정확성이 이후 문제가 되었습니다. 단순한 사회를 인류의 초기 단계로 놓는 전제 역시 진화론적 사고의 잔재라는 비판을 받았죠. 성과 속의 구분이라는 개념 자체는 살아남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문제 2. 베커와 뵈스만의 프로이센 연구가 베버 테제에 던진 반론의 핵심은?
두 사람은 개신교와 경제적 성과의 상관 자체는 인정하되 그 사이를 잇는 경로를 다르게 봅니다. 성경을 스스로 읽으라는 요구가 학교와 읽기 능력을 퍼뜨렸고 그 인적 자본이 소득 차이를 만들었다는 것이죠. 상관은 남고 인과의 경로는 논쟁 중이라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문제 3. 세속화 이론이 예측과 어긋난 사례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서유럽의 출석률 하락은 오히려 세속화 이론이 잘 들어맞은 지역입니다. 이론이 곤란해진 것은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였고, 그래서 대표 주창자였던 피터 버거가 1990년대에 자신의 예측을 공개적으로 철회했습니다.
문제 4. 한국 인구주택총조사의 종교 인구 통계를 해석할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조사 방식이 달라지면 수치의 비교 가능성이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여러 독립적인 조사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무종교 증가와 젊은 층의 낮은 종교 참여라는 흐름 자체는 신뢰할 만하죠. 그것이 연령 효과인지 세대 효과인지는 아직 열린 질문입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뒤르켐의 눈으로 오늘을 본다면, 사람들이 함께 모여 흥분하고 금기를 지키며 성스러움을 느끼는 자리는 어디일까요. 그 자리를 종교라고 불러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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