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변동 1강. 조직은 왜 답답한가
관료제를 욕하는 사람은 많지만, 관료제 없이 굴러가는 대형 조직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풀고 시작
관료제는 최신 발명품이었습니다
우리는 관료제를 답답함의 동의어로 쓰지만, 막스 베버에게 관료제는 인류가 손에 넣은 가장 강력한 조직 기술이었습니다. 그 이전의 지배는 왕의 총애나 가문, 개인적 충성으로 돌아갔죠. 누가 무슨 권한을 갖는지는 그날 왕의 기분에 달려 있었습니다. 베버가 정리한 관료제의 특징은 이 자의성을 걷어냅니다. 권한은 사람이 아니라 직위에 붙고, 직위는 문서로 규정된 규칙에 따라 위아래로 배열되며, 채용은 혈연이 아니라 자격으로 하고, 모든 처리는 문서로 기록됩니다.
핵심은 마지막 특징입니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조직은 같은 답을 내놓습니다. 민원인이 누구든 같은 서류를 요구받죠. 베버는 관료제가 이 일을 "분노도 편애도 없이"(sine ira et studio) 해낸다고 표현했습니다. 차갑게 들리지만, 창구 직원이 내 얼굴을 보고 결정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 곧 공정입니다. 관료제는 그 대가로 예측 가능성과 대규모 처리 능력을 얻었고, 그래서 근대 국가와 대기업은 대체로 이 형태로 수렴했습니다.
규칙이 목적을 잡아먹을 때
문제는 이 장치가 너무 잘 작동한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로버트 머튼은 1940년 논문에서 관료제의 미덕이 곧바로 병리로 뒤집히는 경로를 그렸습니다. 규칙을 지키라는 압력이 오래 쌓이면, 구성원은 규칙 준수 자체를 성과로 여기게 됩니다. 원래 규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어느 순간 수단이 목적의 자리를 차지하죠. 이것이 목표 전치(goal displacement)입니다.
머튼은 여기에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에게서 빌려 온 훈련된 무능(trained incapacity)이라는 표현을 붙였습니다. 어제까지 유능하게 만들어 준 그 숙련이, 조건이 바뀐 오늘은 눈가리개가 된다는 뜻입니다. 규정집에 없는 상황이 오면 가장 잘 훈련된 직원이 가장 먼저 멈춰 섭니다. 우리가 겪는 형식주의와 책임 회피는 게으름이 아니라 이 구조의 산물입니다. 규칙대로 해서 생긴 손해는 아무도 처벌받지 않지만, 재량을 써서 생긴 손해는 그 사람이 뒤집어쓰니까요.
농담으로 시작된 두 개의 법칙
1955년 영국의 해군사학자 시릴 노스코트 파킨슨이 이코노미스트에 짧은 풍자 글을 실었습니다. 영국 해군의 함정과 병력은 줄어드는데 해군본부의 행정 인력은 계속 늘더라는 관찰이었죠. 그가 뽑아낸 문장이 유명한 파킨슨의 법칙입니다. 일은 주어진 시간을 다 채우도록 늘어난다는 것, 그리고 관리자는 경쟁자가 아니라 부하를 원하기 때문에 조직은 할 일과 무관하게 팽창한다는 것입니다. 1969년 로런스 피터가 내놓은 피터의 원리도 같은 계열입니다. 위계 조직에서 사람은 자기가 무능해지는 자리까지 승진한다는 관찰이죠. 지금 자리를 잘하니까 올려 보내는데, 그 위의 자리는 다른 능력을 요구하니까요.
여기서 정직하게 짚을 것이 있습니다. 이 둘은 통제된 연구로 검증된 법칙이 아니라 풍자에서 출발한 관찰입니다. 다만 뒤늦게 실증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기업의 영업 조직 자료를 분석한 2019년 경제학 연구는, 영업 실적이 좋은 직원일수록 관리자로 승진할 확률이 높지만 그렇게 승진한 관리자가 이끄는 팀의 성과는 오히려 낮은 경향을 보고했습니다. 농담이 데이터를 만난 드문 사례입니다.
조직도에 없는 조직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초까지 시카고 근교의 호손 공장에서 사회학 역사상 가장 자주 인용되는 관찰이 이루어졌습니다. 조명을 밝게 해도 생산성이 올랐고, 다시 어둡게 해도 올랐다는 이야기죠. 관찰당한다는 사실 자체가 행동을 바꾼다는 호손 효과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다만 원자료를 다시 분석한 연구들은 조명 실험의 증거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약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설은 데이터보다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호손 연구가 확실하게 보여 준 것이 있습니다. 배선 작업장 관찰에서 노동자들은 회사가 정한 성과급 체계와 무관하게 자기들끼리 적정 생산량을 정해 두고 지켰습니다. 너무 많이 하는 사람도, 너무 적게 하는 사람도 동료의 제재를 받았죠. 조직도에는 없지만 실제로 사람을 움직이는 비공식 조직이 거기 있었습니다. 조직 문화란 결국 벽에 붙은 사훈이 아니라, 신입이 눈치로 배우는 이 암묵적 규범입니다.
위계는 정말 사라졌을까요
플랫폼 기업들은 수평 조직과 자율 팀을 내세웁니다. 결재선이 짧아지고 직급 호칭이 사라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관료제가 사라졌다고 결론 내리면 성급합니다. 배차와 배달 순서를 정하고, 응답 시간을 재고, 평점이 낮으면 일감을 줄이는 알고리즘은 베버가 말한 규칙 지배를 없앤 것이 아니라 자동화한 쪽에 가깝습니다. 규칙은 더 촘촘해졌고, 다만 규칙을 쓴 사람이 보이지 않을 뿐이죠. 항의할 창구가 없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옛 관료제보다 불투명합니다. 이 알고리즘 관리라는 문제는 4강 디지털 사회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배차와 평가를 알고리즘이 맡은 조직에서 부당한 결정을 받았을 때 우리는 누구에게 항의해야 할까요. 규칙을 쓴 사람이 보이지 않는 조직은 옛 관료제보다 나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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