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와 건강 리터러시 5강. 이 기사, 믿어도 될까
가공육이 담배와 같은 1군 발암물질이라는 헤드라인을 기억하시나요. 그 분류는 위험의 크기가 아니라 증거의 확실성을 뜻합니다. 이 한 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리터러시입니다.
풀고 시작
첫 질문: 이 결과는 누구에게서 나왔나
기사를 만나면 순서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볼 것은 연구의 종류입니다. 세포 배양 접시에서 나온 결과인지, 쥐에게 먹인 결과인지, 사람을 관찰한 것인지, 무작위로 나눠 비교한 시험인지에 따라 그 문장이 견딜 수 있는 무게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접시 위 암세포를 죽인 물질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 약이 되는 것은 극소수죠. 동물에서 사람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후보가 탈락합니다.
그다음이 규모와 기간입니다. 20명을 4주 관찰한 연구와 5만 명을 15년 추적한 연구는 같은 결론을 말해도 무게가 다릅니다. 여기서 대리지표(surrogate endpoint)도 확인해야 합니다. 혈액 수치가 좋아졌다는 것과 심근경색이 줄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고, 수치는 개선되었는데 사망은 줄지 않은 사례가 의학사에 여러 번 있었습니다.
상대위험이라는 확성기
앞서 2강에서 본 구분이 여기서 실전으로 쓰입니다. 매일 가공육 50그램을 먹으면 대장암 위험이 18퍼센트 높아진다는 문장은 상대위험입니다. 대장암 평생 위험이 대략 100명 중 6명 수준인 집단이라면, 이 증가는 100명 중 7명 정도로 옮겨 가는 크기입니다. 위험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헤드라인이 주는 공포와는 체감이 다르죠.
| 표현 | 실제로 말하는 것 | 확인할 것 |
|---|---|---|
| 위험 2배 증가 | 상대위험 | 원래 위험이 몇 명 중 몇 명이었는가 |
| 1000명 중 3명이 5명으로 | 절대위험 | 기간과 대상 집단이 무엇인가 |
| 통계적으로 유의함 | 우연으로 보기 어려움 | 효과 크기가 실제로 큰가 |
같은 숫자를 상대위험으로 쓰면 극적으로, 절대위험으로 쓰면 미지근하게 들립니다. 어느 쪽을 골랐는지가 곧 보도의 의도를 드러냅니다. 이 계열의 함정을 더 보고 싶다면 통계의 오용 강을 함께 읽으시길 권합니다.
돈은 어디서 왔는가
3강의 설탕 업계 사례에서 봤듯 자금 출처는 결론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업이 지원한 연구를 전부 버릴 수는 없습니다. 신약 임상시험은 대부분 제약사가 비용을 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쓰는 기준은 배제가 아니라 공개와 견제입니다. 이해충돌이 논문에 명시되어 있는지, 연구 계획이 사전에 등록되어 결과에 따라 목표가 바뀌지 않았는지, 독립적인 연구진이 같은 결과를 재현했는지를 봅니다. 사전 등록은 원하는 결과가 나온 지표만 골라 보고하는 관행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마케팅 언어에는 지문이 남습니다
근거가 약한 상품일수록 문장에서 반복되는 신호가 있습니다. 몸속 독소를 빼낸다는 해독 서사가 대표적입니다. 간과 신장이 이미 그 일을 하고 있고, 그 기능이 정말 망가진 상태라면 건강식품이 아니라 중환자 치료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면역력을 올려 준다는 문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면역은 볼륨 손잡이처럼 올리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정밀하게 조절되는 체계여서, 목표는 강화가 아니라 정확한 판정입니다. 과하게 올라간 상태가 곧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이죠. 이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면역계 강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여기에 하나의 원인으로 만병을 설명하는 이론, 현대 의학이 진실을 숨긴다는 음모 서사, 개인 후기 위주의 증거, 무조건적인 100퍼센트 표현이 겹치면 신호는 뚜렷해집니다. 다만 반대 방향의 과잉 의심도 경계해야 합니다. 백신의 안전성이나 금연의 이득처럼 수십 년에 걸쳐 여러 나라의 독립된 자료가 같은 결론을 낸 항목까지 습관적으로 흔드는 것은 회의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경솔함입니다. 의심은 근거의 두께에 비례해야 합니다. 믿을 만한 출발점으로는 국가 보건 기관과 학회의 진료지침, 체계적 문헌고찰을 모아 둔 데이터베이스가 있고, 무엇보다 개별 증상에 대한 판단은 나를 직접 진찰한 의료인에게서 나옵니다.
서가를 닫으며
우리는 몸의 설계도에서 출발해 조절과 방어를 지나, 질병이 무엇인지 묻고, 진단과 약과 임상시험이라는 도구를 살핀 뒤, 손 씻기의 역사와 공중보건, 영양과 수면과 운동을 거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관통하는 한 문장이 있다면 이것입니다. 의학은 확실한 지식의 목록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다루는 절차입니다. 개별 처방은 바뀌겠지만 무엇을 근거로 믿을지 판단하는 방법은 오래 남습니다. 그 방법을 손에 쥐었다면 이 서가는 제 몫을 한 셈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절대위험으로 쓰면 정확하지만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상대위험으로 쓰면 과장되지만 행동이 바뀝니다. 보건 당국은 어느 쪽 언어를 써야 할까요.
- 전문가를 신뢰하는 것과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어디에서 갈라질까요. 비전문가가 근거를 검토한다는 말이 실제로 가능한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이전: 의학사와 건강 리터러시 4강 · 다음: 의학과 인체 서가 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