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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원리 4강. 오래 안고 사는 병들

위험을 30퍼센트 낮춰 준다는 말은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원래 위험이 얼마였는지를 듣기 전까지는요.

풀고 시작

문제 1. 어떤 개입이 심혈관 사건 위험을 상대적으로 30퍼센트 낮춘다고 할 때 옳은 해석은 무엇일까요?
상대위험 감소는 비율이라 바탕이 되는 절대위험에 곱해져야 실제 이득이 나옵니다. 10년 위험 20퍼센트인 사람은 6퍼센트포인트가 줄지만 2퍼센트인 사람은 0.6퍼센트포인트만 줄죠. 상대 수치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절대위험과 짝을 이뤄야 의미가 생깁니다.

병의 무게중심이 옮겨 갔습니다

한 세기 전 사망 원인 목록의 윗자리는 폐렴, 결핵, 설사병이 차지했습니다. 위생과 영양, 백신과 항생제가 이 자리를 밀어내면서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되자 목록의 주인공이 바뀌었습니다. 심혈관질환, 암, 당뇨, 만성폐질환, 치매가 앞으로 나온 것이죠. 옴란(Abdel Omran)이 1971년 역학적 전환(epidemiologic transition)이라 이름 붙인 변화입니다.

이 전환은 질병 부담을 재는 자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죽음의 수만 세면 오래 아프다 죽는 병의 무게가 사라지기 때문에, 현대 역학은 조기 사망으로 잃은 햇수와 장애를 안고 산 햇수를 합친 장애보정생존연수(DALY)를 함께 씁니다. 이 자로 보면 요통이나 우울장애처럼 사람을 잘 죽이지 않는 병들이 순위권에 올라옵니다. 만성질환의 시대에는 얼마나 죽었는가만큼 어떻게 살았는가가 지표가 됩니다.

세 가지 병은 사실 한 덩어리입니다

고혈압, 2형 당뇨, 이상지질혈증은 진료과가 다르지 않고 환자도 대개 겹칩니다. 우연이 아니라 뿌리가 이어져 있기 때문이죠. 내장지방이 늘면 인슐린이 잘 듣지 않는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고, 췌장은 이를 보상하려 인슐린을 더 뿜습니다. 이 상태가 이어지면 혈당이 올라가고, 중성지방이 늘며 좋은 콜레스테롤(HDL)은 줄고, 신장의 나트륨 재흡수와 교감신경 활성이 높아져 혈압도 밀려 올라갑니다. 복부비만, 혈압, 혈당, 중성지방, 좋은 콜레스테롤이라는 다섯 항목 중 셋 이상이 걸리면 대사증후군으로 묶어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종착지도 결국 혈관 한 곳으로 모이는데, 굵기에 따라 두 갈래로 갈립니다. 높은 혈압이 굵은 동맥의 내피를 상하게 하고 나쁜 콜레스테롤(LDL)이 그 안쪽에 쌓이면서 죽상경화(atherosclerosis)가 자라며, 그 끝에 심근경색과 뇌졸중이 놓입니다. 반면 오래 높은 혈당은 눈과 신장의 미세혈관을 망가뜨려 당뇨망막병증과 만성신장병으로 이어집니다. 병명은 여러 개지만 무대는 결국 혈관 하나인 셈이죠. 그래서 이 병들을 개별 수치 경쟁이 아니라 전체 위험으로 다루는 관점이 표준이 되었습니다.

몇 배가 아니라 몇 명입니다

만성질환 정보는 대부분 위험 이야기이고, 위험은 표현 방식에 따라 인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10년 심혈관 위험이 20퍼센트인 사람에게 상대위험을 30퍼센트 낮추는 개입을 쓰면 위험은 14퍼센트로 내려가고 절대 감소는 6퍼센트포인트입니다. 한 건을 막기 위해 몇 명을 치료해야 하는지를 뜻하는 치료 필요 수(NNT)로 바꾸면 약 17명이죠. 같은 개입을 10년 위험 2퍼센트인 사람에게 쓰면 절대 감소는 0.6퍼센트포인트, 필요 수는 약 167명으로 벌어집니다. 상대위험 감소는 똑같은데 실제 가치는 열 배 가까이 차이 납니다. 건강 기사에서 몇 배, 몇 퍼센트 감소라는 표현을 만나면 무엇 대비인지와 원래 위험이 얼마인지를 먼저 찾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생활 습관은 효과가 있고, 만능은 아닙니다

생활 습관 개입은 과소평가되기도 과대평가되기도 합니다. 가장 잘 알려진 근거는 미국의 당뇨병 예방 프로그램 연구입니다. 혈당이 정상과 당뇨 사이에 있는 성인을 대상으로 식사와 신체 활동, 체중 관리를 함께 지원한 집단에서 3년간 당뇨 발생이 대조군 대비 약 58퍼센트 줄었고, 약물을 쓴 집단은 약 31퍼센트 줄었습니다. 생활 습관이 약보다 나은 성적을 낸 드문 사례로 자주 인용되죠.

다만 두 가지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첫째, 이 결과는 발병을 없앤 것이 아니라 늦추고 줄인 것입니다. 둘째, 이 정도 효과는 상당한 지원과 추적이 붙은 조건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생활 습관 개선은 확실한 근거를 가진 수단이지만 이미 시작된 병의 치료를 대체하지는 못합니다. 복용 중인 약을 스스로 줄이거나 끊는 판단은 반드시 담당 의료인과 상의해야 합니다.

치료보다 지속이 어렵습니다

만성질환의 진짜 난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가 아닙니다. 세계보건기구는 2003년 보고서에서 선진국 기준으로 장기 치료가 필요한 만성질환의 치료 유지율이 평균 절반 수준이라고 정리한 바 있습니다. 이유는 냉정합니다. 고혈압도 초기 당뇨도 대개 아프지 않아서, 약을 먹어도 좋아지는 느낌이 없고 끊어도 나빠지는 느낌이 없습니다. 1강에서 본 질병과 아픔의 어긋남이 가장 크게 벌어지는 자리죠.

그래서 만성질환 관리는 의지의 문제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당뇨나 비만을 개인의 게으름 탓으로 부르는 통념은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진료를 미루게 만들어 결과를 나쁘게 합니다. 소득과 노동 시간, 식품 접근성, 주거 환경 같은 조건이 관리 성적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도 반복 확인된 사실입니다. 급성기 의학이 한 번의 결정적 개입으로 승부를 본다면, 만성질환 의학은 수십 년짜리 동행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다음 과목에서는 이 판단을 떠받치는 도구들, 진단의 논리부터 살펴봅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역학적 전환 이후 장애보정생존연수 같은 지표가 필요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성질환은 사람을 곧바로 죽이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기능을 떨어뜨립니다. 잃은 햇수와 장애를 안고 산 햇수를 합쳐야 이 무게가 보이죠. 인구 보정이나 통계 정확도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문제 2.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이 한 사람에게 함께 나타나는 경향을 설명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장지방과 인슐린 저항성이 혈당, 지질, 혈압을 동시에 밀어 올리며 대사증후군으로 묶입니다. 최종 무대도 혈관 손상 하나로 모이죠. 단일 유전자나 감염원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문제 3. 당뇨병 예방 프로그램 연구 결과를 정확히 요약한 것은 무엇일까요?
생활 습관 집단은 약 58퍼센트, 약물 집단은 약 31퍼센트 감소로 생활 습관 쪽이 더 컸습니다. 다만 발병을 없앤 것이 아니라 줄이고 늦춘 결과이며 상당한 지원이 동반된 조건이었습니다.
문제 4. 만성질환에서 치료 유지율이 낮은 핵심 이유로 본문이 든 것은 무엇일까요?
무증상이라는 특성 탓에 치료의 이득도 중단의 손해도 감각되지 않습니다. 질병과 아픔이 어긋나는 대표 사례죠. 여기에 소득과 노동 조건 같은 사회적 요인이 겹칩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지금은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 수십 년 뒤의 확률을 위해 매일 무언가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만성질환 관리입니다. 이 요구를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설계 문제로 옮기려면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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