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와 건강 리터러시 2강.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것
인류를 가장 많이 살린 의학 기술을 하나만 고르라면, 후보는 수술도 항생제도 아니라 하수도와 주사기 한 대입니다.
풀고 시작
병원체를 모른 채 유행을 멈추다
1854년 런던 소호에서 콜레라가 터졌습니다. 당시 주류 이론은 나쁜 공기가 병을 옮긴다는 미아즈마설이었죠. 마취과 의사였던 존 스노우(John Snow)는 다르게 생각했고, 사망자가 발생한 집을 하나하나 지도에 찍었습니다. 점들은 브로드 스트리트의 한 펌프 주위로 몰려 있었습니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예외들이었습니다. 근처 양조장 노동자들은 물 대신 맥주를 마셨고 거의 앓지 않았습니다. 멀리 사는 한 부인은 그 펌프 물맛을 좋아해 길어다 마셨고 콜레라로 사망했죠.
스노우는 당국을 설득해 펌프 손잡이를 제거하게 했습니다. 다만 정직하게 덧붙이면, 유행은 그 시점에 이미 꺾이고 있었으므로 손잡이 제거가 유행을 끝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사례가 위대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원인 미생물의 정체를 몰라도 분포를 비교하는 것만으로 개입할 지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곧 역학이라는 학문의 탄생입니다.
배관공이 의사를 이긴 세기
이후 도시들이 한 일은 상수와 하수를 분리하고, 물을 여과하고 염소로 소독하는 것이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토목 공사였지만 수인성 감염병 사망률은 무너지듯 떨어졌습니다. 여기에 백신이 더해집니다. 1796년 제너의 우두 접종에서 시작된 천연두 백신은 세계적 접종 사업으로 이어져, 1980년 세계보건기구가 천연두 박멸을 공식 선언합니다. 사람의 질병 가운데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진 유일한 사례입니다.
20세기 후반의 주역은 감염병이 아니라 생활 환경이었습니다. 1964년 미국 공중위생국장 보고서가 흡연과 폐암의 인과를 공식화한 뒤, 광고 규제와 실내 금연, 담뱃세 인상이 이어졌고 흡연율은 장기간에 걸쳐 크게 낮아졌습니다. 안전벨트 의무화와 음주운전 단속은 교통사고 사망을 줄였죠. 이 개입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개인의 결심이 아니라 규칙과 환경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예방의 역설: 크게 이로운데 작게 느껴진다
영국 역학자 제프리 로즈(Geoffrey Rose)는 곤란한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집단 전체를 조금씩 움직이는 개입은 사회 전체로 보면 막대한 생명을 구하지만, 참여하는 개인에게는 거의 아무 이득도 체감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안전벨트를 평생 맸어도 대부분은 그것 덕분에 살았다고 느낄 순간을 맞지 않죠. 이것이 예방의 역설입니다.
여기서 상대위험과 절대위험의 구분이 중요해집니다. 어떤 위험이 두 배가 된다는 말은 원래 위험이 얼마였는지를 알아야 뜻이 통합니다. 1만 명 중 1명이 2명이 되는 것도 두 배이고, 100명 중 10명이 20명이 되는 것도 두 배입니다. 개인이 느끼는 무게는 절대위험에 달려 있고, 집단 전체가 얻는 이득은 그 작은 차이에 인구 수를 곱한 값이 됩니다. 로즈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위험이 아주 높은 소수만 골라 관리하는 전략보다, 전체 분포를 조금 옮기는 전략이 구해 내는 생명이 더 많은 경우가 흔합니다. 이유는 산수에 있습니다. 고위험군은 개인별 위험이 크지만 수가 적고, 중간 위험대에 속한 다수는 개인별 위험이 작아도 사람 수가 압도적이어서 실제 발생 건수의 대부분이 그 구간에서 나옵니다. 국물의 간을 맞추듯 인구 전체의 혈압이나 나트륨 섭취를 조금씩 낮추는 정책이 소수 집중 관리보다 나은 성적을 내는 상황이 여기서 생깁니다.
누가 더 오래 사는가
건강은 진료실에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마이클 마멋(Michael Marmot)이 이끈 영국 공무원 대상 화이트홀 연구는 충격적인 결과를 내놨습니다. 모두가 같은 의료 체계를 이용하는 공무원 집단 안에서도, 직급이 낮을수록 사망률이 단계적으로 높았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의 이분법이 아니라 사회적 계단을 따라 건강이 층층이 갈리는 기울기였습니다. 소득, 교육, 노동 조건, 주거 같은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 개인의 의지보다 훨씬 큰 몫을 차지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공중보건에는 형평성 문제가 따라붙습니다. 금연 정책이나 건강검진 안내처럼 모두에게 똑같이 제공되는 개입도, 정보 접근과 시간 여유가 있는 계층이 먼저 활용하면 격차를 오히려 벌릴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강이 다루는 것은 어디까지나 집단의 통계라는 점을 덧붙입니다. 내가 언제 무엇을 검진받아야 하는지는 나이와 병력에 따라 달라지므로 진료실에서 정할 문제입니다. 다음 강에서는 이 영역에서 가장 시끄러운 주제인 영양 연구를 읽는 법을 다룹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담뱃세 인상은 흡연을 줄이지만 저소득층이 세금을 더 많이 부담하게 됩니다. 효과가 큰 정책과 공평한 정책이 충돌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 개인에게 이득이 거의 체감되지 않는 예방 정책을 사회가 강제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까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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