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학 1강. 극한: 무한소 길들이기
아킬레스는 거북을 따라잡습니다. 무한히 많은 단계도 유한한 시간 안에 끝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풀고 시작
아킬레스는 거북을 잡을 수 없다?
기원전 5세기, 엘레아의 제논(Zenon)은 아주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습니다. 운동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발 빠른 아킬레스가 거북에게 100m를 양보하고 출발한다고 해 봅시다. 아킬레스가 100m 지점에 도착하면 거북은 조금 앞서 있습니다. 그 지점에 다시 도착하면 거북은 또 조금 앞서 있죠. 따라잡으려면 이런 단계를 무한 번 거쳐야 하므로,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을 추월할 수 없다는 논증입니다.
경험은 이 결론을 비웃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논증의 어디가 틀렸는지 답하는 데는 2천 년이 걸렸습니다. 핵심은 이렇습니다. 아킬레스가 거북보다 10배 빠르다면 각 단계에 걸리는 거리는 100, 10, 1, 0.1, ...로 줄어들고, 이 무한히 많은 양의 합은 111.11...m로 유한합니다. 무한 개의 단계라고 해서 무한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죠. 제논의 역설은 "무한 개를 더하면 무한대"라는 숨은 전제를 깔고 있었고, 바로 그 전제가 틀렸던 것입니다.
극한이라는 발상
그렇다면 수학은 무한을 어떻게 다룰까요? 해석학(analysis)은 무한을 직접 만지는 대신 우회로를 택합니다. 수열 1, 1/2, 1/3, 1/4, ...를 봅시다. 어떤 항도 0이 아니지만, 항이 진행될수록 0과의 거리가 얼마든지 작아집니다. 오차 허용치를 아무리 좁게 잡아도, 어느 시점 이후의 모든 항은 그 허용치 안에 들어옵니다. 이때 이 수열은 0에 수렴(converge)한다고 말하고, 0을 이 수열의 극한(limit)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구분이 나옵니다. 극한은 수열이 "언젠가 도달하는 마지막 항"이 아닙니다. 애초에 마지막 항 같은 것은 없죠. 극한은 수열 바깥에서 수열의 행동 전체가 겨냥하는 목표값이며, 그 자체로 확정된 하나의 수입니다. 무한을 완결된 실체로 만지는 대신, "얼마든지 가까이"라는 유한한 언어로 번역하는 것. 이것이 무한소를 길들이는 해석학의 기본 전략입니다.
0.999...는 왜 정확히 1인가
이 구분을 시험하는 유명한 문제가 0.999... = 1입니다. 많은 분이 "한없이 가까워질 뿐 같지는 않다"고 느끼시죠. 하지만 0.999...는 움직이는 과정이 아니라 수열 0.9, 0.99, 0.999, ...의 극한으로 정의된 수이고, 그 극한은 1입니다.
논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1/3 = 0.333...의 양변에 3을 곱하면 1 = 0.999...를 얻습니다. 둘째, 더 근본적인 논증입니다. 1과 0.999...의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는 0.1보다 작고, 0.01보다 작고, 어떤 양수보다도 작아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양수보다 작은 음이 아닌 수는 0뿐입니다. 차이가 0이므로 두 수는 같습니다. 직관이 저항하는 이유는 십진 표기 하나에 수 하나가 대응한다고 무의식적으로 가정하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한 수가 두 가지 표기(1.000...과 0.999...)를 가질 수 있습니다.
수렴, 해석학의 주춧돌
물론 모든 수열이 수렴하지는 않습니다. 1, 2, 3, ...은 한없이 커져서 발산(diverge)하고, 1, -1, 1, -1, ...은 두 값 사이를 진동해서 목표값이 없습니다. 반대로 항이 계속 커지더라도 어떤 한계를 넘지 못하면(예를 들어 3, 3.1, 3.14, ...처럼 원주율의 자릿수를 늘려 가는 수열) 수렴이 보장됩니다. 올라가기만 하는데 천장이 있는 수열은 반드시 어딘가에 정착한다는 것이죠. 이 성질은 실수 체계의 깊은 특징이며, 원주율이나 √2 같은 무리수를 "유리수 근사의 극한"으로 붙잡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수렴 여부와 극한값을 판정하는 기술이 해석학의 출발점이고, 앞으로 배울 미분(순간변화율)과 적분(무한 분할의 합)은 둘 다 특정한 극한으로 정의됩니다. 극한을 이해하면 미적분 전체의 문법을 손에 넣는 셈이죠. 다만 "얼마든지 가까이"라는 말을 엄밀한 정의로 바꾸는 작업은 19세기에야 완성되는데, 그 이야기는 6강에서 다룹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극한을 "얼마든지 가까이"라는 말로 설명했는데, 이 말 자체는 충분히 엄밀할까요. 두 사람이 이 정의를 서로 다르게 이해할 여지는 없을까요.
- 제논의 다른 역설(화살은 매 순간 정지해 있으므로 움직이지 않는다)도 극한으로 해소될까요, 아니면 다른 종류의 답이 필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