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대수 1강. 벡터와 벡터공간
벡터는 화살표도 수 목록도 아닙니다. 더하고 늘일 수 있는 모든 것이 벡터입니다.
풀고 시작
벡터의 세 얼굴
같은 단어 "벡터"가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세 가지 모습으로 쓰인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물리학자에게 벡터는 크기와 방향을 가진 화살표입니다. 힘, 속도, 변위가 그렇죠. 컴퓨터과학자에게 벡터는 (3, 1, 4)처럼 순서가 있는 수 목록입니다. 수학자에게 벡터는 정의된 규칙을 만족하는 추상 공간의 원소일 뿐이며,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세 얼굴은 서로 번역됩니다. 평면의 화살표를 원점에 놓으면 끝점의 좌표 (a, b)라는 수 목록이 되고, 수 목록의 덧셈과 상수배는 화살표를 이어 붙이고 늘이는 기하 조작과 정확히 일치하죠. 선형대수의 힘은 이 번역에서 나옵니다. 기하 문제를 계산으로, 계산 문제를 기하 직관으로 바꿔 풀 수 있는 겁니다.
선형결합과 생성
벡터로 할 수 있는 일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뿐입니다. 더하기와 상수배죠. 이 둘을 섞은 c₁v₁ + c₂v₂ + … + cₖvₖ 형태를 선형결합(linear combination)이라 부릅니다. 주어진 벡터들의 선형결합으로 도달할 수 있는 벡터 전체를 그 벡터들이 생성(span)하는 공간이라 합니다.
평면에서 벡터 하나를 아무리 상수배해도 한 직선 위만 오갑니다. 서로 평행하지 않은 두 벡터가 있으면 평면 전체에 도달하죠. 그런데 세 번째 벡터를 추가해도 그것이 앞 둘의 선형결합이면 도달 범위는 조금도 넓어지지 않습니다. 이때 세 번째 벡터는 선형종속이고, 어느 것도 나머지의 결합으로 만들 수 없으면 선형독립입니다. 독립인 벡터의 최대 개수가 공간의 차원이죠.
기저와 좌표, 같은 벡터의 다른 이름
공간 전체를 생성하는 선형독립 벡터들의 집합이 기저(basis)입니다. 기저를 고르면 공간의 모든 벡터가 기저 벡터들의 선형결합으로 유일하게 표현되고, 그 계수들이 바로 좌표입니다. 여기서 핵심 통찰이 나옵니다. 좌표는 벡터의 본질이 아니라 이름이라는 것이죠. 평면의 같은 화살표가 표준 기저에서는 (3, 1)이고, 45도 기울인 기저에서는 다른 수 쌍이 됩니다. 벡터는 그대로인데 기술 방식만 바뀐 겁니다. 문제에 맞는 기저를 고르는 기술이 선형대수 응용의 절반이며, 4강의 고유벡터가 그 정점입니다.
다항식도 함수도 벡터다
수학자의 추상적 정의가 왜 필요할까요. 차수 2 이하의 다항식을 봅시다. 두 개를 더해도, 상수배해도 여전히 차수 2 이하입니다. 영다항식도 있죠. 그러므로 이것은 벡터공간이고, 1, x, x²이 기저이므로 차원은 3입니다. 다항식 5 + 3x - 2x²은 좌표 (5, 3, -2)를 가진 벡터인 셈이죠. 연속함수 전체도 마찬가지 이유로 벡터공간이며, 이쪽은 무한차원입니다.
이 일반화의 역사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독일의 김나지움 교사 그라스만(Hermann Grassmann)이 1844년 『확장론』에서 n차원 벡터 대수를 사실상 만들어 냈지만, 난해한 서술 탓에 당대에 거의 읽히지 않았고 그는 실망하여 산스크리트어 연구로 방향을 돌려 그쪽에서 먼저 명성을 얻었습니다. 벡터공간의 공리적 정의는 1888년 페아노(Giuseppe Peano)가 정리했죠. 화살표에서 공리로 가는 데 반세기가 걸린 겁니다. 이 추상화 덕분에 미분방정식, 신호 처리, 양자역학이 모두 하나의 언어를 씁니다. 다음 강에서는 벡터공간 사이를 오가는 사상, 즉 행렬을 다룹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색을 빨강, 초록, 파랑의 세기로 나타내는 RGB 표현은 벡터공간의 구조를 얼마나 갖추고 있을까요. "색을 더한다"와 "색을 2배 한다"는 항상 뜻이 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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