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와 해양 4강. 기후와 기후변화
기후변화의 증거는 하나의 결정적 실험이 아니라, 서로 독립인 수십 개의 측정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수렴입니다.
풀고 시작
날씨와 기후는 다른 질문이다
2강에서 우리는 2주 뒤의 날씨조차 원리적으로 못 맞힌다는 결론을 봤습니다. 그런데 기후과학은 수십 년 뒤를 말합니다. 모순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날씨는 특정 시각, 특정 장소의 대기 상태이고, 기후는 그 긴 시간 평균과 변동의 통계입니다. 세계기상기구는 관례로 30년 평균을 기준으로 삼죠. 내년 8월 15일 서울에 비가 올지는 알 수 없어도, 8월 서울이 1월보다 더울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개별 사건이 아니라 에너지 수지가 정하는 분포를 묻기 때문입니다. 온실기체를 늘리면 그 분포 전체가 어느 쪽으로 이동하는가, 이것이 기후과학의 질문입니다.
과거의 기후를 읽는 법: 빙하 코어
기온계 기록은 19세기 중반까지만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너머는 어떻게 읽을까요? 대리 자료(proxy)가 답입니다. 가장 강력한 것이 극지의 빙하 코어입니다. 눈이 다져져 얼음이 될 때 당시의 공기가 기포로 밀봉되므로, 깊이 뚫을수록 오래된 대기의 실물 표본이 나옵니다. 기포의 CO₂는 직접 측정하고, 얼음 자체의 산소 동위원소 비율로는 당시 기온을 추정합니다. 남극 보스토크 기지의 코어가 약 42만 년, 유럽 컨소시엄의 EPICA 돔C 코어가 약 80만 년의 기록을 복원했습니다. 결과는 뚜렷합니다. 빙하기와 간빙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었고, CO₂와 기온이 함께 오르내렸으며, 지난 80만 년 동안 CO₂는 대략 180~300ppm 사이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현재의 420ppm대가 얼마나 예외적인 값인지 보여 주는 증인이 바로 이 코어들입니다.
밀란코비치 주기: 빙하기의 박자
빙하기는 왜 주기적으로 올까요? 이 질문에 답한 사람의 사연이 극적입니다. 세르비아의 토목공학자 밀루틴 밀란코비치(Milankovitch)는 제1차 세계대전 중 포로와 연금 생활을 하면서 수십 년에 걸친 손계산으로 답을 만들었습니다. 지구 궤도의 세 요소가 천천히 흔들립니다. 공전 궤도 이심률은 약 10만 년, 자전축 기울기는 약 4만 1000년, 세차 운동은 약 2만 3000년 주기로 변합니다. 이 흔들림은 지구가 받는 태양 에너지의 총량보다 계절과 위도별 배분을 바꾸는데, 북반구 고위도의 여름이 서늘해져 겨울 눈이 다 녹지 못하는 시기가 오면 빙상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의 이론은 오래 무시되다가 1976년 심해 퇴적물 분석에서 실제로 이 주기들이 검출되며 극적으로 부활했습니다. 다만 궤도 변화가 주는 힘은 약해서, 빙하의 반사율 증가와 바다의 CO₂ 방출 같은 되먹임이 신호를 증폭해야 빙하기가 완성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함의가 나옵니다. 밀란코비치 주기는 수만 년 단위의 느린 박자이므로, 수십 년 만에 일어나는 현재의 온난화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킬링 곡선과 수렴하는 증거들
1958년 찰스 데이비드 킬링(Keeling)은 하와이 마우나로아 화산 중턱에서 대기 CO₂를 정밀 측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측정 첫해 약 315ppm이던 농도는 이후 한 해도 쉬지 않고 올라 현재 420ppm대에 이르렀습니다. 식물의 계절 호흡에 따라 톱니처럼 오르내리며 우상향하는 킬링 곡선은 인간 활동이 대기 조성을 바꾸고 있음을 보여 준 최초의 연속 기록입니다. 이 상승이 화석연료 때문이라는 것도 동위원소가 증언합니다. 화석연료의 탄소는 ¹³C 비율이 낮은데, 대기 탄소의 ¹³C 비율이 정확히 그만큼 희석되어 왔거든요.
온난화의 증거는 한 가지가 아니라 서로 독립인 관측들의 수렴입니다. 지표 기온, 해양이 저장한 열, 해수면 상승, 빙하와 북극 해빙의 감소가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원인이 태양이 아니라 온실기체라는 지문도 있습니다. 태양이 원인이라면 대기 전체가 더워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대류권이 더워지는 동안 성층권은 오히려 식고 있습니다. 온실기체가 아래층의 열을 가두는 경우에만 나타나는 패턴이죠.
회의론에 대한 과학의 응답
건전한 회의는 과학의 일부이므로, 주요 논점에는 정면으로 답할 가치가 있습니다. "기후는 원래 변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연 변동에는 궤도, 화산, 태양이라는 원인이 있었고, 지금의 변화는 그 어떤 자연 원인과도 속도와 지문이 맞지 않습니다. "태양 활동 탓이다"는 어떨까요? 최근 수십 년 태양 활동이 오히려 정체 내지 감소했고 성층권 냉각과도 모순되어 기각됩니다. "빙하 코어에서는 CO₂가 기온을 뒤따랐다"는 맞는 관측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궤도 변화가 방아쇠이고 CO₂가 증폭기였다는 뜻이며, 지금은 인간이 방아쇠 없이 증폭기를 직접 당기는 상황이라 반박이 되지 못합니다. "모형은 불확실하다"에 대해서는, 핵심 결론이 모형 없이도 서는 물리(1강의 틴들과 아레니우스)와 이미 관측된 변화에 기초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대기 문제에서 인류가 합의에 성공한 전례도 있습니다. 오존층 파괴에 맞선 몬트리올 의정서의 이야기는 화학 서가의 해당 강에서 다루는데, 과학적 증거가 국제 행동으로 이어진 모범 사례로 이 강의 논의와 짝을 이룹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몬트리올 의정서는 성공했는데 기후 협약은 왜 훨씬 어려울까요. 대체재의 존재, 비용의 분포, 피해의 시차라는 관점에서 두 문제의 구조를 비교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