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과 아프리카 2강. 사하라 이북과 나일
아부심벨 신전은 원래 자리에 없습니다. 1960년대에 사람들이 산을 잘라 60미터 위로 옮겼습니다.
풀고 시작
사막이 나눈 두 개의 아프리카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대륙 북쪽에 거대한 갈색 띠가 있습니다. 사하라입니다. 면적이 미국 본토와 비슷한 이 사막은 오랫동안 사람의 왕래를 어렵게 만들었고, 그래서 학자들은 아프리카를 사하라 이북과 이남으로 구분해 다룹니다.
다만 이 구분을 벽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사하라는 막힌 담이 아니라 건너기 어려운 바다 같은 것이었습니다. 낙타 대상이 소금과 금, 책과 사람을 실어 오갔고, 팀북투는 그 교역로 위에서 학문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사하라 이북은 지중해 세계와 이슬람 세계에, 이남은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 더 강하게 묶였지만 두 쪽은 계속 이어져 있었습니다.
마그레브와 이집트
사하라 이북은 크게 마그레브(해가 지는 땅이라는 뜻으로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모리타니를 아우름)와 이집트로 나뉩니다. 아랍어가 널리 쓰이지만 여기에 두 가지 층이 더 있습니다.
하나는 베르베르(아마지그) 언어와 문화입니다. 아랍 이전부터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언어이며, 모로코와 알제리는 이 언어를 공용어 지위로 인정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프랑스어입니다. 식민 지배의 결과로 마그레브에서는 프랑스어가 교육과 상업에 널리 쓰입니다. 그래서 모로코 시장에서는 아랍어와 아마지그어, 프랑스어, 스페인어가 함께 들립니다.
아랍어에는 짚어 둘 특징이 있습니다. 문서와 방송에 쓰는 표준 아랍어와 일상 구어인 방언이 크게 다르고, 모로코 방언과 이집트 방언은 서로 알아듣기 어려운 정도입니다. 이집트 영화와 노래가 널리 퍼져서 이집트 방언은 다른 지역 사람들도 비교적 잘 알아듣습니다.
수크에서 흥정하는 법
시장(수크)에서는 값이 붙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흥정은 바가지가 아니라 거래 형식이며, 몇 가지 원칙을 알면 편해집니다.
관심이 없으면 물건을 오래 들여다보지 않고, 마음에 두었다면 얼마쯤이면 살 만한지 스스로 먼저 정합니다. 그다음은 상대의 값과 내 값 사이를 오가는 대화입니다. 차를 권하면 마셔도 되지만 그것이 구매 의무는 아닙니다. 값을 부르고 나서 사지 않는 것은 결례로 여겨지니 확실하지 않으면 값을 묻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웃으며 마무리하는 태도가 실제로 가장 잘 통합니다.
유적 옆의 딜레마
이집트는 세계 고고학의 무게 중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유적을 지키는 문제는 늘 다른 필요와 부딪힙니다. 아스완 하이댐이 좋은 예입니다. 이 댐은 나일강의 범람을 조절하고 전력을 공급해 이집트 경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대신 두 가지를 잃었습니다. 하나는 범람이 실어 오던 비옥한 흙이고, 다른 하나는 저수지에 잠긴 누비아 지역의 마을과 유적입니다. 아부심벨은 옮겨져 살아남았지만 수만 명의 누비아 사람들은 살던 땅을 떠났습니다.
| 사업 | 얻은 것 | 잃은 것 |
|---|---|---|
| 아스완 하이댐 | 홍수 조절, 관개, 전력 | 퇴적물 공급, 누비아 마을과 유적, 삼각주 침식 |
| 아부심벨 이전 | 유적 보존, 세계유산 제도의 계기 | 원래 자리라는 맥락 |
유물 반환 문제도 이 지역에서 뜨겁습니다. 로제타석은 대영박물관에, 네페르티티 흉상은 베를린에 있고, 이집트는 반환을 요구해 왔습니다. 반출 시점의 법과 오늘의 윤리가 어긋나는 사안이라 국제적으로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여행자로서는 박물관에서 그 물건이 어떻게 그곳에 왔는지 설명을 찾아 읽는 것만으로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실무 감각
이 지역은 계절 차이가 큽니다. 여름 낮 기온이 40도를 넘는 곳이 많아 유적 답사는 아침 일찍이 정석입니다. 사막의 밤은 반대로 급격히 추워집니다. 라마단 기간에는 앞선 강에서 정리한 사정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사진은 사람과 군사 시설을 조심해야 하고, 유적 내부 촬영은 별도 요금이나 금지 규정이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인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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