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사회 3강. 경전은 누구의 언어로 쓰였나
신약성서 로마서에 사도로 칭송된 유니아는, 중세 어느 시점부터 필사본에서 남자 이름으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풀고 시작
경전 안의 두 목소리
어느 전통의 경전을 펴도 여성을 두고 상반되는 구절을 나란히 만나게 됩니다. 창세기에는 남녀를 함께 창조했다는 이야기와 여자를 남자에게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란히 실려 있습니다. 바울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편지들에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로마서에는 여성 봉사자 뵈뵈를 추천하고 유니아를 사도로 부르는 대목이 있습니다.
코란 4장 34절은 남편이 아내를 대하는 방식을 두고 오래 논쟁된 구절인데, 여기 쓰인 동사를 때린다로 옮길지 떠난다로 옮길지를 두고 무슬림 법학자와 번역자들의 해석이 갈립니다. 불교 전승에서는 붓다의 양모 마하파자파티의 청원으로 비구니 승가가 세워지지만, 비구니에게 더해진 여덟 조항도 함께 전해집니다. 힌두 전통에서는 여성의 독립을 제한하는 마누 법전의 규정과, 우파니샤드에서 왕의 궁정 토론을 이끄는 여성 철학자 가르기가 같은 유산 안에 들어 있습니다. 신자에게 이 병존은 어느 쪽을 자기 전통의 중심으로 읽을 것인가라는 신학적 물음이고, 역사학에는 서로 다른 시기와 공동체의 목소리가 한 권에 묶인 편찬의 흔적입니다. 두 물음은 성격이 다르므로 섞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강단에 설 수 있는가
지금 지형은 전통마다, 같은 전통 안에서도 교단마다 갈립니다. 개신교의 상당수 교단은 20세기 후반 여성 안수를 도입했고, 잉글랜드 성공회는 1994년 여성 사제를, 2014년 여성 주교를 허용했습니다. 반면 로마 가톨릭과 동방정교회는 사제직을 남성으로 한정하며, 그 근거를 예수와 열두 제자의 사례와 전승에 둡니다. 가톨릭 안에서도 초대 교회의 여성 부제를 두고 연구가 이어지고, 교황청이 검토 위원회를 둔 적이 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개혁파가 1970년대에 여성 랍비를 배출했고 보수파가 뒤따랐으며, 정통파 안에서도 여성에게 율법 교사 자격을 주는 시도가 논쟁 속에 이어집니다. 이슬람에서는 여성이 여성 회중을 인도하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지만 혼성 금요예배 인도는 큰 논쟁거리이고, 중국에는 여성 아훙이 여성 전용 모스크를 이끌어 온 지역 전통이 있습니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비구니 계맥이 오래전 끊긴 것으로 여겨졌는데,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 계맥의 도움을 받아 수계식을 여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스리랑카와 태국 승가 안에서 정당성 논쟁이 계속됩니다.
천 조각을 둘러싼 전장
베일만큼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짊어진 사물도 드뭅니다. 이란에서는 착용이 법적 의무이고 그 강제에 저항해 온 여성들이 있습니다. 프랑스 공립학교에서는 착용이 금지되고, 그 금지가 신앙을 지우라는 요구라며 반발한 여성들이 있습니다. 유럽과 북미의 적지 않은 무슬림 여성은 부모 세대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히잡을 쓰는데, 이유로는 신앙과 함께 소수자 정체성의 표명이나 시선으로부터의 자율을 듭니다. 인류학자 라일라 아부루고드는 무슬림 여성을 구원할 대상으로 놓는 서사 자체가 그들의 말을 지운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논쟁을 이슬람만의 문제로 두면 초점이 흐려집니다. 유대교 정통파의 기혼 여성은 머리카락을 가리고, 가톨릭 수도자는 오랫동안 베일을 썼으며, 머리를 덮는 실천은 여러 전통이 공유합니다. 그래서 학술적으로 다룰 질문은 가림 자체가 억압인지가 아니라, 누가 그 결정을 내리며 다르게 결정할 자유가 실제로 있는지입니다. 국가가 벗기든 입히든 결정권을 당사자에게서 가져간다는 점은 같습니다.
안에서 밀어 올리는 힘
개혁 요구는 대체로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나왔습니다. 여성신학은 1970년대 이후 성서를 여성의 자리에서 다시 읽는 작업을 축적했고,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는 초기 교회에서 여성이 지도자였던 흔적이 어떻게 지워졌는지를 추적했습니다. 흑인 여성 신학자들은 백인 중산층 경험을 기준 삼는 논의에 인종과 계급을 넣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슬람 쪽에서는 아미나 와두드가 코란을 여성 독자의 자리에서 읽었고, 파티마 메르니시는 예언자 시대 전승을 재검토했습니다. 이들의 전략은 코란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적 해석과 경전 자체를 분리하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출범한 국제 네트워크는 이슬람 가족법 개혁을 이 논리로 밉니다. 유대교에서는 남편이 이혼증서를 거부해 재혼하지 못하는 여성 문제를 두고 랍비 법 안에서 해법을 찾는 작업이 이어지고, 불교의 비구니 승가 복원 운동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어느 경우든 개혁가들은 자신을 배교자가 아니라 전통의 정당한 상속자로 규정합니다.
떠나는 여성과 남는 여성
여러 나라 조사에서 여성의 종교 참여율은 남성보다 높게 나옵니다. 성직에서 배제되는 쪽이 더 열심히 참여하는 역설은 오래된 연구 주제입니다. 설명은 여럿입니다. 종교 공동체가 돌봄과 상호부조의 네트워크를 제공한다는 점, 성직 밖 영역에서는 여성이 실무를 주도하며 실질적 권위를 쥔다는 점, 무속이나 영매처럼 제도 밖 역할에서 여성이 중심에 서 온 역사가 있다는 점이 거론됩니다.
동시에 이탈도 진행 중입니다. 최근 몇몇 조사에서는 젊은 세대의 이탈이 여성 쪽에서 더 빨라졌다는 보고가 나오는데, 이유로는 성직 배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직의 대응 실패, 재생산과 성소수자 문제의 입장 차이가 지목됩니다. 여기서 학문이 할 일은 어느 쪽이 옳은지 판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는 여성은 억눌렸고 떠나는 여성만 각성했다는 도식은 남는 쪽의 판단력을 지우고, 떠남을 신앙의 실패로만 읽는 시각은 떠나는 쪽의 이유를 지웁니다. 두 선택 모두 이유를 가진 행위로 읽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다음 강에서는 전통을 떠난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지금 새로 생겨나는 종교들을 보겠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성직에서 배제되는 쪽의 참여율이 더 높다는 사실은 종교 공동체가 여성에게 무엇을 제공해 왔는지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줄까요.
- 전통의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과 전통을 떠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그 전통을 더 진지하게 대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