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란 무엇인가 1강. 종교를 정의하려다 실패한 200년
종교학의 첫 시간은 늘 같은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아직 이 학문의 대상이 무엇인지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풀고 시작
최소한의 정의로 시작한 사람
영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는 1871년 『원시 문화』에서 종교를 아주 짧게 정의했습니다.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면 종교라는 것이죠. 이 정의가 왜 이렇게 헐거울까요. 당시 선교사들이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의 어떤 부족에게는 종교가 아예 없다고 보고하고 있었고, 타일러는 그 판정이 틀렸음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문턱을 최대한 낮추면 인류 어디에도 종교 없는 집단은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는 영혼 관념의 기원을 꿈과 죽음의 경험에서 찾았고, 이 원초적 믿음을 애니미즘(animism)이라 불렀습니다. 다만 타일러의 그림에는 애니미즘에서 다신교를 거쳐 일신교로 나아간다는 진화의 사다리가 깔려 있었고, 무엇보다 종교를 세계를 설명하려는 지적 시도로만 다뤘습니다. 의례하는 몸과 모여 앉은 공동체는 시야 밖이었습니다.
신이 아니라 사회를 본 사람
에밀 뒤르켐은 1912년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다른 쪽을 봤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어느 사회에나 나타나는 성(聖)과 속(俗)의 분할입니다. 어떤 장소, 어떤 날, 어떤 사물은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것으로 따로 떼어집니다. 그리고 그 성스러운 것을 둘러싼 믿음과 실천이 사람들을 하나의 도덕 공동체로 묶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토템 자료를 분석하며 그는 대담한 결론에 이릅니다. 부족이 토템 앞에서 경험하는 그 압도적인 힘은 실은 모인 사회 자체의 힘이며, 사회는 종교를 통해 자기 자신을 숭배한다는 것이죠. 이 정의는 신 없는 전통까지 포섭하고 실천과 공동체를 전면에 세운 강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쓴 민족지 자료의 부정확함이 뒤에 드러났고, 종교를 사회 통합의 기능으로 환원한다는 비판도 따라붙었습니다.
의미의 문제로 옮겨 간 정의
미국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1966년 논문 「문화 체계로서의 종교」에서 종교를 상징들의 체계로 규정했습니다.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고통과 부당한 죽음 앞에서 세계가 무질서하다는 공포에 부딪히는데, 종교는 존재의 일반 질서를 그려 주고 거기에 사실성의 아우라를 입혀서 그 그림을 유일하게 현실적인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는 설명입니다. 발리에서 현지조사를 한 그는 종교가 세계관과 삶의 태도를 서로 떠받치게 만드는 장치라고 봤습니다. 종교를 믿음의 목록이 아니라 의미 생산의 작업으로 옮겨 놓은 이 정의는 오래 표준 노릇을 했습니다.
신이 없는 전통을 어떻게 넣을까
여기서 종교학의 오래된 난제가 나옵니다. 초기 불교는 세계를 만든 창조신을 상정하지 않고 영원한 자아도 부정합니다. 유교는 하늘과 조상에 대한 의례를 갖추었지만, 이것을 종교로 볼지 수양과 정치의 가르침으로 볼지는 유교를 잇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갈립니다. 17세기와 18세기 중국 의례 논쟁에서 유럽 선교사들이 조상 제사를 우상 숭배로 볼지 사회적 예법으로 볼지를 두고 수십 년 다툰 것도 같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무엇을 믿는지로 정의하는 실질적 정의는 선명하지만 신 없는 전통을 자꾸 밖으로 밀어내고, 무슨 기능을 하는지로 정의하는 기능적 정의는 넓게 품지만 민족주의나 열광적인 스포츠 응원까지 종교로 만들어 버립니다. 어느 쪽을 택해도 대가를 치릅니다.
범주 자체를 의심하기
가장 근본적인 반격은 인류학자 탈랄 아사드에게서 나왔습니다. 1993년 『종교의 계보』에서 그는 기어츠의 정의를 겨냥해 이렇게 물었습니다. 권력과 무관하게 내면의 의미를 다루는 활동이라는 종교상은 정말 보편적일까요, 아니면 종교개혁과 계몽주의를 거친 근대 유럽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면서 만들어 낸 특수한 산물일까요. 아사드가 보기에 후자입니다. 라틴어 religio의 어원은 지금도 논쟁 중이지만 고전기의 용례는 신들에 대한 신중한 의무 이행에 가까웠고, 오늘날 우리가 쓰는 종교 범주는 서구가 식민지에서 만난 낯선 실천들을 자기 틀에 맞춰 분류하며 굳어진 것이었습니다. 종교사학자 조너선 스미스가 종교는 학자의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쓴 문장도 같은 자리를 겨눕니다. 그래서 최근의 대세는 완벽한 정의를 포기하고 가족 유사성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본질은 없지만, 니니안 스마트가 정리한 교리와 신화와 윤리와 의례와 경험과 제도와 물질이라는 여러 차원이 겹치고 엇갈리며 느슨한 그물을 이룹니다. 정의가 없으면 연구를 못 하냐고요. 다음 강에서 종교학이 실제로 어떤 방법으로 굴러가는지 보겠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정의에 합의하지 못한 채로도 종교학은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대상을 확정하지 않고 연구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 종교라는 말이 근대 서구의 발명이라면, 그 말을 쓰지 않고 유교나 초기 불교를 서술할 다른 어휘를 우리는 가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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