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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사회 2강. 정교분리는 무엇을 분리하나

국가와 교회 사이에 벽을 세우자고 가장 먼저 요구한 사람들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소수 교파의 신자들이었습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미국 초기에 정교분리를 가장 강하게 요구한 집단은 누구였을까요?
식민지 시절 주별 국교 체제에서 불이익을 받던 소수 교파가 분리를 요구했고, 이들에게 벽은 신앙을 억누르는 장치가 아니라 신앙을 지키는 방벽이었습니다. 반종교 운동의 산물로 보는 통념과는 출발점이 다릅니다.

벽이라는 은유가 태어난 자리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두 문장을 나란히 놓습니다. 의회는 국교를 세우는 법을 만들 수 없고,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법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이죠. 앞은 국교금지이고 뒤는 자유행사입니다. 1802년 토머스 제퍼슨이 코네티컷의 한 침례교 단체에 보낸 답장에서 이 조항을 분리의 벽이라 표현했고, 그 은유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대목이 편지의 수신인입니다. 당시 코네티컷에는 주 차원의 우대 교회가 남아 있었고, 침례교 신자들은 자기 교회를 유지하면서 남의 교회를 위한 세금까지 내는 처지였습니다. 벽을 요구한 것은 신앙을 지우려는 쪽이 아니라 신앙을 지키려는 쪽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헌법상 가장 철저한 분리 국가이면서 선진국 가운데 종교 참여율이 높은 나라라는,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조합을 갖게 됩니다.

라이시테와 국교 사이

분리라는 말이 나라마다 같은 뜻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라이시테(laïcité)는 1905년 정교분리법에서 제도화됐는데, 국가가 종교에 개입하지 않는 대신 공적 공간을 종교 표현으로부터 지킨다는 쪽에 무게가 실립니다. 2004년 공립학교에서 눈에 띄는 종교 표식 착용을 금지한 법이 그 논리의 연장이었습니다.

반대편에는 국교를 유지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영국은 국왕이 국교회의 수장이고 일부 주교가 상원 의석을 갖지만, 종교의 자유는 폭넓게 보장됩니다. 독일은 분리 국가이면서 국가가 교회세를 대신 걷어 종교 단체에 전달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모델 대표 핵심 장치
분리형 미국 국교 금지와 자유행사의 균형
배제형 프랑스 공적 공간의 종교 중립 강조
협력형 독일, 영국 국교나 공적 지원을 유지하며 자유 보장

세 모델 모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키는지가 다릅니다.

이 분류가 서구에서 나왔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튀르키예는 프랑스식 원칙을 받아들이면서도 국가 기구가 종교 업무를 직접 관장하는 방향으로 운용해 왔고, 인도 헌법의 세속주의는 국가가 모든 종교와 같은 거리를 두되 사원 출입 차별 같은 사안에는 개입한다는 원칙으로 설계됐습니다. 분리라는 한 단어 아래 실제로는 서로 다른 장치들이 들어 있는 셈입니다.

자유가 자유와 부딪칠 때

종교의 자유는 두 층으로 나뉩니다. 무엇을 믿을지 결정하는 내면의 자유는 사실상 절대적으로 보호되지만,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유는 타인의 권리와 만나는 순간 조정 대상이 됩니다. 병역, 의료, 교육, 고용은 그 마찰이 집중되는 지점입니다.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 조정이 오래 걸린 사례입니다. 수십 년간 유죄 판결과 실형이 이어지다가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종교적 신념에 따른 거부를 병역법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했고, 2020년부터 대체복무제가 시행됐습니다. 신앙을 이유로 처벌하지 않으면서 병역 의무의 형평도 지키는 지점을 찾는 데 걸린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사안에서는 종교 단체의 자율성과 개인의 평등권이 정면으로 맞서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원칙으로 못 박기보다 사안별로 저울질하는 방식이 각국 법원의 일반적인 태도입니다.

한국의 분리선과 종교인 과세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교를 부인하며 정교분리를 못 박습니다. 그런데 조문의 선명함과 현실의 밀도는 다릅니다. 대통령 조찬기도회 같은 관행, 종교계가 운영하는 사학과 복지시설에 들어가는 공적 재정, 대형 종교 행사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지원은 분리선을 계속 시험대에 올립니다.

가장 오래 끈 쟁점은 종교인 과세였습니다. 논의는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번번이 무산됐고, 2015년 소득세법 개정으로 종교인 소득 항목이 신설된 뒤 유예를 거쳐 2018년부터 시행됐습니다. 찬성 측은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원칙을 들었고, 반대 측은 성직 활동을 근로로 규정하는 것과 세무 조사를 통한 국가 개입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종교계 안에서도 찬반이 갈렸다는 점입니다. 일부 교단은 이미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있었습니다.

광장에 나온 종교, 종교가 된 정치

분리가 정치 참여 금지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미국 민권운동의 조직 기반은 흑인 교회였습니다. 1955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은 교회 집회에서 결의됐고, 설교단은 연설대였으며, 찬송가는 행진곡이 됐습니다. 국가가 보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집회 공간과 지도자와 재정을 동시에 제공한 거의 유일한 조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와 80년대에 명동성당과 여러 교회가 수배자의 은신처이자 집회 장소가 됐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 사실이 성당 미사에서 폭로되면서 그해 6월의 흐름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반대 방향의 현상도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이 시민종교라 부르는 것처럼 국가가 건국 신화와 순교자와 성지를 갖추고 의례를 치르는 일, 그리고 정치적 대립이 이해관계 조정이 아니라 선과 악의 대결로 성화되는 일입니다. 상대를 설득 대상이 아니라 회개시킬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면 타협은 배교가 됩니다. 정교분리가 다루기 가장 어려운 것은 어쩌면 종교가 정치에 들어오는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 종교의 문법을 빌려 쓰는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인출 문제

문제 1. 제퍼슨의 분리의 벽 은유가 놓인 맥락으로 옳은 것은?
1802년 코네티컷 침례교 단체에 보낸 편지의 표현이며, 헌법 조문에는 이 문구가 없습니다. 수신인이 소수 교파였다는 사실이 이 벽의 원래 취지를 잘 보여 줍니다.
문제 2. 프랑스 라이시테가 미국식 분리와 다른 지점은?
라이시테는 국가의 불간섭에 더해 공적 영역의 종교 중립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며, 2004년 공립학교 종교 표식 금지법이 그 사례입니다. 교회세 대리 징수는 독일, 국교 유지는 영국의 방식입니다.
문제 3. 한국의 종교인 과세에 대한 서술로 옳은 것은?
논의는 수십 년 이어졌고 2015년 소득세법 개정과 유예 기간을 거쳐 2018년 시행됐습니다. 종교계 내부에서도 찬반이 갈렸고 일부 교단은 그 전부터 자발적으로 납세하고 있었습니다.
문제 4. 본문이 말하는 정치의 종교화 현상에 해당하는 것은?
정치가 종교의 문법을 빌려 쓰는 현상이 핵심이며, 시민종교 개념도 같은 자리를 겨눕니다. 상대가 설득 대상이 아니라 회개 대상이 되면 타협 자체가 배신으로 여겨집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종교가 민주화 운동의 자원이 될 때는 환영받고 다른 정치 사안에 개입할 때는 비판받는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 공적 공간에서 종교 표식을 금지하는 것은 중립을 지키는 일일까요, 아니면 특정 신앙 실천에 더 큰 비용을 지우는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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