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사회 1강. 종교가 전쟁을 일으키는가
유럽 최대의 종교전쟁 막바지에, 가톨릭 국가 프랑스는 개신교 편에 서서 같은 가톨릭 왕가와 싸웠습니다.
풀고 시작
종교전쟁이라는 이름표
30년 전쟁은 지금도 종교전쟁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그런데 전쟁이 길어질수록 전선은 교리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가톨릭 프랑스는 개신교 스웨덴에 돈을 대고 끝내 직접 참전해 가톨릭 합스부르크를 쳤습니다. 신성로마제국 안의 개신교 제후들은 황제권 확대를 막으려 했고, 스웨덴은 발트해 패권을 노렸으며, 용병 부대는 봉급을 주는 쪽을 따랐습니다. 신앙은 분명 이 전쟁의 언어였지만, 유일한 동력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문제가 훨씬 가까운 사건에도 붙습니다. 북아일랜드 분쟁은 흔히 가톨릭과 개신교의 싸움으로 소개되지만, 다투어진 것은 주권 귀속과 주거·고용에서의 차별이었습니다. 두 이름표는 신학의 차이라기보다 아일랜드계와 영국계라는 집단 경계를 표시하는 표식에 가까웠습니다. 30년 가까이 이어진 유혈 사태로 3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지만, 협상 테이블에 오른 의제는 삼위일체론이 아니라 경찰 개혁과 의석 배분이었습니다.
성전은 어떻게 정당화되고 어떻게 제한됐나
각 전통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언어를 가졌고, 동시에 그것을 묶어 두는 장치도 함께 발전시켰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씨를 뿌리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정식화한 정당전쟁론이 정당한 권위, 정당한 이유, 올바른 의도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랍비 유대교는 전쟁을 의무 전쟁과 재량 전쟁으로 나누고, 후자에는 최고 법정의 승인을 요구했습니다.
이슬람의 지하드(jihad)는 원래 분투를 뜻하는 말이고, 자기와의 싸움을 큰 지하드로, 전투를 작은 지하드로 두는 구분이 널리 인용됩니다. 다만 이 구분을 전하는 전승의 신빙성에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습니다. 더 확실한 것은 고전 법학이 개전 권한을 정당한 통치자에게 한정하고 비전투원과 성직자, 과실수까지 보호 목록에 올렸다는 사실입니다. 불교의 경우 첫 계율이 살생 금지인데도, 스리랑카의 연대기 문헌이 왕의 전쟁을 정당화한 대목이나 근대 일본 선종 지도자들이 전쟁을 수행으로 설명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어느 전통에서든 제한 장치는 존재했고, 어느 전통에서든 그 장치는 깨졌습니다.
근본주의라는 말은 어디서 왔나
이 단어는 이슬람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1910년부터 미국 개신교 보수파가 펴낸 소책자 시리즈 『근본들』(The Fundamentals)이 출발점이고, 1920년 한 침례교 언론인이 이 신앙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근본주의자라 부르면서 이름이 굳었습니다. 원래는 남이 붙인 낙인이 아니라 자기 명칭이었죠. 1980년대 이후 시카고대학의 대규모 비교 연구가 이 말을 여러 전통에 걸친 분석 개념으로 확장했습니다. 성서나 경전의 무오성을 주장하는 흐름은 각 전통 안에서도 소수 입장부터 다수 입장까지 편차가 크고, 그 자체가 곧 폭력으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이 단어가 언론에서 열성적인 신앙 일반, 특히 특정 종교에만 붙는 욕설로 미끄러졌다는 점입니다. 분석어가 낙인어가 되면 설명력은 사라집니다.
종교가 총을 멈춘 자리
폭력의 목록만 세면 절반만 보게 됩니다. 10세기 말 프랑스 남부에서 시작된 신의 평화 운동은 교회가 앞장서서 성직자와 농민과 순례자를 공격 대상에서 뺐고, 뒤이어 확산된 신의 휴전은 특정 요일의 전투까지 금지했습니다. 봉건 영주의 사적 폭력을 제어할 공권력이 없던 시대에 교회의 파문 위협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입니다.
가까운 사례도 있습니다. 15년 넘게 이어진 모잠비크 내전은 로마의 한 가톨릭 평신도 공동체가 중재한 협상 끝에 1992년 종전 협정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보복 대신 진실화해위원회를 택했을 때 그 위원장은 성공회 대주교였고, 위원회의 언어에는 고백과 용서라는 종교적 어휘가 깊이 배어 있었습니다.
이 목록이 한 전통의 전유물인 것도 아닙니다. 인도 독립운동은 여러 인도 전통이 공유해 온 아힘사(ahimsa), 곧 해치지 않음의 관념을 대중 정치의 전략으로 번역했습니다. 시에라리온에서는 내전 막바지에 이슬람과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이 함께 꾸린 종교간 협의회가 정부와 반군을 잇는 협상 통로 노릇을 했습니다. 종교는 사람을 동원하는 힘이 세기 때문에 그 힘은 어느 방향으로든 갑니다.
세속의 20세기와 단일 원인의 유혹
20세기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기획들은 대체로 종교의 이름을 쓰지 않았습니다. 계급 없는 사회, 순수한 민족, 새로운 인간을 내걸고 벌어진 일들이었죠. 그렇다고 세속 이념이 종교보다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신학자 윌리엄 캐버노는 아예 종교와 세속을 갈라 한쪽에만 폭력의 혐의를 씌우는 구도 자체가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이 강의 결론은 예 또는 아니오가 아닙니다. 대규모 폭력은 언제나 자원 경쟁, 집단 정체성, 국가 이익, 동원 조직, 정당화 서사가 얽힌 결과로 일어나고, 종교는 그중 하나이면서 특히 정당화와 동원에 강한 요소입니다. 하나의 원인을 지목하고 싶은 유혹은 대개 그 원인을 제거하면 폭력이 끝난다는 기대에서 옵니다. 그 기대가 틀렸다는 것이 지난 세기가 남긴 가장 비싼 교훈입니다. 다음 강에서는 이 힘을 국가가 어떻게 다루려 했는지, 정교분리라는 장치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어떤 갈등을 종교 분쟁이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그 이름은 해결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 종교가 사람을 강하게 동원한다는 성질 자체는 중립적입니다. 그 힘이 평화 쪽으로 갈 조건과 폭력 쪽으로 갈 조건은 무엇이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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