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전통 4강. 아랍의 종교가 아닌 이슬람
무슬림의 다수는 아랍인이 아니고, 신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중동에 있지도 않습니다.
풀고 시작
상인이었던 사람에게 일어난 일
무함마드는 570년 무렵 메카를 이끌던 쿠라이시 부족의 하심 가문에서 태어나 상인으로 살았습니다. 40세 무렵 히라 동굴에서 첫 계시를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첫마디가 읽으라 혹은 암송하라는 명령이었죠. 신자들의 이해에서 꾸란은 무함마드가 지은 책이 아니라 신의 말씀 그 자체이며, 그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를 잇는 마지막 예언자입니다. 그래서 무슬림에게 꾸란은 그리스도교의 성서보다 예수의 자리에 더 가깝습니다. 신의 말씀이 책으로 왔다고 보기 때문이죠.
622년 그는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이주합니다. 이 히즈라가 이슬람력의 원년인데, 기준점을 계시의 순간이 아니라 공동체가 세워진 해로 잡았다는 점이 이 종교의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 630년 메카에 큰 유혈 없이 입성했고 63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편 문헌학 연구는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전승은 3대 칼리프 우스만 때 표준본이 확정되었다고 전하는데, 1972년 예멘 사나의 대모스크에서 나온 초기 필사본 조각들은 이 과정을 실물로 볼 기회를 열었습니다. 본문이 이르게 안정되었다고 보는 흐름과 더 오래 걸렸다고 보는 흐름이 학계 안에서 갈립니다. 믿음의 자기 이해와 문헌학의 물음은 서로 다른 층위이며, 어느 쪽이 다른 쪽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교리 시험보다 실천이 소속을 말합니다
이슬람의 뼈대는 다섯 기둥입니다. 신은 하나이고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라는 고백, 하루 다섯 번의 예배, 재산의 일정 몫을 떼는 희사, 라마단 한 달의 단식, 형편이 되면 일생에 한 번 가는 메카 순례가 그것입니다. 해마다 200만 명 안팎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동선을 도는 하지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종교 행사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짚어야 합니다. 첫째, 이 종교의 소속은 복잡한 교리 시험이 아니라 반복되는 실천으로 확인됩니다. 몸의 습관이 신앙의 형식인 셈이죠. 둘째, 다섯 기둥이라는 정리는 수니의 표준적 분류입니다. 시아 12이맘파는 신앙의 근본과 실천의 항목을 다르게 배열하며 기둥의 수도 다르게 셉니다. 어느 쪽을 이슬람의 기본형으로 놓느냐는 이미 한쪽 편을 드는 일이 됩니다.
후계 문제에서 갈라진 두 길
632년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나자 공동체는 곧바로 물음 앞에 섭니다. 누가 이끄는가였죠. 이 물음의 전제부터 두 이해가 갈립니다. 수니는 후계자가 지명되지 않아 공동체가 합의로 뽑아야 했다고 보고, 시아는 가디르 쿰에서 알리가 이미 후계자로 지명되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다수는 원로 아부 바크르를 지도자로 세웠고, 예언자의 관행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수니로 불리게 됩니다. 다른 쪽은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와 그 가문에 권위가 있다고 봤고, 알리의 당이라는 뜻의 시아가 됩니다.
역사학은 이 갈림의 출발점을 교리 논쟁보다 지도자 계승 문제로 봅니다. 661년 알리가 암살되고, 680년 카르발라에서 그의 아들 후사인이 소수의 일행과 함께 살해되면서 이야기는 되돌릴 수 없이 굳습니다. 아슈라의 애도 의례는 이 기억을 해마다 되살리죠. 이맘의 지위에 관한 정교한 신학은 그 뒤에 형성되었습니다. 오늘날 시아는 전체 무슬림의 대략 10에서 15퍼센트로 추산되며 이란과 이라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근현대의 종파 갈등을 1400년 묵은 원한의 재연으로 설명하는 서술은 대체로 부정확합니다. 국가 간 경쟁과 내전의 정치가 종파의 언어를 동원한 결과로 보는 분석이 학계에서는 더 우세합니다.
샤리아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
샤리아라는 말은 원래 물가로 이어지는 길을 뜻했습니다. 신자들에게 샤리아는 신이 제시한 삶의 길 전체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인간이 읽어 내어 규범으로 정리한 작업은 피크흐, 곧 법학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 구분이 결정적입니다. 신의 길은 완전하지만 인간의 해석은 여럿이고 틀릴 수 있다는 것이 법학 전통 자체의 전제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수니에는 하나피와 말리키와 샤피이와 한발리 네 법학파가 나란히 서 있고 시아에는 자파리 법학파가 있으며, 같은 사안에 서로 다른 판단이 공존해 왔습니다.
내용의 대부분은 예배와 정결, 혼인과 상속, 계약과 상거래 같은 일상의 규범입니다. 바깥에서 샤리아와 곧바로 동일시하는 신체형 규정은 아주 작은 부분이고, 적용 조건을 극도로 까다롭게 만들어 사실상 발동을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대목도 많습니다. 실제 적용도 나라마다 크게 달라서, 무슬림 다수 국가 상당수는 형법을 세속 법전으로 두고 가족법 영역에서만 이슬람 법을 씁니다. 샤리아를 단일한 법전으로 상상하는 순간 이미 사실에서 멀어지는 셈이죠.
도서관과 통계가 말해 주는 것
9세기 바그다드의 지혜의 집에서 그리스와 페르시아와 인도의 문헌이 아랍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알콰리즈미의 이름에서 알고리즘이, 그의 책 제목에서 대수학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븐 시나의 의학 저작은 유럽 의과대학에서 수백 년간 교재였고, 이븐 알하이삼은 빛을 실험으로 다뤘습니다. 유럽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되찾은 통로도 상당 부분 아랍어 주석이었습니다.
폭력의 문제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지하드는 원래 분투를 뜻하고, 널리 인용되는 전승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더 큰 지하드라 부릅니다. 다만 이 전승의 권위를 두고는 이견도 있습니다. 21세기 테러 사망자 집계는 기관마다 수치가 다르지만, 사망자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와 나이지리아와 소말리아처럼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에 집중되고 희생자 대다수도 무슬림이라는 점은 공통적입니다. 내부의 반박도 있습니다. 2005년 암만에서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모여 상대를 배교자로 규정하는 관행을 제한하자고 선언한 일이 그 예입니다. 종교와 폭력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은 다음 과목의 첫 강입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 신의 뜻과 인간의 해석을 구분하는 장치는 이슬람 법학 말고 다른 전통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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