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지 / 한국문학 / 현대문학 4강. 세계가 한국문학을 읽는다

현대문학 4강. 세계가 한국문학을 읽는다

한국문학이 세계로 나간 것이 아니라, 세계가 한국어로 쓰인 문장을 읽을 방법을 찾아낸 것입니다.

풀고 시작

문제 1. 2010년대 이후 한국문학이 세계 독자와 만나게 된 조건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한국어로 쓰인 작품이 다른 언어권에서 읽히려면 반드시 번역이라는 관문을 지나야 합니다. 번역가의 선택이 작품의 인상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에 이 몫을 둘러싼 논쟁도 함께 커졌습니다.

런던과 스톡홀름 사이의 8년

2016년 5월 런던에서 한강(1970~)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습니다. 2007년 한국에서 나온 이 소설의 영역본이 2015년 초에 출간되었으니 1년 남짓 만이었죠.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여성 영혜와 그를 둘러싼 가족의 반응을 세 개의 시선으로 나눠 그린 작품입니다. 결말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 소설이 던지는 물음은 채식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기 몸을 자기 뜻대로 하겠다고 할 때 주변이 그것을 어디까지 폭력으로 되돌려 주는가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2024년 10월,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받습니다. 한국 작가로는 처음이었죠.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정 이유로 밝혔습니다. 이 문장은 『소년이 온다』(2014)와 『작별하지 않는다』(2021)를 가리킵니다. 앞의 작품은 광주의 1980년 5월을, 뒤의 작품은 제주 4·3을 다루거든요. 1강에서 본 전후와 분단의 상처가 여기서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한국문학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자기 역사를 지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끝까지 파고들어 세계에 닿았습니다.

번역가의 몫

『채식주의자』의 영역자 데버라 스미스는 한국어를 배운 지 몇 해 되지 않은 젊은 번역가였습니다. 수상 직후 그는 작가와 함께 무대에 섰고, 상금도 나눠 받았습니다. 그런데 곧 논쟁이 시작됩니다. 국내 연구자들이 번역본을 원문과 대조하며 오역과 누락, 과감한 의역을 지적했거든요.

쟁점은 단순한 실수의 개수가 아니었습니다. 번역은 원문에 얼마나 충실해야 하는가, 아니면 도착어 독자가 읽을 만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선인가라는 오래된 물음이었죠. 한쪽은 번역가가 작품을 다시 썼다고 비판했고, 다른 한쪽은 그 다시 쓰기가 없었다면 이 소설이 영어권에서 읽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어느 쪽도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는 점이 이 논쟁의 핵심입니다. 한강이 받은 이 상은 2019년에 후원사가 바뀌면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으로 이름이 정리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흐름은 이어져서 정보라의 『저주토끼』, 천명관의 『고래』,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가 잇달아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누가 말하는가가 바뀌었다

2016년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나옵니다. 통계와 보고서 같은 건조한 문장으로 한 여성의 생애를 따라가는 이 소설은 백만 부 넘게 팔렸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특히 일본과 중화권에서 큰 반향을 얻었습니다. 문학성 논쟁도 격했습니다. 소설이라기보다 사회 보고서에 가깝다는 비판과, 바로 그 형식이 개인의 경험을 통계와 겹쳐 보게 만든 장치라는 반론이 맞섰죠.

이 흐름은 한 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은영, 강화길, 정세랑, 김초엽으로 이어지는 작가들이 2010년대 후반 한국 소설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퀴어 서사도 문단의 주변부에서 벗어났습니다.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2019)이 대표적인데, 이 작품은 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 목록에 오르며 국내와 해외에서 함께 읽혔습니다. 정전이 다시 짜인다는 말은 이렇게 구체적인 목록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플랫폼이 바꾼 생태계

한편 전혀 다른 곳에서 훨씬 큰 시장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웹소설입니다. 문피아와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시리즈 같은 플랫폼에서 작가들은 매일 한 편씩 연재하고 독자는 편당 결제로 읽습니다. 이 시장은 1조 원대 규모로 추산됩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처럼 웹툰과 영상으로 확장되는 사례도 흔해졌죠.

여기서 문학의 조건 자체가 달라집니다. 등단이 필요 없고, 편집자 대신 조회수와 댓글이 먼저 반응하며, 다음 회를 결제하게 만드는 것이 문장의 임무가 됩니다. 이것을 문학의 타락으로 볼 수도, 판소리와 신문 연재소설로 이어져 온 대중 서사 전통의 최신판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서사가 문예지 바깥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가를 닫으며

우리는 향가와 고려가요에서 출발해 설화와 한글소설을 지나, 식민지의 시와 소설, 전쟁의 폐허, 공장과 도시, 90년대의 방을 거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긴 목록에서 한 가지가 반복됩니다. 한국문학은 늘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방법을 발명해 왔습니다. 검열 아래에서는 님과 들판이라는 이미지를, 개발의 소음 속에서는 난장이라는 인물을, 그리고 지금은 번역과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통로를 찾아냈죠. 지금 읽을 만한 흐름을 하나만 고르라면, 역사를 다시 쓰는 소설들을 권합니다. 가장 오래된 상처가 가장 새로운 문장을 부르고 있으니까요.

인출 문제

문제 1.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한국문학사에서 갖는 의미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일까요?
소년이 온다는 광주를,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을 다룹니다. 한림원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언급한 것처럼, 자기 역사를 지운 것이 아니라 끝까지 파고든 작업이 세계 독자에게 닿았습니다.
문제 2. 채식주의자 영역본을 둘러싼 번역 논쟁의 핵심 쟁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오역과 의역 지적은 결국 번역이 원문을 따라야 하는가 새로 써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물음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시 쓰기가 없었다면 영어권 독자에게 닿지 못했을 것이라는 반론도 함께 놓고 봐야 합니다.
문제 3.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문학적 평가가 갈린 지점은 어디였을까요?
통계와 각주를 끌어들인 문체를 두고 소설이라기엔 앙상하다는 비판과, 개인의 경험을 통계와 겹쳐 보게 하는 형식적 선택이라는 옹호가 맞섰습니다. 평가의 기준 자체가 논쟁 대상이 된 사례입니다.
문제 4. 웹소설 플랫폼이 문학의 조건을 바꾼 방식으로 가장 정확한 것은 무엇일까요?
편집자의 선별 대신 독자의 즉각적 반응이 먼저 오고, 다음 회를 결제하게 만드는 것이 문장의 과제가 됩니다. 편당 결제가 수익 모델이며 등단 절차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번역가가 원문을 상당히 고쳐서라도 그 언어의 독자에게 닿게 만드는 일과, 원문의 결을 최대한 지키되 낯설게 읽히는 일 중 어느 쪽이 작품에 더 이로울까요. 그리고 여러분이 지금까지 읽은 외국 소설의 감동은 원작자의 것이었을까요, 번역가의 것이었을까요.


이전: 현대문학 3강 · 다음: 한국문학 서가 완주

모던지 · 궁금하면 모던지 GitHub · 2026-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