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학 4강. 해방 공간의 갈림길
1945년 8월, 작가들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5년 안에 그 자유가 서로를 지우는 도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풀고 시작
해방 이튿날부터 시작된 조직 경쟁
일본이 항복한 다음 날인 1945년 8월 16일, 임화와 김남천 등이 조선문학건설본부를 만듭니다. 해방의 감격을 나누기도 전에 조직부터 꾸린 것이죠. 곧 이기영과 한설야 등 옛 카프 강경파가 별도로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세우고, 12월에 두 조직이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합칩니다. 우익도 움직였습니다. 1946년 전조선문필가협회에 이어 김동리와 조연현, 조지훈 등이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합니다.
쟁점은 하나였습니다. 문학이 새 국가 건설의 도구여야 하는가, 아니면 어떤 정치에도 종속되지 않아야 하는가. 김동리는 문학의 자율성을 앞세워 순수문학을 옹호했고, 좌익 논자들은 그 순수라는 말 자체가 특정 정치의 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 논쟁이 흥미로운 것은, 몇 년 뒤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이 질문이 자유롭게 물어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38선을 건넌 작가들
1946년 무렵부터 미군정의 좌익 탄압이 강해지자 문인들이 잇따라 북으로 향합니다. 이태준이 1946년에 먼저 올라갔고 임화와 김남천, 오장환이 1947년 무렵 뒤를 이었으며, 홍명희는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했다가 북에 남습니다. 박태원과 이용악, 설정식처럼 한국전쟁 중에 북으로 간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 방향도 있었습니다. 황순원처럼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작가들이 있었고, 이들의 경험은 이후 분단 문학의 중요한 재료가 됩니다.
그런데 월북이 안착을 뜻하지는 않았습니다. 1953년 북에서 남로당계 숙청이 벌어지며 임화와 설정식이 처형당하고 김남천도 사라집니다. 이태준은 1956년 이후 비판을 받고 문단에서 밀려납니다. 남쪽을 떠나 북에서도 지워진 이름들이 생긴 것이죠. 반면 박태원은 한때 밀려났다가 복권되어 북에서 대하 역사소설을 씁니다. 떠난 방향이 운명을 결정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시기를 단순한 좌우 대립으로 읽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름을 O자로 쓰던 시절
남쪽에서는 더 철저한 지우기가 진행됩니다. 월북과 납북 작가의 작품은 출판이 금지되었고, 학술 논문에서조차 이름을 정O용, 김O림처럼 가운데 글자를 비워 적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억울한 경우도 생깁니다. 정지용은 한국전쟁 중 행방불명되었는데 오래 자진 월북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이광수 역시 1950년 납북되어 그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자의로 간 사람과 끌려간 사람이 같은 목록에 묶인 것입니다.
이 금기는 1988년에 풀립니다. 그해 3월 정지용과 김기림이 먼저 해금되었고, 7월 19일 월북 문인 120여 명의 작품 출판이 허용됩니다. 다만 이때도 홍명희와 이기영, 한설야를 비롯한 소수는 제외되었다가 이후에 사실상 풀립니다. 43년 만이었습니다. 1988년 이후 국문학계가 갑자기 바빠진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태준의 문장론과 박태원의 실험, 정지용의 시가 한꺼번에 연구 대상으로 돌아왔고, 1930년대 문학사가 통째로 다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남긴 문장들
한국전쟁은 사람만 죽인 것이 아니라 문학의 언어도 바꿔 놓았습니다. 황순원의 「학」(1953)은 어린 시절 친구였던 두 사람이 이념 때문에 압송하는 자와 끌려가는 자로 마주 서는 상황을 다룹니다. 손창섭의 「비 오는 날」(1953)에는 무기력하게 젖어 있는 인물들이, 장용학의 「요한 시집」(1955)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실존을 묻는 물음이 나옵니다. 선우휘의 「불꽃」(1957)은 방관과 행동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을 따라갑니다.
공통점은 영웅이 없다는 것입니다. 승리도 대의도 없이 살아남은 사람의 훼손된 내면이 주인공 자리에 앉습니다. 여기서 여성 작가들의 자리도 짚어야 합니다. 최정희와 손소희, 강신재, 한무숙이 이 시기에 활동했고, 박경리가 1955년에 등단합니다. 전쟁 서사가 병사와 이념 중심으로 서술될 때 남겨진 가족과 여성의 시간이 어떻게 기록되었는가는 근래에야 본격적으로 연구되는 주제입니다.
문학사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분단은 작품 목록만 자른 것이 아니라 문학사를 쓰는 방식도 둘로 갈랐습니다. 남쪽에서는 백철의 『조선신문학사조사』와 조연현의 『한국현대문학사』(1956)가 뼈대를 놓았는데, 순수문학 계열을 중심에 두고 카프를 주변으로 밀어내는 구도가 오래 유지되었습니다. 북쪽은 정반대로 카프와 항일 혁명문학을 정통으로 세우고 모더니즘 계열을 배격했습니다. 같은 30년을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설명한 셈입니다.
1988년 해금과 1990년대의 재서술 작업은 이 두 목록을 다시 겹쳐 보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렇다고 하나의 완결된 문학사가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누구를 넣고 누구를 뺄지, 친일과 월북이라는 두 잣대를 어떻게 나란히 적용할지가 여전히 논쟁 중이니까요. 정전은 확정된 유산이 아니라 계속 다시 협상되는 목록입니다. 이 협상이 전후 남한 문학에서 어떤 작품들로 이어지는지, 다음 과목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인출 문제
생각해볼 질문 (정답 없음)
한 작가의 이름이 43년간 지워졌다가 돌아왔을 때, 그동안 그를 빼고 쓰인 문학사는 틀린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그 시대의 정직한 기록이었을까요.